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맛있어서 비극적 사건까지 벌어진 명나라 황제가 사랑했던 조선의 고급음식
명나라 선덕제가 정말 좋아해 손수 칙사까지 파견했던 조선음식 두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거꾸로 조선의 두부가 맛있기로 소문이 나면서
중국의 황제들조차 조선의 두부에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두부가 처음 생겨난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10세기 북송시절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두부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봤을 때
두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0세기 즈음일 거라 예상되죠
원래 중국인들은 오랜 세월 북방의 유목민족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에게 양고기를 수입하는 것으로 고기를 얻고 있었는데
북송 시절 북방 유목민족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양고기를 수입하는 양이 크게 줄어들게 되자
고기를 대체할 단백질을 얻기 위해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이후 두부는 한반도에도 전해지게 되었는데
고려 말기 성리학자인 이색이 지은 '목은집'에
'대사구두부내향'이라는 시에서 두부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걸로 봤을 때
고려 말에 처음 두부가 들어왔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후에는
조선의 두부가 맛있기로 다른 나라에도 소문이 퍼졌을 정도라고 하죠
세종 10년인 1428년 북경에 사신으로 갔던 공조판서 성달생이
한양으로 급히 보고서 한통을 보냈는데요
그 보고서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와있는 백언이
사신단을 따라온 요리사가 만든 두부를 황제인 선덕제에게 바쳤는데
선덕제가 그 두부를 맛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백언을 황제가 쓰는 물건을 관리하는 조직인
어용감의 부책임자로 임명했다는 내용이 써져 있었죠
놀라운 것은 선덕제가 그때 맛본 두부의 맛을 잊지 못했는지
6년 후에 조선으로 직접 칙서까지 보내왔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명나라 황제의 칙서가 무려 3통이나 세종의 앞으로 날아왔는데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황제가 정식으로 도장까지 찍어서 보낸 칙서였기 때문에
세종과 신하들은 안에 엄청난 내용이 써져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긴장되는 마음으로 열어본 칙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황당한 내용이 써져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다음번에 사신을 파견할 때는 6년 전에 왔던 요리사처럼
두부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내달라는 것이었죠
최근에 명나라로 사신들을 따라왔던 조선의 요리사들도
분명히 요리실력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6년 전에 왔던 요리사의 두부요리만큼은 못했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좀 더 두부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선의 두부에 푹 빠지게 된 명나라는
이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조선 두부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은 명나라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명나라의 황제였던 만력제는 흔쾌히
조선에 막대한 대군을 파병해 줬는데
문제는 바로 그 많은 명나라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었습니다
어느 날 왜군을 피해 한양을 버리고 떠난 선조에게
명나라의 군대가 조선의 민가를 약탈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죠
깜짝 놀란 선조는 명나라에 이 사실을 항의했는데요
명나라 측에서는 원래 우리 병사들도 조선인들에게 식량을 사 먹으려고 했지만
우리가 병사들에게 식량을 사 먹으라고 지급한 은을
조선인들이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대답을 해왔습니다
사실 명나라 측에서 했던 대답도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
원래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명나라인들은
제대로 값을 치르고 식량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은을 잔뜩 싸들고 왔었다고 하죠
하지만 문제는 당시 조선이 은을 화폐로 쓰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인데요
이러니 명나라인들 입장에서는 돈을 내겠다고 하는데도
식량을 팔지 않겠다는 조선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조선인들 입장에서는 받아봤자 쓸데도 없는 은을 내밀면서
귀한 식량을 달라고 하니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되다 보니 결국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명나라 병사들이
조선의 민가를 약탈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조는 명나라 병사들이 매일 먹을 식량을
조선의 조정에서 해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죠
그렇게 명나라 병사들의 식단을 조선에서 책임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명나라 측에서 장군들부터 말단 병사들의 식단까지
모두 두부를 넣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이었는데요
지금이야 두부를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의 두부는 주변 나라에도 맛있기로 소문이 퍼졌던 고급식품이었습니다
배정된 돈은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든 비싼 두부를 매일 줘야 하다 보니
조선의 조정에서는 조선 병사들이 먹을 식단을 부실하게 만들고
거기서 남는 돈으로 명나라 병사들에게 두부를 사준다는 황당한 선택을 해버렸죠
덕분에 조선군은 고위간부들조차 부실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말단 병사들은 소기름만 둥둥 떠다니는 뭇국에
반찬이라고는 간장 한종지만 나오는 식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명나라 병사들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었죠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명나라 고급장교에게 제공되는 식단은
천자호반이라는 이름의 식단으로 고기 한 접시와 두부
채소와 절인 생선 한 접시, 밥 한 그릇, 그리고 술 세 잔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초급 장교에게는 지자호반이라는 식사를 제공하는데
고기와 두부, 채소, 그리고 밥 한 그릇이 나왔죠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인자호반이라는 식사가 나왔는데
두부와 절인 새우 한 접시, 밥 한 그릇이 나왔다고 합니다
명나라 병사들의 식사도 지금 우리가 먹는 식단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였던 데다
전쟁 중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잘 나온 편에 속했다고 하죠
그렇게 명나라 병사들은 좋은 대우를 받은 대신에
수많은 조선의 병사들은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만 했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주한미군에게는 식사 때마다 치킨을 주는 대신
국군 병사들에게는 365일 간장계란밥만 준 셈이죠
조선의 두부가 너무 맛있어서 생겼던 특이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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