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촉나라 최후의 명장이자 오나라 명장 육항의 공격을 막아낸 서진의 명장 나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촉나라 최후의 명장으로는 강유를 들수 있고
촉나라 말기 최강의 방패로는 왕평을 들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촉의 마지막 명장이 또 한명 있었는데요
바로 '나헌' 이라는 인물이죠
나헌은 촉나라에서는 그렇다할 활약이 없었지만
서진이 촉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오나라의 명장이던 육항의 공격을 막아낸것 덕분에
명장으로 인정받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지 연의만 봤을땐 삼국지 후기의 인물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생소한 이름이긴 한데
오늘은 이 나헌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나헌은 형주의 양양 출신이었는데
나헌의 아버지인 나몽이 전쟁을 피해 촉나라로 떠날때
함께 익주로 들어가 살게 되었죠
나헌은 어렸을적부터 학문과 재능이 뛰어났고
13살의 나이에 문장을 지을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편으로 호방, 대범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엄정하고 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학자들과 선비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에게 베푸는것을 좋아했고
재물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그런 인물이었죠
그의 뛰어난 능력덕에 훗날 유선(劉禪 : 유비 아들)이
장남 유선(劉璿)을 황태자에 책봉 했을때 태자사인(태자를 수행하던 직책)으로 임명되었다가
이후 태자서자, 상서이부랑 등으로 빠르게 승진을 하게 되었는데요
선신교위로 임명되어 동맹국이던 오나라에 사신으로도 파견되었는데
오나라의 대신들에게도 능력을 인정받아 칭찬을 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그의 탄탄대로에도 제동이 걸리고 말았으니
바로 당시 유선의 총애를 받고 있던 환관 황호 때문이었습니다
황호는 총애를 등에업고 온갖 못된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는데
그런 황호의 강력한 권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잘보이기 위해 아부를 떨때
나헌은 황호의 악행에 전혀 동조하지도 않고 아첨도 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자 황호는 나헌을 탐탁치 않게 여기게 되고
결국 그는 파동태수로 좌천되어 도독 염우의 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263년, 위나라의 종회와 등애가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를 침공했죠
이때 염우는 나헌에게 2000의 병력을 주고 영안을 수비하도록 지시한 뒤
위나라의 침공을 막기위해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험난한 음평의 산길을 돌아 성도를 공격한 등애 때문에
결국 촉나라는 멸망하고 마는데요
촉나라 수도 였던 성도가 함락되었다는 소문이 영안성에 퍼지자
성안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관리들이 도망을 치는 등 영안성 내부에서 난리가 나자
나헌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범인을 붙잡아 목을 베어 버리면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는 모두 베어버리겠다고 소리쳤고
얼마안가 들끓었던 혼란은 금새 사그라 들었으며
백성들 역시 안정을 되찾았죠
하지만 얼마뒤 나헌은 황제 유선이 진짜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장수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도정에 들어가
3일동안 군대를 주둔 시켰다고 하죠
그의 이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황제 유선에게 해를 끼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라는
묵언의 메세지를 보낸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후 다시 병력을 이끌고 영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런데 촉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오나라는
곧장 촉나라 땅을 먹기 위해 공격을 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오나라의 병력은 나헌이 지키고 있던 영안으로 향해 진격하게 됩니다
그러자 나헌은 병사들과 백성들을 모아놓고
"촉나라가 멸망하기 전에는 순치(입술과 이)의 동맹국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자신들의 이익을 탐하여 공격해 들어오다니 이는 맹약을 저버리는 행동이다
촉한이 망했으니 오나라도 오래 버틸수 없다
이대로 오나라의 포로가 되겠는가?" 라고 소리쳤는데
그러자 병사들의 사기가 순식간에 올라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였죠
또한 나헌의 이 외침을 들은 부하 장수들 역시
나헌의 명령을 받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 소식을 영안으로 진군해오던 오나라도 듣게 되었는데
그러자 오나라 역시 나헌의 말에 순응해
말머리를 돌려 군사들을 오나라로 물리게 되었죠
그러나 얼마후 종회가 반란을 일으키고
강유와 장익 등 과거 촉나라의 장수들이 모두 죽고
등애 마저 아들 등충과 함께 역적으로 몰려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거기다가 성도로 파견되있던 관료들 역시 모두 낙양으로 끌려가자
성도는 사실상 텅빈 상태가 된 것이죠
그러자 오나라 황제 손휴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하는데
바로 보협에게 군대를 줘 촉나라 땅을 빼앗아 오라는 명령을 내린것입니다
이에 나헌은 군대를 이끌고 출진해 강에서 보협의 진군을 막아 버렸죠
하지만 숫적 열세에 밀려 전황이 점점 나빠지자
나헌은 양종이라는 부하를 북쪽으로 보내
위나라의 장군인 진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때 문무 관리들의 인수까지 모두 보냈으며
자신의 아들까지 진왕 사마소에게 인질로 보냈습니다
자식을 볼모로 보냈다는건
확실히 위나라에 항복을 하겠다는 증표였죠
하지만 위나라의 지원군은 좀처럼 오지 않았는데요
오나라의 보협도 전군을 재정비 한뒤 다시 공격을 감행했는데
나헌은 그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성안에 틀어박혀 수성을 하지 않고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나가 보협의 군대와 맞부딪쳐 버렸던 것입니다
당연히 수성만 할줄 알았던 보협은 허를 찔려 오나라군은 대패하고 말았죠
그런데 워낙 상황이 급박해 위나라에 급히 지원군을 요청했던 나헌이
월등히 유리한 수성을 하지 않고
갑자기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서 수적으로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보협군을
대파해 버렸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 한데요
이때 나헌이 어떻게 대승을 이뤄낼수 있었는지는
어떤 기록에도 자세히 기록되지 않아 아쉽게도 알수 없다고 하죠
어쨌든 보협의 영안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격분한 오나라 황제 손휴는
당시 오나라 최고의 명장이던 육항에게 3만의 병사를 주어
영안성을 함락시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육항이 이끄는 수만의 군대에 영안성은 포위되고 말았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위나라의 지원병력은 오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영안성 내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전염병에 걸려
제대로 전투를 수행할 능력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러자 여러명의 부하 장수들이 나헌에게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말하자
나헌은 '무릇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어 백성들의 우러름을 받으면서
위태로움을 능히 평정시키지 못하고
위급하다 하여 그들을 버리는 것은 군자의 할 도리가 아니오
나는 이곳에서 목숨을 다할 것이오.' 라고 말한뒤
목숨을 바쳐 영안성을 방어해 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헌의 뛰어난 통솔력으로 인해
6개월이 지나도록 육항은 영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고
마침내 위나라의 호열이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하자
육항은 어쩔수없이 포위를 풀고 물러날수 밖에 없었죠
숫적으로 열세인 상황에 6개월이나 되는 기간동안
명장 육항의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에
나헌은 훗날 명장으로 이름을 높이게 된 것 입니다
이후 진왕 사마소는 나헌이 목숨을 걸고
오나라 육항을 막아낸 공을 치하해
그를 능강장군에 임명했고 과거에 맡고 있던 임무를 그대로 맡겼다고 하죠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바로 능강장군에서 능강이라는 말의 뜻인데요
능(凌)자가 '능멸하다, 업신여기다' 라는 뜻인데
이는 장강 지역을 능멸하라, 업신여기라 라는 의미로
오나라를 평정해버리라는 뜻이라고 하죠
시간이 흘러 265년, 조조가 세웠던 위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워 초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 나헌은 처자식들을 낙양에서 거주하게 했는데
평소 나헌을 좋게보고 있었던 사마염은
나헌의 아들 나습에게 벼슬을 내려주기도 했죠
그리고 나헌도 관군장군 가절로 관직이 올랐고
이후 조정으로 와 사마염의 곁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268년 3월의 어느날
사마염은 화림원에서 연회를 열게 되는데
이때 나헌 역시 사마염을 수행해 연회에 참석하게 되죠
그리고 사마염은 나헌에게
과거 촉나라 신하들 중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했고
이에 나헌은 제갈경(제갈첨 아들), 비공(비의 아들), 진유 (진지 아들)
그리고 상기, 두진, 여아 등 많은 사람들을 천거 했는데
사마염은 나헌이 천거한 모든 사람들에게 벼슬을 내려 주었고
이후 그들 모두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또한 이때 나헌이 추천한 인물이 또 있는데
그는 바로 삼국지 정사를 쓴 '진수' 이죠
나헌과 진수는 모두 초주의 제자였기에
둘이 친분이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만큼 사마염은 나헌의 능력을 굉장히 높게쳐주고 있었고
그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죠
그리고 1년후인 269년 다시 영안으로 돌아간 나헌은
오나라의 무성을 공격해 함락 시켰고
오나라를 멸망시킬 계책을 사마염에게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 멸망의 뜻은 세우지 못하고
불과 1년후인 270년, 나헌은 세상을 떠나고 마는데요
그러자 사마염은 매우 슬퍼하며 그에게 안남장군의 관직을 추증하고
열후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하죠
그는 이후 촉한의 마지막 명장이자 충신으로 평가 받았는데요
일부에서는 나헌이 명장인건 맞지만
충신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하죠
그것은 바로 주군을 배신하지 않은채 어쩔수 없이 적에게 항복했다지만
결국엔 자신의 주군을 부하로 삼는 적에게 항복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과거 이릉에서 유비가 패배하고 퇴로가 끊겨 위나라에 투항한 황권은
당시 적군이던 오나라에 항복하는것은 유비에게 받은 은혜를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나라가 아닌 위나라에 항복한것을 어느정도 이해해 줄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강유는 위나라에 항복은 했지만 종회를 이용해 촉한을 부활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를 충신으로 꼽을수 있다고 하지만
나헌은 불과 몇개월 까지만해도 죽어라 싸우던 위나라에 복종을 맹세하고
오나라 역시 멸망할 것이라며 오나라의 군세를 막아선 행동은
어찌보면 기회주의자의 면모가 보인다는 이유에서
그는 명장이긴 했지만 충신은 아니라는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헌이 유선을 배신한것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에
충신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비난 받아야 할 인물은 아니고
맡은 지역을 보호하는 임무를 다할 뿐이었던 책임감있는 지휘관으로 해석하는게
더 좋을것 같다는 주장도 있죠
아무튼 정말 아쉬운점은
촉나라 마지막 명장의 활약상이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인것 같습니다
자세히 기록되었다면 더욱 유명한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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