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방구석 여포와 키보드 워리어들 이야기
온갖 욕부터 ㅅ드립까지 난무했던 책들
요즘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웹툰이나 전자소설 등
종이책이 아닌 전자문서의 형태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서대여점에서
만화책이나 소설책 등을 빌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이런 도서대여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조선후기에 있었던 '세책가'라는 대여점이었죠
현재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악플을 달며 키보드 배틀을 하듯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세책가에서 빌린 책을 통해 대결을 펼쳤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책들은 보통 국가에서 주도해 인쇄를 한 것을
교서관이라는 기관을 통해 지방관청과 교육기관으로 배포되거나
'책쾌'라고 불리는 책장수들을 통해 판매되었다고 하는데요
중앙정부에서 배포한 책들의 경우 무료이거나
대부분이 저렴한 가격에 팔리기는 했지만
수량이 매우 적어서 이름난 가문이나 지방관청에 가야만
겨우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죠
그렇다고 책쾌에게서 책을 사는 경우 가격이 비싸서
일반백성들이 사기에는 부담이 컸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기계로 생산한 종이를 가지고
상당히 저렴하게 책을 찍어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장인들이 한지를 수공업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한지를 이용해 만드는 책 또한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었죠
때문에 백성들이 조금 더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전국 각지에 서점을 만들자는 상소가 계속해서 올라왔지만
정승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이 책을 가지고 돈벌이를 해서는 안된다며
서점을 만드는 것을 계속해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551년 명종대가 되어서야 민간에도 서점이 생겼다고 하죠
그렇게 주요 도시에 서점이 생기면서
예전보다는 책을 구하기가 더 쉬워졌지만
여전히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은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때문에 18세기가 되면서 한양을 중심으로 세책가라는 대여점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세책가는 현대의 도서대여점처럼 여러 종류의 책을 준비해 뒀다가
손님에게 돈을 받고 일정기간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빌리는 책이 소설책이었다는 것도
현대의 도서대여점과 비슷한 점이죠
그런데 세책가에서 책을 빌린 사람들은
단순히 빌린 책을 읽기만 하고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온갖 낙서를 다 쓰는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았던 낙서가 바로
세책점 주인에 대한 욕이 써져 있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재미없는 책들만 모아놓고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받는다며 세책가의 주인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책에 낙서가 쌓이면서
낙서로 가득한 책을 빌리게 된 사람들이
이런 낙서투성이인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다니
세책가 주인은 양심이 없는 거 아니냐는 욕을 적기도 했습니다
세책가 주인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거나
북방지역으로 보내 강제로 군생활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욕도 있었고
심한 경우 부모를 들먹이며 패드립을 하는 낙서까지 있었다고 하죠
세책가의 주인은 개의 자식 말의 자식등과 같은 사람이니
만약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세책가의 주인과 같은 짐승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대놓고 주인을 비난하고 욕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세책가 주인의 가족까지 들먹이면서
겨우 이런 책을 가지고 그런 비싼 돈을 받아먹다니
너희 가족들은 모두 도적떼나 다름없다는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한 경우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성희롱이 담긴 낙서까지 있었다고 하죠
빌린 책에 낙서가 너무 많다며 불평하는 낙서도 있었고
이 가게에서 책을 빌리는 가격이 너무 비싸니
여기서 3번 이상 책을 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집안 기둥뿌리가 뽑힐 거라 경고하는 내용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권짜리 책을 일부러 나눠서 4권으로 만들었다며
세책점 주인을 잡놈이라 욕하기도 했고
책의 보존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중간중간 빠진 내용이 많다며
빠진 부분만큼 다시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낙서도 있었죠
어떤 책의 경우는 원본이 아니라
원본의 내용을 옮겨 적은 필사본도 있었는데
필사본을 쓴 사람의 글씨체가 너무 엉망이라
도저히 내용을 알아볼 수 없다며 불평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 세책점 주인이나 그의 가족들을 향한 성희롱이 아니라도
대놓고 남녀의 성기를 그리거나
남녀가 뜨밤을 보내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그려놓는 등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낙서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죠
그리고 요즘 인터넷에서 댓글로 싸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듯이
이 시절에는 세책가에서 빌린 책들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상대와 키보드배틀을 펼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소자식 또는 돼지의 자식이라는 유치한 도발부터
이 책을 빌려보는 사람들은 3대가 고자가 될 거라는 저주를 남기는 등
특정 대상이 아니라 책을 보는 사람들 모두를 향해 도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모든 낙서가 수준 낮은 욕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정중한 말투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내용도 많았다고 하죠
귀한 책을 빌렸으면 그냥 곱게 보고 돌려주는 것이 예의이니
낯 뜨거운 그림을 그리거나 무식한 욕설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글도 있었고
지금 나라가 어려워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어찌 이런 이야기책을 빌리는데 많은 돈을 쓰냐며 꾸짖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도 그런 소설책을 비싼 돈을 주고 빌린 처지면서 말이죠
갈수록 기울어가는 나라 꼴을 걱정하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지금 조선이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놓인 등불과 같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농사를 짓거나 상공업에 힘쓰면서
나라에 도움이 될 생각은 하지 않고
쓸모없는 소설책 따위를 빌려주고 비싼 돈을 받는 건
매국노나 다름없다는 꾸짖음이 담겨있는 내용이었죠
물론 그 글을 보고 책방 주인이 눈물을 흘리며 반성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정작 본인 또한 그런 쓸모없는 소설책을 빌려놓고
그 소설책에다 낙서를 해놓은 상황만 아니었다면요
시리즈로 된 책을 빌린 사람들 중에는
다음 편에 나올 내용들을 미리 스포하는 경우도 있었고
장편소설을 읽고 나서는 나름 진지한 독후감을 써놓는 사람도 있었죠
특히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데
관우가 죽는 장면이 나오는 편에서는
함정을 파서 관우를 죽게 만든 오나라의 장수
여몽을 욕하는 낙서가 한가득 써져 있었다고 합니다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자신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갑자기 들이닥친 위연이 촛불을 꺼뜨리면서
결국 제갈량의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는
위연을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욕들을 퍼부었다고 하죠
마치 요즘 인기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에서 과몰입한 일부 시청자들이
악역을 맡은 배우를 향해 댓글로 욕을 퍼붓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네요
세책가는 일제시대까지 계속 운영되었는데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장하는 낙서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나라를 빼앗기고 울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힘을 합쳐 일본군을 몰아내고 다시 나라를 되찾자는 내용이었죠
물론 새책점 주인들이라고 해서 이런 낙서를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책의 맨 앞부분에 만약 욕설이 들어간 낙서를 썼다가 걸리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으며
책의 내용을 억지로 늘렸다는 항의를 받았을 때는
한 권으로 묶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여러권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며 변명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낙서가 너무 많아서 지저분하게 보이는 부분에는
새 종이를 덧붙여서 낙서를 가리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새로 덧붙인 종이는 어김없이 다른 낙서로 채워졌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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