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었는데 양반집 딸 가이와 노비였던 부금은 신분의 벽을 넘어 금지된 사랑을 하게 되었죠
가이와 부금의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신분을 뛰어넘은 남녀 간의 사랑은 늘 있어왔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말이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세종 때 경상도 청송에 가이라는 양반가의 딸이 있었는데 인근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던 그녀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혼자서 집안을 꾸려가고 있었죠
어린 나이에 부모님도 없이 혼자서 집안을 꾸려 나가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가이의 집에는 부금이라는 사노비가 있었는데 그는 비록 신분이 노비이기는 했지만 워낙에 성실한 성격에다 똑똑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가이는 평소 모든 일을 부금에게 의지했다고 하죠
부금 또한 일을 할 때나 가이가 나들이를 할 때나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르며 극진하게 모셨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고생을 해왔던 탓일까요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죠
하지만 태종 5년인 1405년 9월 22일 천민이 양반가의 딸에게 장가드는 것을 금하는 법령이 반포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결혼은 엄연한 위법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혼인을 한다면 강상의 죄를 짓게 되는 것으로 이것은 역모죄 다음으로 큰 중범죄 취급을 받았는데요
때문에 부금은 가이가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했음에도 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죠
부금은 가이에게 우리는 국법에 따르면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이이니 제발 천한 신분인 자신을 잊고 좋은 혼처를 찾아보라며 설득했지만 가이의 마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부금과 결혼하고 말거라 선언했죠
그녀의 결심을 들은 부금은 속으로 몹시 기뻤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가이를 설득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혼인하면 두 사람 다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저야 죽어도 그만이지만 아가씨같이 귀하신 분이 저처럼 천한 노비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이죠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마음을 꺾지 않았고 결국 가이와 부금은 몰래 혼례를 올린 채 부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웃의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수상하게 여기며 수군거렸지만 평소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고 있었던 탓에 그들을 관아에 고발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죠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가이가 아들을 낳게 되면서 두 사람은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신분제에 유독 민감하던 어느 양반이 청송 현감에게 두 사람을 고변하면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사실 그 고을의 현감 또한 그들의 사랑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못 본척하고 그저 그들을 가만히 놔두고 있던 상황이었죠
하지만 관아에 정식으로 고발이 들어온 이상 현감도 더 이상 가이와 부금을 봐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현감은 경상 관찰사에게 장계를 올려 그 사실을 보고했고 관찰사는 크게 화를 내며 두 사람을 잡아들였죠
즉시 재판을 연 관찰사는 양녀의 딸인 가이가 천민과 혼인한 것은 강상의 죄를 저지른 것으로 이것은 이 나라 양반의 명예를 더럽힌 큰 죄라 판결하고는 가이를 즉시 부금과 이혼시킨 후 왜관에서 가장 못생기고 볼품없는 인물인 손다에게 강제로 시집을 보내버렸습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노비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는데요
때문에 그들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주인의 사유재산취급을 받았지만 그런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는 늘 있었으니 양반가의 딸과 천민 사이에 로맨스가 생기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고 하죠
성종 3년인 1471년 11월에는 양반가의 딸 선비가 사노비인 지중과 결혼했다가 교수형을 당한 기록이 있고 현종 12년인 1653년 5월에는 양반가의 딸 옥장이 사노비 김돌과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처형된 기록이 있습니다
'강상의 죄'란 부모나 남편을 죽이거나 노비가 주인을 죽인 죄를 말하는 것으로 대역죄 다음으로 큰 범죄였는데 황당한 사실은 양반 남자들은 마음대로 천민 여인을 취하면서 양반가의 여성들은 천민과 혼인할 수 없도록 정해놓고는 이것을 어기면 강상의 죄를 적용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죠
경상도 관찰사가 가이를 왜인과 강제 혼인을 하도록 판결을 내린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조정의 허락을 받고 왜관에 집단거주하면서 생필품을 만들어 팔고 있던 조선의 왜인들은 노비보다 더 천하게 취급되던 시절이었는데 관찰사는 그 왜인 중에서도 가장 못생기고 비루한 손다라는 인물을 일부러 골라 짝지어준 것이었으니 너무나도 졸렬하기 짝이 없는 판결이라고 볼 수 있죠
왜인 손다에게 강제로 시집간 가이는 그 후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손다가 날이면 날마다 가이를 때리는 것은 물론 온갖 폭언까지 해가며 그녀를 학대했기 때문인데요
결국 손다의 행동을 참다못한 가이는 청송에 살고 있는 부금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손다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자세히 설명하고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하게 되죠
안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를 강제로 왜인에게 시집보내면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부금은 그런 가이의 편지를 받게 되자 아예 눈이 뒤집혀버렸습니다
부금은 그 즉시 이웃에 사는 이내근내를 찾아가 그 모든 사실을 알린 후 도움을 요청했고 오랫동안 가이와 부금을 알고 지내온 이내근내도 울분을 참지 못하며 그를 도울 것을 약속했죠
그렇게 두 사람은 곧장 왜관으로 잠입해서 손다를 때려죽여버리고는 가이를 다시 청송으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왜관은 조정에서 허락한 왜인들의 유일한 집단거주지였기 때문에 그런 장소에서 살인이 일어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죠
게다가 가뜩이나 왜구의 노략질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이런 사건까지 터진 것이 알려지게 되면 자극받은 왜구들이 더 날뛰게 될 것을 걱정한 정부에서는 형조판서가 직접 나서서 수사를 진행했고 결국 손다를 죽인 것이 부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가이와 부금 그리고 이내근내는 즉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워낙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이 일은 세종에게 직접 결제까지 받아 판결을 내렸다고 하죠
그렇게 부금은 참수형을 가이와 이내근내는 교수형을 선고받고 경상감영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음에도 가이와 부금 두 사람의 마음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죠
가이는 관찰사에게 부금이 참수를 당하고 나면 자신이 그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묻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국법을 크게 어기지 않는 한 사형수의 마지막 청은 들어주는 것이 관례였기에 관찰사 또한 그녀의 청을 수락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옥에서 풀려난 가이는 마지막으로 부금과 만나게 되죠
그리고 자신 때문에 아내가 죽게 되었다며 자책하는 부금에게 "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직 서방님의 아내이며 비록 내일 우리가 헤어지지만 어떻게든 서방님의 아내로 다시 만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부금은 참형을 당했고 가이는 그 시신을 수습해서 정성을 다해 인근 야산에 묻어주었죠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가이는 옥사장에게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있던 옥비녀를 뽑아주며 자신이 죽고 나면 꼭 부금과 같이 묻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옥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청을 수락했죠
가이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은 여러 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인다는 이유로 그 고을의 장날로 정해졌습니다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관찰사가 가이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남기라고 하자 가이는 자신의 형을 집행한 다음 부금과 합장을 해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했고 관찰사는 좌우 판관들과 상의를 하더니 이를 허락했죠
그렇게 가이는 죽음을 맞은 후에야 사랑하는 부금의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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