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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간다면 과연 조선사람들과 말이 통할까????

by 사탐과탐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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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간다면 조선사람들과 말이 통할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사극을 보시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 옛날 사람들하고 실제로 대화를 나누면 말이 통하기나 할까?"

아마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이런 궁금증을 가져보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만약에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갈 수 있게 되면 과연 과거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할까요?

그 해답에 대해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의 탄생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때는 1443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세종대왕께서 왜 한글을 만드셨는지 알고 계신가요?

그 이유가 정말 감동적인데 당시 백성들이 한자를 배우기 너무 어려워했었죠

 

그러다 보니 우리말을 한자로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는데요

세종대왕님은 이런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 대신에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기로 결심하신 거죠.

많은 분들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한글을 만들었다고 알고 계시는데 사실은 좀 달랐습니다

 

놀랍게도 세종대왕께서 혼자서 비밀리에 만드셨다고 하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그 이유는 당시 신하들이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걸 알면 엄청나게 반대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네요

그렇게 신하들 몰래 한글을 만든 후 발표했는데 예상대로 신하들의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최만리, 정창손 등의 신하들이 상소문을 올렸는데

"한글을 만든 사실을 명나라에서 알면 우리를 비난할 텐데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

"한자 대신 한글을 쓰는 건 명나라를 무시하고 오랑캐와 같아지려는 것 아닙니까?"

명나라 눈치 보느라 한글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무수히 많은 상소문에도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해설서까지 만들도록 지시하셨죠.

그러고는 백성들에게 보급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해례본은 한자로 써져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글로 번역된 훈민정음 언해본을 만들게 되었죠

 

이게 얼마나 대혁신적인 일이었는지 가늠이 되시나요?

과거 어느 나라에서든 그 나라의 문자라는 건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는데 세종대왕께서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고 배포까지 했었던 겁니다

자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조선시대로 가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그 답은 '아니요'에 가깝습니다. 왜 그럴까요?

 

훈민정음 언해본의 첫 부분을 보시면 아주 유명한 문장이 나옵니다.

"나랏말싸미"로 시작하는 문장이죠.

이 문장만 봐도 한글은 맞는 거 같은데 왠지 외국어를 보는 것 같기도 하실 텐데요

실제로 당시에는 이것을 '나라쓰 말싸미'로 발음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발음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성조' 때문입니다.

성조는 쉽게 말해서 음절의 높낮이를 뜻하는데요

지금의 중국어를 들었을 때 말의 높낮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바로 성조 때문이죠.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도 이런 성조가 있었던 겁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에 성조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가지'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들면 '가'를 높게, '지'를 낮게 발음하면 '한 가지, 두 가지' 할 때의 '가지'가 됩니다

반대로 '가'를 낮게, '지'를 높게 발음하면 채소 '가지'가 되고, 둘 다 같은 높이로 발음하면 '나뭇가지'가 되는데 신기하시죠?

 

이렇게 발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다 보니 만약에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아마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렇다면 말이 안 통하면 글로 대화할 수도 있잖아요?

아쉽게도 글자로 적어서 대화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의 훈민정음과 지금의 한글은 꽤 많이 달랐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자음과 모음의 개수부터 달랐으며 게다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글자들도 있었죠.

'ㆍ(아래 아)', 'ㆁ(옛 이응)', 'ㆆ(여린히읗)', 'ㅿ(반치음)' 이렇게 네 글자가 더 있었는데요

 

지금은 없어진 저 네 글자를 왜 만들었던 걸까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어딜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바람소리,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해서 쓸 수 있다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으로 세상 모든 만물을 표현해 낼 수 있다고 했었죠

 

그리고 저 네 글자는 외국어 발음과 표기를 가능하게 하는 글자였기 때문에 만약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우리가 외국어 발음을 완벽하게 할 수 있었을 거라고 하네요

 

그런데 왜 저 네 글자가 사라졌을까요?

아쉽게도 훈민정음 해례본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가 194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발견됐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국어학자들이 해례본을 보지 못한 채로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탓에 지금의 한글에는 저 네 글자가 빠지게 된 거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자,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사극 드라마나 역사 영화에 나오는 말투는 모두 틀린 걸까요?

그건 또 아닌데 왜 그럴까요?

그 해답은 조선 후기로 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16세기쯤부터 조선 사람들의 발음이 조선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때의 발음은 현재 우리가 쓰는 한국어 발음과 꽤 비슷했다고 하죠

여러분이 사극에서 많이 들어보셨을 "아니되옵니다" "그리하옵소서", "축하하오" 같은 하오체 말투가 바로 이때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의 왕인 숙종의 언문서간을 보면 지금의 우리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현재의 한글과 비슷합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만약 조선 초기나 그 이전으로 가면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간다면 사극에서 봤던 것처럼 하오체를 쓰며 말하면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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