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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삼국지의 위나라가 촉과 오보다 훨씬 국력이 강했지만, 두 나라를 압도할 정도로 초강대국은 아니었던 이유

by 사탐과탐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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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위나라가 촉과 오보다 훨씬 국력이 강했지만,
두 나라를 압도할 정도로 초강대국은 아니었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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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위오촉이 치열하게 싸웠던 삼국지 시대에는

위나라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국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조금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는데요

 

물론 위나라가 중원과 하북의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며

세 나라 중 가장 강한 국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촉과 오의 힘을 합쳐도 위가 더 강했던 것 또한 맞죠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점점 과장되면서

촉과 오나라는 겨우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만 해도 잘한 수준이고

두 나라가 서로 힘을 합쳐서 싸워도

절대 위나라를 상대로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유로 위나라가 차지한 중원지역은

오랜 전란과 여러 분쟁에 시달리며 많이 황폐화된 반면에

오나라에 속해있는 강남이나 촉나라의 사천지방은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루면서 그 차이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죠

 

위나라가 후한의 14개 주 중 9개 주

그리고 당시 '중원'이라 불리는 화북 전체를 차지했기 때문에

촉과 오에 비교하면 인구와 생산력 면에서 훨씬 우세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인구수만 해도 '후한서'의 기록을 보면

263년에 이미 443만 명이나 되었는데

이 수치는 촉의 4배, 오의 2배에 해당한다고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나라가

그 시절 천하의 7~8할을 장악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과대평가라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왜냐면 그 당시는 후한말부터 이어진

수십 년간의 유례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시기여서

인구수가 급격히 감소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고 하죠

전근대 농경사회에서는 인구가 곧 국력이고 생산력이었으니

그런 면에서 비교를 해볼까 합니다

 

후한서 군국지 기준으로 삼국이 보유한 인구는 총 850만 명이고

위나라의 인구는 490만 명이니 대략 5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촉나라는 12퍼센트 오나라는 30퍼센트 정도로 볼 수 있죠

이렇게 보면 위나라가 당대의 최강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 패권국가라고 보기는 힘든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위나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위나라 조정에서 조사한 인구가 490만 명이 나왔다는 것은

정부에 세금을 바치고 군역의 의무를 다하는

인구가 490만 명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위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기반이 되는 인구는

490만 명만을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그런 탓에 위오촉의 삼국시대가 정립된 이후

위가 촉이나 오를 상대할 때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붙인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죠

만약 위나라가 중국의 8할 가까운 세력을 독식한 상태였다면

촉과 오가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위나라가 계속해서 촉 또는 오와 일대일 구도로 싸웠다면

압도적으로 우위인 상태에 설 수 있었겠지만

촉과 오가 힘을 합쳐서 그들에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다

 

위나라의 북방에는 이민족이라는 변수까지 있었기 때문에

촉과 오가 필사적으로 싸운 만큼

위나라 역시 필사적으로 주변국들과 싸워야 했던 상황이라고 하죠

 

위가 촉보다 국력이 4배 더 강하다고 해서

촉을 상대로 한 전쟁에 4배나 더 많은 군사들을 동원하고

오나라를 상대할 때는 2배 더 많은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었던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고 합니다

 

제갈량이 북벌을 할 때의 기록을 보면

위는 10만 정도의 병사를 동원한 촉과 맞서 싸우면서

4배나 되는 인구차이가 나는 국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촉나라의 북벌군과 비슷하거나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금 더 많은 정도의 병사들만을 서북 전선에 투입했으며

촉이 20만의 병사를 동원한 1차 북벌 때처럼

오히려 촉의 병사들이 더 많았던 적도 있다고 하죠

그리고 오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는

위가 오보다 더 적은 군사들을 보유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합비 전투에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한 장료나 만총, 장특등은

오나라를 상대할 때마다 상대보다 훨씬 적은 병사들만을 데리고 싸워야 했는데

심지어 장료는 7천 명으로 10만의 손권군을 상대한 적도 있으며

장특 또한 3천 명의 군사로

제갈각이 이끄는 20만의 군사들을 상대로 합비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죠

 

오나라가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계속해서 패배를 당했던 것은

지휘관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였을 뿐

위가 전선에 동원한 병력이 오의 병력보다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위와 오가 전투를 벌일 때마다 병사들의 수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오나라가 항상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고 하죠

사마의가 동연을 정벌했을 때나 관구검이 고구려와 싸울 때의 기록을 봐도

 

동연이나 고구려는 위나라에 비하면

정말로 미약한 국력을 가진 나라들에 불과했지만

동연이 수만 명의 병사들을 모아 전투에 나섰을 때

사마의는 4만 명의 병사들을 겨우 모아서 맞섰으며

관구검은 고작 1만 명의 군대로

고구려의 동천왕이 이끄는 2만 명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위는 촉과 오를 상대할 때는 물론이고

촉과 오보다 훨씬 세력이 작은 나라들을 상대할 때조차

당대 최강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붙이는 기록을 찾아보기가 힘들죠

 

워낙 위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적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 곳에 병력을 집중시키기가 힘들었던 탓도 있고

당시 위의 생산력 또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나라의 주요 지역이라 볼 수 있는 하북의 경우

생산량이 높은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사실에 해당하는 지역은 기주뿐이었고

나머지 청주와 유주, 병주는 명성에 비해 보잘것없는 생산력을 갖고 있었죠

 

특히 유주는 북동부 끝에 위치해 있어서

늘 북방 이민족의 침략을 걱정해야 하는 변방지역이었던 데다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생산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으며

병주는 건조한 고원지대였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고 인구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에 비해 오나라가 보유한 강남과 강동지역은

비록 여전히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 많기는 하고

아열대 기후에 습지가 많아 농사를 짓기 불리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손권이 강남의 개발을 시작하게 되면서

조금씩 중원과 하북의 사람들이 강남과 강동으로 유입되며

서서히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끝에

건업과 무창, 오, 회계 등의 도시들이 만들어졌다고 하죠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 하북지역과의 격차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촉나라의 경우 그들이 보유한 사천분지는

단위 면적당 토지 생산량으로만 따지면

오나라가 차지한 강남, 강동지역보다는 훨씬 뛰어나며

중원, 하북지역과도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는데요

 

사천분지는 동서남북이 높고 험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모두 어렵기 때문에

방어에는 매우 유리한 반면 밖으로 공격해 나가기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생산량 하나만큼은 매우 뛰어난 지역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위나라는 한꺼번에 상대해야 할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는 문제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는 촉과 오 외에도 서쪽으로는 강족과 저족

북쪽으로는 흉노와 선비, 오환 등 여러 이민족들을 상대하고

동쪽으로는 고구려에 대한 방어까지 신경 써야 했죠

 

중국의 14개 주중 9개나 되는 주를 보유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가진 위나라였지만 수비해야 할 곳도 그만큼 많아서

9개 주에서 모은 병력을 촉과 오의 전투에만 투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북과 병주, 기주, 유주의 군사들은

고구려와 선비족, 오환족, 흉노족의 침략에 대비하느라

항상 북방지역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것은 강족과 저족 등 이민족들의 침략에 시달리는

서북지역의 군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북과 예주, 서주의 군사들은 오나라를 대비하기 위해

그쪽지역에 묶여있었기 때문에 촉을 상대할 때는 동원할 수가 없었죠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위가 촉을 침공한다고 했을 때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위나라가 온전히 병력을 사용할 수 있는 주는

옹주와 연주, 청주등 4개 주에 불과했으며

반대로 촉과 오가 힘을 합쳐서 쳐들어왔을 경우에도

위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주는 서주와 예주등을 더한

6개 주에 해당하는 지역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위나라는

촉나라 또는 오나라와 단독으로 싸울 경우

확실히 우위를 보여준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촉과 오가 서로 동맹을 맺고 싸웠을 때는 두나라를 상대로

그렇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준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위나라가 더 불리한 상황에 몰린적도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실제로 위나라가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 몇 배나 더 강한 수준의 국력을 갖고 있었다면

삼국시대는 그렇게 오래갈 수가 없었을 것이며

늦어도 조비 대에는 촉과 오가 모두 멸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제 결론을 내보자면 삼국시대의 세나라 중

위나라가 가장 국력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고

촉과 오를 합친 것보다도 더 우위에 있었던 것 또한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나라가 촉과 오가 힘을 합쳐 대항한다고 해도

절대 대항할 수 없는 초강대국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죠

 

흔히 위오촉의 국력을 7대 2대 1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정도까지 위가 압도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었고

실제 비율은 12대 5대 3 정도로

그렇게까지 심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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