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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충격적인 조선시대 직업별 월급 수준(진짜 억울했던 조선 군인들)

by 사탐과탐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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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많은 직업들 마다 월급이 천차만별 이었다고 하는데 얼마를 받았을까요?
조선시대 월급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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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여러 직업을 고민하듯, 조선시대 사람들도 직업 선택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 당시에도 직업별로 월급이 천지차이였습니다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월급으로 얼마를 받았을까요?

 

먼저, 조선시대의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궁녀들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보이며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시기도 있었죠

 

큰돈을 벌기보단 직장에서 잘릴 걱정 없이 가늘고 길게 일할 수 있는 장점과 퇴직 이후 받게 되는 연금 때문이었는데요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이유로 공무원의 인기가 최고였다고 합니다

특히나 조선시대 여성의 경우는 궁녀만한 직업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궁녀는 궁궐에서 생활하며 왕과 왕비를 비롯한 여러 왕족들을 섬기는 일을 했었죠

궁녀는 여러 가지 규율을 지켜야 했습니다

일단 무조건 처녀여야 했고 말조심도 해야 했으며 평생 궁궐 안에서 살아야 했는데요

그리고 그녀들은 왕의 여자였기 때문에 다른 남성과 연애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혼인 또한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만큼 월급은 꽤 괜찮았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925년 기록에 따르면 궁녀들 중 왕이 머무는 내전에서 일하는 지밀상궁은 월급이 가장 적게는 50원, 가장 많이는 196원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월급을 받았던 이는 궁녀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았던 제조상궁이었다고 하는데요

대략적으로 1920년대의 1원이 지금의 5만 원 정도의 가치에 해당했다고 하니

196원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980만 원 정도 됩니다

 

거기다가 궁녀들은 궁에서 먹고 자는 비용이 모두 공짜였기 때문에 모두 순수익이었죠

지금도 세금 다 떼고 통장에 매달 천만 원씩 월급을 받으려면 연봉이 대충 1억 7천만 원은 돼야 하는데

어마어마하네요

평균적으로 궁녀들은 매달 40원에서 80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았는데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200만 원에서 400만 원 정도를 받은 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녀들은 하루 일하면 하루 쉬는 2교대 근무를 했다고 하니까 일하는 시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월급을 받는 편이었죠

 

다음으로는 지금의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조정 관료들은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았을까요?

조선 후기에는 나라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관료들이 받는 녹봉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풍족하게 받던 시기에는 가장 높은 관직이 1년에 쌀 100석과 천 32 필, 가장 낮은 관직은 쌀 14석과 베 4 필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가장 높은 관직은 2억 원 정도였으며 가장 낮은 관직도 3천만 원 정도를 받았던 셈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다만, 임진왜란 이후 나라의 재정이 파탄 나고

1647년에 인조가 녹봉제를 개정하면서 관료들이 받는 녹봉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조선시대 군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군대 복무 기간은 육군 기준으로 1년 6개월이지만

조선시대 때 군인들은 16살부터 60살까지

무려 44년이라는 거의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복무해야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군인들처럼 군대에서 쭉 복무를 했던 게 아니라 1년 중 2개월에서 6개월만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최소로 잡고 1년에 2개월만 복무했다고 쳐도 7년이나 되는데 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그러면 군인들에게 돈이라도 많이 줬을까요?

진짜 슬프게도 조선 전기에는 군인들의 월급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 군역의 의무를 당연히 해야 했기 때문에 조정에서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터지고 나서야 훈련도감이 생겨났고 거기에 속한 이들은 직업군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제야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재정이 파탄나버렸기 때문에 군인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지 못했다고 하죠

그러다 보니 군역은 군역대로 하면서 투잡으로 다른 일까지 병행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선시대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인식되었던 직업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똥장수는 진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 한양에서는 백성들의 배설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해 주던 '예덕선생'이라 불리는 똥장수들이 있었죠

 

이들은 1년에 대략 600냥 정도 벌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1냥을 현재의 가치로 약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라고 하며 누군가는 그렇게 하면 너무 가치가 낮아서 약 100만 원 정도는 쳐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어찌 됐건 5만 원으로 쳐도 3500만 원, 100만 원으로 치면 무려 1년에 6억 정도를 벌었던 겁니다

 

일반 평민이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었던 직업은 흔치 않았을 거 같긴 하죠

그리고 18세기 후반 기준으로 600냥이 있으면 한양에 좋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사람들에게도 똥장수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 같긴 한데 만약 1년에 서울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면 저는 무조건 했을 거 같습니다

 

또한 역관이라는 특이한 직업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사신단이 외국으로 떠나게 되면 외국 관리와 조선 관리가 나누는 대화를 통역해 주는 역관들이 따라갔었죠

이때 조정에서는 역관들에게 출장비로 인삼 80근을 줬다고 합니다

 

역관들은 그 인삼을 외국에서 곧바로 팔았는데 당시 조선 인삼은 매우 귀한 물건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80근의 인삼을 팔면 은 2천 냥 정도를 벌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무려 10억 원 정도입니다

그 당시 사신단 일정은 6개월에서 1년 정도였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연봉 10억 원 정도였다고 볼 수 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물론 다른 나라에서 생활비로 쓰는 돈도 있을 테고 매년 사신단을 따라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꾸준한 돈벌이는 아니었을 테지만 한 두 번만 역관 일을 하면 평생 벌돈을 다 벌었을 거 같습니다

게다가 역관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해외에서 파는 물건들을 사서 조선으로 들고 와서는 비싸게 팔아먹는 엄청난 고마진의 개인무역업도 병행했다고 합니다

 

어느 시대이건 어느 나라이건 재물을 가장 중요히 여기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었잖아요?

조선시대 역관 또한 다른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 대대로 이어온 대감집 양반들보다 훨씬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었을 테니 자식손자 대대로 역관을 시키면서 독점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조선시대에도 인기가 없던 직업들도 있었습니다

의사, 즉 당시의 의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원들이 나라에 소속된 의원과 그렇지 않은 민간의원으로 나뉘었죠

당시에는 의원이라는 직업의 인식이 정말 안 좋았다고 하는데요

그냥 관직 못할 거면 이거라도 해라 식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관직에 나가지 못하거나 몰락한 양반들이 배워서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게 민간의원이었다고 하죠

지금으로 치면 개인병원을 차린 거라고 보면 되는데 환자들에게 돈을 받았던 게 아니고

주로 쌀이나 면포, 비단 등 뭐라도 돈이 될만한 물건이라면 전부다 치료비로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환자들이 의원에게 치료를 받고 바로 그 대가를 주는 게 아니라 병이 낫거나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줬다고 하네요

 

만약에 병이 안 나으면 아무것도 안 줘도 됐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 의원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인식도 안 좋았던 데다가 돈까지 많이 못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피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부동산 중개업자였던 집주름은 얼마를 벌었을까요?

18세기 중반 이후 한양은 엄청나게 상업이 발전하면서 조선팔도에서 한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마치 지금의 서울경기권으로 몰리는 현상과 똑같았던 거죠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집 거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으며 그때부터 집주름들이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집 중개를 하고 그 대가로 거래된 집 값의 10%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택권의 '성시전도시'에는 집주름이 큰집 작은집 가리지 않고 중개해 주고

한 집이 이사하면 열 집이 움직이며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수수료로 받았다 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심노숭의 자저실기를 살펴보면 홍선양이라는 사람이 한양에서 가장 비싼 집을 팔았는데 집값이 약 7천 냥이었다고 하죠

그때 거래를 성사시킨 집주름은 700냥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3억 5천만 원 아파트를 중개해 주고 수수료로 3천5백만 원을 받은 셈이죠

왠지 조선 후기부터 급격히 재산을 불렸던 집주름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준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게 되네요

지금까지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들과 그들이 받았던 월급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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