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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양호. 제갈량에 필적한다는 주장이 있을정도인 서진의 명장이자 덕장

by 사탐과탐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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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에 필적한다는 주장이 있을정도이며 죽기 직전까지 오나라 정벌을 외쳤던
서진의 명장이자 덕장 양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나라의 종회와 등애의 공격으로 촉나라는 멸망하고 말았고

이제 남은곳은 오나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에는 최후의 명장 육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위나라에서 쉽게 공격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오나라는 육항이 죽고나서

서진의 명장들에게 공격을 당해 결국 멸망하고 마는데요

 

서진에는 사마준, 두예, 마륭, 왕준 그리고 양호까지 많은 명장들이 있었죠

 

오늘은 오나라를 정벌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서진의 명장 중 한명인 양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221년 위나라에서 태어났는데

12세의 어린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숙부였던 양탐의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칠정도로 양탐을 아버지 대하듯 공손하게 모시자

양탐이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하죠

 

또한 어릴적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는데

어떤 노인이 지나가다가 양호의 관상을 보고

나이가 60세가 되기 전에 반드시 천하에 큰 공을 세울것이라 말했으며

곽가의 아들 곽혁은 양호를 만난뒤 '현재의 안회' 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회 : 공자의 제자)

 

양호를 예사롭지 않게 여긴 사람은 또 있었는데

바로 하후연의 셋째아들이던 하후위 였죠

 

하후위는 양호의 뛰어난 면모를 제대로 보았고

자신의 형인 하후패에게 말해

양호는 하후패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릴적 양호에 대한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법원주림> 이라는책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내용은 바로 양호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양호가 다섯살이 되던해에 갑자기 유모에게

예전에 가지고 놀던 반지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유모가 너는 반지가 없지 않냐고 하니까

양호는 예전에 가지고 놀다가 떨어트렸는데

반지를 떨어트린 장소가 예전집이라고 말하며

반지를 찾으러 예전집으로 가야겠다고 문을 나섰던 것이죠

 

그러자 유모도 그를 따라갔는데

양호는 마을의 어떤 한 집에 들어가더니

익숙한듯 곧바로 동쪽 담장 나무아래에서 작은반지 하나를 찾아내

그것을 들고 돌아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 집의 주인이 깜짝 놀라며 양호에게

반지가 거기 있었다는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고 하죠

 

사실 그 집주인의 아들이 7살때 세상을 떠났는데

그 아들이 반지를 가지고 놀길 좋아했고

어느날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모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고

집주인은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면서

양호를 아들로 삼고싶어 했다고 하죠

 

그리고 양호는 항상 두통을 앓았다고 하는데요

 

의원이 이를 치료하려고 하자

양호는 자신이 태어난지 3일째 되던날 머리를 북쪽문에 두었는데

바람이 정수리로 불자 뭔가 쎄한 느낌을 받았지만

아직 말을 못해 속으로만 이를 근심했다고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두통의 근원이 이미 너무 오래되었으니

아마 치료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어쨌든 훗날 조방이 위나라의 황제로 즉위 한 뒤

대장군이던 조상이 권력을 쥐자

조상은 평소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있던 왕침과 양호를 등용해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왕침은 조상의 요청에 응했지만 양호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당시 양호는 왕침에게 '다른사람을 섬기는 일이 어찌 쉽겠냐'며

끝내 조상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고 하죠

 

그리고 약 10년후인 249년 사마의가 고평릉사변을 일으켜

조상을 몰아냈을때 왕침 역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만약 양호가 조상의 부름에 응했다면

이때 양호도 무사하지는 못했을것 같죠

 

이후 양호는 사마소에게 등용되어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황제였던 조환에게도 총애를 받는 등 여러 벼슬들을 거치며 지내왔는데요

 

양호가 비범한 능력을 가졌다는걸 알아본 종회는

그를 시기 질투하기 시작했고

매번 양호를 헐뜯고 모함할 구실을 찾아 다녔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양호 역시 종회를 꺼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양호의 활약은 위나라가 망하고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운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서진이 건국될때 왕침, 순욱, 가충, 배수 등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이후 269년 사마염은 오나라를 멸망시킬 마음으로

양호를 도독 형주 제군사에 임명해 형주 북부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했는데

그는 양양에 부임했을 당시만해도

민심은 좋지 않았고 군량도 100여일치 밖에 남아있지 않는등

상황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양호는 즉시 민심을 수습하고 농지를 개간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군량은 10년동안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쌓였으며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푼 덕에 장강과 한수 일대의 민심을 얻을수 있었죠

 

또한 당시 오나라의 석성 태수가 수시로 양양을 공격해오자

계책을 써서 그를 파면시키기도 했는데

전투에서 항복하거나 포로로 잡힌 오나라 사람들 중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들은 기꺼이 돌려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양양에 인접한 오나라 사람들은 그에게 감복해

적이었던 양호를 양공이라 칭하며

함부로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고 하죠

 

그리고 오나라 정벌을 위해서는

장강에서 싸울 수군이 필요하다 판단한 양호는

곧바로 사마염에게 건의를 했으며

이후 왕준은 전선을 대대적으로 건조하고

수군을 감독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양호는 오나라 정벌을 위해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던 272년, 오나라의 서릉독 보천이 서릉을 바치며

서진에 투항해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서릉을 차지하게 되면 여러 방면으로 오나라를 공격할수도 있는

요충지였기에 서진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인 셈이었죠

 

이 상황을 다 알고 있던 오나라 명장 육항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기에

보천이 있던 서릉으로 급하게 병력을 출동 시켰고

양호 역시 형주자사이던 양조와 함께 보천을 구원하기 위해 병력을 출진시켰습니다

 

하지만 육항이 만들어놓은 이중 성벽을 양호조차 뚫어내지 못하고

결국 퇴각하는수 밖에 없었죠

 

이에 양호는 서릉의 포위를 풀기위해

오나라 땅이던 강릉을 공격했는데요

 

오나라의 많은 장수들은 강릉을 빨리 구원해야 한다고 육항에게 말했지만

육항은 그들의 말을 듣지않고 서릉의 포위를 풀지 않았으며

이후 양조 마저 육항의 계책에 속아 대패했고

양호도 육항이 만들어놓은 물길을 이용해 군량을 수송하려고 했지만

이것을 간파한 육항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해

결국 군량 확보가 곤란해진 양호 역시 강릉에서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양호는 이때의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벼슬이 평남장군으로 깎이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뒤로도 양호는 육항과 대치하며 양양을 지키고 있었는데요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법이 실제로 맞았는지

이후 양호는 적이던 육항과 국적을 초월한 교분을 나누기 시작했죠

 

양호와 육항의 일화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어느날 양호의 부하들이 양호에게 찾아와

"현재 오의 군주가 포악해 정치는 어지럽고 군사들은 오합지졸이니

오나라를 공격해야 합니다" 라고하자

양호는 지난번 서릉에서 육항을 못봤냐며 육항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지금은 가만히 있는게 더 낫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양호가 군사들과 사냥을 나갔는데

그때 육항 역시 부하들과 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하죠

 

이에 양호는 부하들에게 "절대 오군의 경계를 넘지마라" 라고 말하자

부하들이 양호의 말을 제대로 따랐는데

그 모습을 본 육항은 "저렇게 질서가 잡혀있으니 진군을 쉽게 쳐부수진 못할것이다"

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후 양호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사냥을 했던 짐승들을 확인 했는데

오군의 화살을 먼저 맞은뒤 진군에 잡힌 짐승이 있는것이었죠

 

그러자 양호는 그런 짐승들을 모두 오군에 돌려주라고 명했는데

육항은 사냥감을 돌려 받고 기뻐하며 심부름을 온 진군 병사에게

양호가 술은 좋아하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진군 병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술 한동이를 주고 돌려 보냈는데

그 이유를 부하들이 묻자 육항은 "적이 나를 덕으로 대하는데

나도 덕으로 대해야 하는게 예의 아닌가?" 라며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하죠

 

한편 술을 가지고 돌아온 진군 병사가 양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양호는 껄껄 웃으며 가져온 술을 마시려 하는것이었죠

 

그러자 부하들이 황급히 말리며 독이 들어 있을수도 있으니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이에 양호는 웃으며 "육항은 그런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한뒤

보내온 술을 맛있게 잘 마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둘은 서로 부하들을 보내 안부를 묻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날 육항의 부하가 양호에게 찾아와

육항이 병석에 누워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이 말을 들은 양호는 쯧쯧 혀를 차면서

"장군의 병은 나와 같은 병일것이니 이 약을 가져다 드리거라" 라고 말하며

어떤 약을 건넸고

오군 병사는 돌아와 육항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죠

 

이에 육항이 양호가 보내준 약을 먹으려 하자

부하들은 적이 보내준 약이니 위험한 약일거라며 먹는걸 말렸는데

육항은 괜찮다며 보내준 약을 다먹었고 그렇게 병이 싹 나았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 대치하고 있던 적이었지만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좋은 친구사이기도 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 274년 병에걸린 육항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오나라의 정세가 혼란에 빠지자

양호는 왕준에게 오나라 정벌을 위한 선단을 건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4년후인 278년, 병든 몸을 이끌고 사마염을 찾아가

혼란한 오나라를 지금 정벌해야 한다고 주청을 올렸죠

 

이에 사마염은 양호에게 오나라 정벌을 맡기려 했지만

양호는 자신이 병에 들기도 했고 자신이 가지 않더라도

다른 장수를 보내도 문제 없을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나라 정벌 주장은 가충과 풍담, 순욱 등의 반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거기다가 독발수기능이 서진의 서쪽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상황이라

오나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오나라 정벌은 하지 못했죠

 

그러나 이후 양호는 계속해서 병이 위독해졌는데요

 

그는 두예를 자신의 후임으로 천거한뒤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양호가 죽기 직전 그를 아꼈던 사마염이

양호를 남성군후로 봉하려 했지만 끝내 그는 이를 사양했다고 하죠

 

심지어 남성후의 도장을 자신의 관속에 넣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양호의 죽음이 너무나도 슬펐던 사마염은

그의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양호의 작위를 남성군후로 봉한뒤

태부로 추증하기까지 했죠

 

또한 사마염은 양호의 장례에서 직접 소복하고 곡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은 양양과 형주 백성 뿐만아니라

인근에 살았던 오나라 사람들도 슬퍼했을 정도였다고 하죠

 

이후 280년 마침내 오나라가 멸망하고 말았고

신하들이 사마염에게 축하의 술잔을 올리자

사마염은 "오나라를 멸망시킨건 양호의 공로다" 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서릉전투에서 육항에게 패배 한것과

육항이 살아있을땐 오나라를 공격하지 못했던걸 봐서

육항이 양호보다 더 낫다는 평가가 많지만

양호의 능력은 형주를 안정시키고 덕으로 다스렸기에

형주를 완벽하게 서진의 땅으로 만들수 있었고

그 덕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룰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수 있죠

 

그러다보니 양호는 민정을 성공적으로 살폈던 군인으로써

그의 평가는 제갈량에 필적한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 입니다

 

심지어 양호가 세상을 떠났을때 양양 백성들이 몹시 슬퍼하며

그가 즐겨 다니던 현산에 그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을 세우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하죠

 

이후로도 비석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타루비(墮淚碑)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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