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전국옥새의 행방과 옥새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입니다
전국옥새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물건인데
쉽게 말하자면 황제가 가지고 있는 도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단순한 그냥 도장이 아니라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아주 귀중한 물건이었죠
'전국(傳國)'이란 '나라를 전한다'는 뜻입니다
즉 이 옥새는 한 나라 안에서
이전 황제가 죽으면 다음 황제에게 넘겨졌던 것뿐만 아니라
한 왕조가 망하면 다음 왕조가 들어섰을 때
그 왕조의 지배자에게도 전해지면서
중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쓰였죠
마치 우리나라 왕들이 옥새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요
전국옥새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전설이 있죠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변화'(卞和)라는 옥장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변화가 형산(荊山)에서 특별한 옥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변화는 이 옥을 초(楚) 나라의 왕 분모에게 바쳤죠
분모는 옥공을 불러 그 옥을 감식하게 했는데
옥의 뛰어남을 알아볼 안목이 없었던 옥공은
그냥 단순한 돌덩어리인 거 같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초나라의 왕은 화를 내며 변화의 왼쪽다리를 잘라버렸죠
분모가 죽고 초무왕이 왕위에 오르자
변화는 또다시 무왕을 찾아가 옥을 헌상했지만
이번에도 그냥 돌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감정결과가 나왔고
화가 난 무왕은 변화의 남은 오른쪽 다리마저 잘라버렸습니다
무왕이 죽고 그 뒤를 이은 문왕이 변화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그 옥을 가져온 뒤 다듬게 했고
마침내 변화가 가져온 옥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것이 드러났죠
문왕은 귀한 물건을 가져온 변화에게 큰 상을 내리고
남은 생을 편안히 살게 해준후 그 옥을 '변화의 옥'이라는 뜻으로
'화씨지벽'이라 부르도록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옥은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고
훗날 중국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제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진시황제는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황제인지 보여주고 싶어 했죠
때마침 특별한 옥이 자신에게 들어오자
그는 이 귀한 보석으로 옥새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재상인 이사(李斯)에게 전국옥새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옥새에는 "수명어천, 기수영창"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하늘의 명을 받았으니 오래도록 번영하리라"라는 뜻이라고 하죠
이후 전국옥새에는 여러 가지 신기한 이야기가 따라다녔는데
가장 유명한 건 진시황제가 배를 타고 가다 겪은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진시황제가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배가 뒤집힐 듯 엄청난 폭풍이 몰아쳤다고 하죠
그때 진시황제가 급히 전국옥새를 물에 던졌더니
놀랍게도 폭풍이 멈추고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하는데요
8년 뒤 진시황의 신하가 화음을 지날 때 어떤 사람이
그 신하가 가는 길 앞에 나타나 전국옥새를 바치면서
"용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옥새를
원래 주인께 돌려드린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그 '원래 주인'이 자기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죠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사람들은 전국옥새가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는데요
진시황이 죽은 이후 그의 둘째 아들인 호해가 뒤를 이었는데
호해가 환관 조고에게 암살당하면서
조고에게로 옥새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고가 허수아비 황제로 세운 자영이
오히려 역으로 조고를 암살하며 옥새를 손에 넣게 되었고
자영은 한고조 유방이 진나라 수도 함양까지 진격해 왔을 때
그에게 항복을 하면서 전국옥새를 바쳤죠
그렇게 전국옥새는 한고조 유방의 손에 들어갔는데
전국옥새가 넘어갔다는 것은 유방을 중국대륙의
새로운 황제로 인정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후 유방이 항우와의 초한전쟁에 승리하며 한나라를 세운 후
한나라에서는 유방이 쓰던 '참사검'과 함께 전국옥새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고 하죠
때문에 전한 말기에 '왕망'이 한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했을 때도
자신의 부하들을 보내 전국옥새를 강제로 빼앗으려 했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전국옥새를 가진 자가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왕망이 옥새를 강탈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자
태황태후였던 왕 씨는 옥새를 어떻게든 숨기려 했지만
끝내 그들에게 빼앗길 상황에 처하게 되자
옥새를 집어던져 버렸는데 이때 옥새의 모서리가 깨졌다고 합니다
이후 광무제가 후한을 세우고 전국옥새를 되찾게 되었는데
그는 깨진 옥새의 모서리 부분을 금으로 때우도록 지시했고
이것은 후대에 전국옥새의 특징을 묘사할 때 중요한 특징이 되었죠
앞에서 말했듯 전국옥새를 가진 자가 천하의 주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후한이 무너지고 삼국시대가 되었을 때도
각지의 군벌들 간에 전국옥새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습니다
처음에는 원술이 옥새를 가졌다가 나중에는 조조의 손에 들어가게 되죠
이후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면서 전국옥새는 위나라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후 옥새는 서진과 동진을 거쳐 남북조시대의 여러 나라들로 전해졌죠
당나라는 수백 년 동안 전국옥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가 망하면서 전국옥새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죠
937년, 후당의 마지막 황제인 이종가가
현무루라는 곳에서 전국옥새를 품에 안은채
현무루를 불태우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전국옥새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돼버린 것인데요
이후 요나라의 황제는 전국옥새를 꼭 찾고 싶어 했죠
전국옥새를 찾아 한족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진정한 중국 대륙의 지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옥새는 나오지 않았다고 하죠
결국 요나라 황제는 새로운 옥새를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원래의 전국옥새만큼 그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송나라가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전국옥새를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전설 속의 물건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송나라 황제들은 자기들만의 새로운 옥새를 만들어 사용했죠
남송이 몽골에 패배할 때 남송의 마지막 재상이
옥새를 가진채 어린 황제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옥새는 진시황 때부터 전해지던 원래의 전국옥새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명나라 때는 전국옥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자체가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1500년에 어떤 군인이 전국옥새를 찾았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고위 관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죠
심지어 부한이라는 관리는 "진짜 중요한 건 옥새 같은 물건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옵니다"라고 말했고
당시의 황제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명나라 시절부터는 이제 사람들이
전국옥새를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걸 보여줬죠
그렇게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로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더 이상 전국옥새의 존재를 볼 수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전국옥새가 과연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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