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역사 탐구

육항. 그가 살아있을 때는 손오가 건재했지만 죽자마자 손오가 멸망해버린 오나라 최후의 명장

by 사탐과탐 2024. 6. 28.
반응형
육항이 존재하면 손오(오나라)가 존재하고 육항이 죽으면 손오(오나라)는 멸망한다는 얘기처럼
오나라 최후의 명장이었던 육손의 아들, 육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진의 하충이라는 사람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육항이 존재하면 손오(오나라)가 존재하고

육항이 죽으면 손오(오나라)는 멸망한다" 라는 말이죠

 

말 그대로 오나라의 존망은

육항이라는 인물에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육항은 오나라 최후의 명장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요

 

서진의 명장 양호도 육항이 세상을 떠나고나서야 비로소

손오를 공격할 기회라고 말했다고 하죠

 

오늘은 혼자서 오나라의 명운을 짊어지고 있던

최후의 명장 육항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나라의 육씨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오나라가 촉나라 유비에 의해 멸망 당할뻔했던 것을 구해낸

오나라 최고의 명장 중 한명인 육손이죠

 

육항은 그 육손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육항의 어머니는 손책의 딸이었기 때문에

손책의 외손자 이기도 했으며

육손의 나이가 44살때 육항을 낳았는데

당시로 치면 굉장히 늦둥이였다고 하죠

 

육항의 어릴때의 이야기는 알려진것이 없는데요

 

육항이 18세가 되었던 244년, 오나라에서는 손권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손화와 손패가 대립하는 이궁지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아버지 육손이 손화의 편을 들다가 손권의 의심을 사게 되었으며

손패파의 양축과 오찬의 모함으로

육손은 손권에게 끊임없는 질책과 추궁을 당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분노하고 탄식하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당시 육손의 장남인 육연도 죽고 없었기 때문에

둘째 아들인 육항이 20세의 나이로 아버지 육손의 작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육손에 대한 화가 덜 풀린 상태였기에

육항의 신변도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로인해 손권은 육항까지 불러 육손에 대한 일로 문책을 했고

육항의 집으로 누군가가 왕래하는것 조차 금지 시켰으며

허구헌날 환관들을 육항에게 보내 트집을 잡는등 온갖 패악질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육항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트집에 조목조목 반박을 했고

그 덕분에 점점 손권의 의심은 사그라들었죠

 

하지만 육항은 얼마안가 병에 걸리고 말았는데요

 

그래서 요양을 위해 임지에서 다시 건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때는 오나라의 태자문제가 매듭지어진 후라서

손권은 육항의 손을 붙잡고 울면서

'지난날 짐은 중상모략을 믿고 그대 부친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말았다.

경에게 의심을 품은 일도 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

그간 책망했던 서찰들을 모두 불태워 없던 일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라고 말하며 이전에 있었던 일들에 용서를 구했다고 하죠

 

또한 251년 몸이 회복되어 다시 주둔지로 떠나려 할때

손권이 직접 눈물을 흘리며 배웅을 해줬다고 합니다

 

이후 252년에 손권이 세상을 떠나고 264년 오나라의 황제가 손호가 되기까지

여러번 황제가 바뀌고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도

묵묵히 공을 세운 육항은 이후 여러 고위 장군직을 역임하다

형주일대를 방위하는 지휘관자리에 오르게 되죠

 

그런데 마침내 삼국의 한 축이 멸망하고 균형이 틀어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264년 결국 촉나라가 위나라에 의해 멸망 해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손호는 보협에게 비어있던 촉나라 땅을 차지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당시 익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촉나라 최후의 명장인 나헌의 역습으로

결국 패배를 당해버렸죠

 

이에 손호는 육항에게 3만의 병사를 줘 보협을 도와주라 명했지만

6개월이나 되는 시간동안 나헌의 굳건한 방어를 뚫어내지 못했고

결국 사마소가 보낸 원군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철수하게 된 것 입니다

 

이때 육항은 형주 방어선 모두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되어 있었죠

 

그러던 272년, 손호는 서릉(이릉)독이던 보천을 건업으로 초대했는데

폭군 손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보천은

손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착각해 버렸고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이 지배하던 성들까지 갖다 바치며

서진에 투항을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나라 입장에서 서릉을 빼앗기게 되면

서진에 의해 전방위적인 공세를 받을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이에 육항은 바로 장수들과 함께 서릉을 되찾기위해 출진했고

과거부터 서릉의 지리를 잘 익혀두었던 육항은

서릉을 함락시키는것은 굉장히 어렵고

많은 시간과 병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성을 포위하고 성 주변에는 이중으로 성벽을 쌓으라 명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왜냐하면 일단 보천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위하고

이중 성벽으로는 서진의 구원병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던 것이죠

 

그래서 육항은 빠른 시간안에 포위벽을 구축하기위해 병사들을 다그쳤는데

그로인해 대부분의 병사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자 계속된 고된작업으로 인해

병사들 뿐만아니라 장수들마저 반발하고 나섰죠

 

장수들은 육항을 찾아가 보천과 서릉 쯤이야 빠르게 함락시켜 버리는게 나은데

왜 병사들 힘들게 이딴 성벽쌓는 작업만 계속 시키냐며 따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육항은 "서릉은 지세가 견고하고 식량 또한 충분하며

방비는 예전에 내가 갖춰놓은 것이라 공격해도 오랜기간 함락시킬 수 없을것이오

서릉을 함락시키기 전에 서진의 구원병이

도착할 것이니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던 것이죠

 

하지만 장수들은 그의 말을 듣지않고 계속 공격하기를 주장했는데

육항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날 뇌담이라는 인물이 찾아와 육항에게 공격할것을 간곡히 청하자

육항은 이참에 내말이 맞다는걸 확실히 보여줘야겠다 생각하고

서릉의 공격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육항의 말대로 장수들은 서릉을 공격했지만 결국 패퇴하고 말았고

이후 육항의 명령을 따를수 밖에 없었다고 하죠

 

고된 작업끝에 이중 성벽공사가 서진의 지원군이 오기전에 완공되었고

서진의 명장 양호가 도착했지만

이중 성벽이 워낙 견고했던 탓에 양호는 보천을 지원해주지 못하고

퇴각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마는데요

 

양호는 서릉의 포위를 풀기위해

5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강릉으로 공격해 들어간 것이었죠

 

그러자 장수들은 얼른 병력을 강릉으로 보내

강릉을 구원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육항은 "강릉은 방비가 굳건해 쉽게 함락되지 않을것이고

만약 점령이 된다해도 서진은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할것이오

허나 서릉을 빼앗기면 남쪽의 이민족들까지 영향을 줄수 있으니

강릉을 버리더라도 서릉을 취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뒤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나라가 서진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여긴

장군 주교와 영도독 유찬이

서진의 장수이던 양조에게 항복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에 육항은 장수들에게

"유찬은 우리 군 내부의 허실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

우리의 취약점을 양조에게 알릴것이오

양조는 유찬의 말을 듣고 우리 군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이민족의 병사들이 있는곳으로 공격해 들어올것이니

이민족 병사들이 있던 자리에 정예병들을 배치시키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시오" 라고 명했죠

 

그리고 이후 육항의 예상대로

양조는 원래 이민족 병사들이 있던 곳을 공격해왔고

이미 그곳은 육항의 계책대로

숙련된 정예병들로 가득차 있었으며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모르던 양조는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강릉은 지세가 평탄해

과거에 육항은 제방을 쌓아 물길을 만든 뒤

평야에 물을 채워 도적들의 반란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죠

 

이에 양호는 육항이 만든 물길을 이용해 군량을 수송할 계획을 세우고

오나라에서 제방을 부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제방을 파괴해 군사들을 이동시키겠다라고 소문을 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장수들이 제방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양호의 계획을 눈치챈 육항은 즉시 제방을 부숴버리라고 명했죠

 

많은 장수들이 의아해 했지만 육항은 빠르게 제방을 부숴버렸고

그로인해 양호의 군량 수송 계획에 엄청난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결국 보급 문제와 강릉에서 잘 버텨준 덕분에

어쩔수없이 양호는 퇴각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양조 역시 퇴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육항은 양조를 추격하다가 보천이 뒤를 공격해 올 것이 걱정되어

북을 크게 울리며 추격하는척만 했습니다

 

그러자 양조의 병사들은 겁에 질려

무기와 갑옷등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육항은 가벼운 차림의 날쌘 병사들에게 추격을 명해

양조는 퇴각하면서도 뼈아픈 타격을 입게 되었죠

 

서진의 병사들이 모두 퇴각한것을 알게된 육항은

그때부터 서릉을 공격하기 시작해 마침내 함락시켰고

반란을 일으킨 보천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처형 당했지만

반란을 주도한 다른사람들 외에 장수와 병사들은 모두 사면해 주었는데요

 

당시 황제였던 손호의 성격상 반란을 일으킨 보천 뿐만아니라

의심 정도만 되더라도 삼족을 멸해버렸는데

육항은 이런 잔인한 희생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자신이 할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해

그나마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육항의 정확한 판단과 계책으로

빼앗길뻔 했던 영토도 다시 되찾았을 뿐만아니라

서진과의 전쟁에서도 엄청난 대승을 거뒀지만

육항은 공적을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고

평상시와 똑같이 지냈기에

그런 모습을 보고 수많은 장수들은 그를 존경했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적이었던 양호와 육항은 서로의 능력과 인품을 칭찬했는데

육항은 양호를 들어 악의와 제갈량보다

더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육항이 병에 걸렸을땐 양호가 약을 보내주기도 했고

육항은 양호에게 술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부하들이 모두 독이 들었을수도 있으니 먹지 말라 했지만

둘다 서로를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아무런 의심없이 그냥 먹었었다고 하죠

 

어쨌든 육항은 서릉을 다시 되찾은 공으로 도호 벼슬이 더해졌으며

군대를 자주 움직이는것은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이니

함부로 군을 일으키는것을 삼가해야하고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73년 육항은 대사마 겸 형주목이 되어

오나라의 군권을 통솔하는 위치까지 올랐지만

1년후인 274년에 병을 얻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그는 죽기 직전까지 서릉과 건평은 국가의 장벽이니

더욱 방비를 튼튼히 할것과 국경 방어에 대한 글을

손호에게 올리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오나라의 기둥이던 육항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나라의 익주자사 왕준은 오나라를 멸망시킬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

오를 치자는 상소를 보냈고

육항이 죽고나서 6년 후 오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죠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가 육항에 대한 평가를 남겼는데요

 

'육항은 품성이 바르고 책략과 재간이 있었으며

부친의 풍모를 전부 갖추고 있어 대대로 사람들이 찬미했다'

'부친에 비해 약간 부족했지만

부친의 사업을 완성시킨 자라 평가할 수 있다' 라고 기록했다고 하죠

 

촉나라 멸망 이후 국력차이가 압도적으로 나고 있던 서진을 상대로

서릉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육항의 능력 덕분인데

이는 약 50여년 전 유비의 대공세를 훌륭히 막아낸

육손의 공적에도 버금가는 수준이기에

육항은 오나라 최후의 명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너무 맛있어서 비극적 사건까지 벌어진 명나라 황제가 사랑했던 조선의 고급음식

 

너무 맛있어서 비극적 사건까지 벌어진 명나라 황제가 사랑했던 조선의 고급음식

너무 맛있어서 비극적 사건까지 벌어진 명나라 황제가 사랑했던 조선의 고급음식명나라 선덕제가 정말 좋아해 손수 칙사까지 파견했던 조선음식 두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원래 두부라는

satamguatam.tistory.com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방구석 여포와 키보드 워리어들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방구석 여포와 키보드 워리어들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방구석 여포와 키보드 워리어들 이야기온갖 욕부터 ㅅ드립까지 난무했던 책들 요즘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웹툰이나 전자소설 등종이책이 아닌 전자문서의 형태로 책을

satamguatam.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