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미워도 그 사람이 만든 이것은 지독하리만치 사랑했던 영조 이야기
조선의 21대 국왕인 영조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바로 고추장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고추장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의 식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죠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소화기능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입맛이 없을 때가 많아서 입맛을 돋울 수 있는 반찬들을 좋아했는데요
소금으로 간을 한 조기나 시원한 김치를 즐겨 먹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던 영조의 눈길을 끈 것이
바로 매우면서도 달콤한 데다 감칠맛까지 느껴지는 고추장이었습니다
온갖 귀중한 음식들을 먹으며 사치를 부렸던 왕들에 비하면
영조는 그래도 소박한 식사를 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하죠
왜냐면 한반도에 처음 고추가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이후부터이고
그 고추를 이용해 담그는 고추장이 기록상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숙종 46년인 1720년 어의 이시필이 지은 '소문사설'이라는 요리책인데
영조가 국왕으로 즉위한 시기가 1724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고추장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흔한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있는 기록을 봐도 영조가 국왕으로 있던 시절은
고추장이라는 재료가 궁중 요리에 도입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었죠
때문에 그 시절의 고추장은 흔하고 소박한 반찬이 아니라
마치 귀한 약재처럼 다뤄지던 새롭고 희귀한 진미였다고 합니다
영조는 식사를 할 때 여러 가지 반찬들을 고추장에 찍어먹거나
밥과 반찬을 고추장에 비벼 비빔밥을 만들어서 먹었다고 하죠
고추장이 없으면 아예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고추장을 좋아했는데
특히 궁궐 내에서 만든 것보다는 민가에서 만들어진 것이나
사헌부 지평인 조종부의 집에서 만든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궁중 약방의 도제조인 김약로가 영조에게
요즘도 고추장을 계속 드시냐는 질문을 했는데
이때 영조가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의 맛이 무척 좋았다는 답을 했죠
김약로가 그 고추장은 조종부의 집에서 만든 것인데
다시 수라상에 올리라고 할지 물어보았고
영조는 바로 그렇게 하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영조는 조종부가 탕평파 영의정인 이천보의 비리를 거침없이 비판했을 때
그가 이천보의 비리 때문에 비판을 한 것이 아니라
당파싸움에서 자신이 속한 파벌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상대편을 공격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종부를 매우 괘씸하게 여겼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영조는 조종부는 미워해도 그의 집 고추장은 미워할 수 없었는지
조종부가 죽고 5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집 고추장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조종부의 성이 바로 순창 조 씨인데
앞에서 말한 소문사설이라는 요리책에서도
조종부 집안의 고추장과 그 제조법이 기록돼 있을 정도로
당시 조종부 집안의 고추장은 굉장히 명성이 높았다고 하죠
그 비결은 바로 일반 고추장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영조가 평생 좋아하던 고추장을
처음 궁궐에 들고 와 영조에게 바친 사람이 바로 사도세자였다고 하네요
20년 넘게 계속된 영조의 고추장 사랑도
말년이 되어서는 약해진 입맛 때문에 점점 약해졌다고 하죠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769년 6월
내의원 도제조 김치인이 근래에 올리는 고추장이 어떠냐고 묻자
영조는 고추장도 이제는 질린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추장 외에 자신의 입맛을 돋울 수 있는 반찬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고추장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내의원에서 만든 고추장이
사대부의 집에서 만든 고추장보다 못한 거 같다고 말하면서
조종부의 집에서 만든 고추장을 그리워하는듯한 말을 남겼죠
엄청난 국수 마니아이기도 했던 영조는
평소 신하들에게도 국수를 권할 정도로
고추장 못지않게 국수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추장과 함께 영조가 즐겨 먹은 것으로 유명한 반찬들이
바로 송이버섯과 전복, 꿩고기인데
이 중 송이버섯은 말할 것도 없고 전복이나 꿩고기 같은 경우도
조선시대에는 굉장히 귀하고 값진 식재료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귀한 것들을 즐겨 먹었던 식사습관과
백성들에게 금주령을 내려놓고 본인은 몰래 술을 마셨던 기록 때문에
후대에 와서는 영조를 두고 위선자라 비판하는 의견들도 많아졌죠
영조는 왕으로 있는 기간 내내 백성들에게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술을 만드느라 곡물을 낭비할 수는 없다며
금주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조실록을 살펴보면 곳곳에서
영조가 술을 마셨다는 걸 암시하는 기록이 발견된다고 하죠
영조는 술을 마시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 때마다
자신이 마신 것은 술이 아닌 오미자차라고 변명을 했으며
말년에는 다리병의 통증을 잠시 잊기 위해서 '송다'라는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많은데
송다는 비록 이름은 차이지만 솔잎과 누룩을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솔잎주라는 술을 마신 거나 마찬가지였죠
1770년에 김관주라는 인물이 영의정 홍봉한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여기에 써져 있는 내용을 보면 몇 해 전 영조가 송다를 내오라는 명을 내렸을 때
홍봉한이 금주령 기간이라는 핑계로 영조의 명을 거부하면서
왕의 체면과 건강에 해를 끼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송다가 술이 아닌 차가 맞았다면
영조의 성격상 절대 홍봉한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송다가 차가 아닌 솔잎주였다는걸 짐작할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영조는 사치를 금지한다며
왕실에서 쓰는 가마에 금으로 도금을 하는 것을 금지해 놓고선
당시 한반도에서 매우 구하기 힘들었던 주석으로 도금을 했으며
좋아하던 음식 또한 당시 기준으로는 사치스러운 고급 요리인
인삼이나 송이버섯, 전복, 꿩고기
그리고 메추라기 고기나 사슴꼬리, 고추장을 먹었습니다
물론 신분제 사회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는 국왕이
저 정도의 사치를 부린 것을 두고 무조건 비난을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백성들에게는 수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대로 술도 마시지 못하게 금주령을 내리고는
금주령을 어긴 경우 심하면 사형까지 내릴 만큼 엄한 처벌을 해놓고
정작 본인은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술을 자주 마시거나 진귀한 반찬들을 즐겨 먹은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두고 그를 위선자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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