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정승의 대명사이던 맹사성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일화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소'라는 말과 '내 비록 벼슬이 정승이지만 만백성이 내 벗이 아니겠소'라는 말을 남긴 인물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던 맹사성이 남긴 말입니다
그가 남긴 명언에 미루어봐도 그는 아주 청렴결백한 청백리의 삶을 살았던것 같은데요
오늘은 맹사성의 재미있는 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우의정 좌의정 까지 올랐던 조선 초를 대표하는 정승이었죠
사실 조선초를 대표하는 정승으로는 황희가 있지만 그는 생각보다 많은 비리 사건을 저지른 편이었습니다
어쨌든 맹사성은 태몽부터 심상치 않았는데요
어느날 맹사성의 할아버지인 맹유에게 며느리가 찾아와 자신이 해를 삼키는 꿈을 꿨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맹유는 절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던 아들 맹희도에게 자신이 위독하다는 급전을 띄워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라 한 뒤 며느리와 잠자리를 가지게 했는데 그렇게 태어난게 맹사성이었다고 하죠
이런 심상치 않은 이야기는 또 있는데요
고려말 무신이던 최영이 어느날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용 한마리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배나무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꾼것이죠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최영은 얼른 배나무가 있는곳으로 나가보니 어린 맹사성이 배나무에 올라가 배를 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최영이 꾸짖는척하면서 맹사성을 다그치니 보통 아이들처럼 울거나 도망치지 않고 나무 아래로 내려와 예의를 갖추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모습에 훗날 큰인물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손녀와 짝을 맺어줘 그를 손녀사위로 삼았다고 하죠
그리고 최영은 자신이 낮잠자고 있던 집을 이후 맹사성에게 물려줬는데 그 집이 바로 충남 아산에 있는 '맹씨행단' 이라고 합니다
이후 맹사성이 19세 나이로 장원급제하여 파주 군수로 부임해 자만심이 가득한 청년이었을때 그에게 엄청난 깨우침을 주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어느날 맹사성은 한 스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를 물었죠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쁜 일 하지 않고 좋은 일만 하면 된다고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맹사성은 그의 대답을 어이없어해 하며 “그건 삼척동자도 압니다.” 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는것이었죠
그때 스님은 “이건 어린아이도 다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는것은 팔십 먹은 노인도 어려운 일 이지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듯한 충격을 받은 맹사성은 멍하게 스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스님이 "차나 한잔 들고 가시지요"라며 차를 따르는것이었죠
그런데 스님이 따르던 차가 넘쳐 방바닥에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맹사성이 "스님 차가 넘칩니다 "라고 하니 스님은 “차가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아시면서 어찌 지식이 넘쳐 인격을 망치는 것은 모르십니까?” 라고 하는것이었죠
그 말을 들은 맹사성이 부끄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급히 나오다가 문틀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이 모습을 본 스님은 “몸을 낮추면 머리를 부딪칠 일이 없지요” 라고 하며 혈기넘치는 젊은 맹사성에게 겸손의 의미를 일깨워 주웠던 것입니다
맹사성은 그 일이 있고나서 무언가 깨달은게 있었는지 이후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청백리가 되어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정승까지 된것이죠
그리고 맹사성은 관직 생활 동안 모든일을 공평하고 깔끔하게 처리해 여러 관리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죠
그는 관직이 낮고 젊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옷가지를 정갈히 하고 공복을 갖춘뒤 대문밖에 나가 손님을 맞아들였고 상석에 앉혔다고 하는데요
거기다가 손님이 돌아갈때는 배웅하러 나와 말을 타고 출발 한 뒤에야 집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맹사성은 마음이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였죠
또한 그는 나라에서 주는 녹봉만으로 생활을 하다보니 집에서는 비가 새는곳도 있었을 정도로 가난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어느 비오는날 한 고위직 관리가 맹사성의 집을 찾았다가 너무 초라한 집에서 살고 있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죠
이후 방안에 들어간 그 관리는 더욱 놀랄수 밖에 없었는데 천정에서는 비가 새 맹사성 부부가 빗물 떨어지는 곳에 그릇을 갖다 놓기 바빴던 것입니다
이에 그 관리는 맹사성에게 "대감께서 어찌 이런 초라한 집에서 사십니까?" 라고 물으니 맹사성은 허허 웃으며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런 백성들 생각을 하면 나라의 벼슬아치로서 매우 부끄럽습니다 나야 그에 비하면 호강 아니겠습니까?" 라고 했다고 하죠
그만큼 맹사성의 생활이나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그의 훌륭한 인품에는 단 한점의 티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에 소박한 차림새에 하인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 소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적도 많다고 하는데요
맹사성은 휴가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고향인 온양으로 가 낚시를 할때도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비가내려 시냇가에 물이 좀 불어나긴 했지만 성인 남자가 건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죠
그런데 한 젊은 선비가 오더니 낚시를 하고 있던 맹사성에게 선비가 옷을 걷어 체통없이 이곳을 건널수는 없으니 자신을 좀 업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맹사성은 군말 없이 그를 업어다 냇가를 건너고 있었는데 그가 쓰고 있던 삿갓이 자꾸 젊은 선비의 얼굴에 부딪히자 짜증이 난 선비는 맹사성의 삿갓을 벗겨 땅에 내동댕이 쳐버렸죠
그러자 고위관리들이 쓰던 옥관자가 드러나게 되었고 [옥관자 (玉貫子) : 조선시대 당상관 이상의 벼슬아치가 쓴 옥으로 만든 망건의 관자] 그제서야 맹사성이 일반 백성이 아닌걸 알게된 젊은 선비는 그에게 어디사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맹사성은 온양사는 맹고불이라고 답했죠 [고불(古佛) : 맹사성의 호]
그때서야 그가 맹사성 대감인걸 알게된 젊은 선비는 얼른 그의 등에서 뛰어내려 물에 쫄딱 젖는것도 모른채 부리나케 도망을 쳐버렸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요
맹사성이 좌의정에 제수 되었을때 휴가를 받아 고향인 온양에 내려오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한 고을의 현감이 맹사성이 자신의 고을을 지나쳐 간다는 걸 알고서 그에게 잘보이기 위해 준비를 했죠
그 현감은 부하들을 시켜 길을 깨끗하게 청소하게하고 아무도 지나다니지 못하게 감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는데 오라는 맹사성은 오지않고 웬 허름한 옷을 입고 소를 탄 노인이 그 길을 지나가는것이었죠
이에 길을 지키고 있던 포졸은 그 노인에게 "다른길로 돌아가시오!" 라고 소리쳤는데도
그 노인은 "온양사는 맹꼬불이가 제 소 타고 제 갈 길 가는데 어찌 사람을 붙잡는가?" 라고 하면서 그냥 길을 지나가버린것입니다
이에 포졸은 현감에게 이 일을 보고했는데 그제서야 그 노인이 맹사성이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죠
큰일난 현감은 부랴부랴 맹사성에게 사죄를 드리러 달려가다가 가지고 있던 관인을 연못에 빠뜨려 버렸고 그이후 그 연못을 '인침연(印沈淵: 도장 빠진 연못)'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에 용인에 도착했을 때 해가 지고 있어서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어야 했죠
관아에 가면 융숭한 대접을 받겠지만 맹사성의 성품상 이를 용납할수 없었고 그냥 주막으로가 작은 방에서 조금만 쉬다 가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주막에 도착했는데 한 젊은선비가 당나귀를 탄채 종을 거느리고 주막에 들어서는것이었죠
그리고 맹사성과 그 젊은선비는 같은방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젊은선비가 맹사성을 봤을땐 차림새도 뭔가 후줄근하고 별볼일 없는 늙은이로 보였는지 장난기가 발동해 그를 놀려줄려고 공당놀이를 하자는 것이었죠
맹사성이 그게 무엇인지 물으니 젊은선비는 "노인장은 말끝에 공을 붙이고 나는 말끝에 당을 붙이면 되는 간단한 놀이 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놀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젊은 사람이 반말 비슷하게 하면서 나이든 사람을 놀리는 그런 놀이였는데요
맹사성이 알겠다고 한뒤 "젊은선비께서는 어딜가는공?" 이라고 물었죠
그러니 젊은선비는 "한양에 간당" 이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맹사성이 다시 "한양엔 왜 가는공?" 하고 물으니 그는 "과거시험 보러간당" 이라고 했죠
그래서 맹사성이 "내가 합격시켜줄공?" 하니 젊은선비는 막 웃으며 "바라지도 않는당" 이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맹사성이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 과거시험에서 합격한 사람들이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는것이었죠
그래서 나가봤더니 주막에서 자신을 놀리던 그 젊은선비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맹사성이 그 젊은선비 앞에 다가가 "자네 나를 알아보겠는공?"하고 물었죠
그 젊은이는 머리를 들어 맹사성을 보고 사색이 되어 "주.. 죽여주사이당" 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대신들은 영문을 몰라 뭔소리 하는거냐며 궁금해하자 맹사성이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고 그곳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고 하죠
이후 맹사성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그 젊은선비에게 벌을 주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웃으며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황희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 사직 상소를 올렸지만 세종이 받아들여 주질 않아 결국 75세의 나이가 될때까지 관직생활을 했었다고 하죠
그이후 사직을 하고나서 불과 3년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세종은 모든 국정을 중단한채 문무백관들을 모두 거느리고 맹사성을 문상했다고 합니다
여러 일화에서 말해주듯이 확실히 맹사성은 황희와는 좀 다른 청렴하고 소탈한 정승의 대명사 이기도 한것 같네요
조선초 청렴결백한 정승의 상징 맹사성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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