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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완안 아골타. 여진족을 통합해 초강대국 요나라와 송나라를 쓰러트리고 금나라를 세운 인물

by 사탐과탐 202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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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을 통합해 초강대국 요나라와 송나라를 쓰러트리고 금나라를 세운 인물
완안 아골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고려거란전쟁' 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잘 알려진

요나라는 만주지역을 포함해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중국의 송나라와 한반도의 고려까지 위협을 끼쳤을 정도로

막강한 강대국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대국도 시간이 흐르면서 고일수 밖에 없었고

결국 또 다른 강자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요

 

오늘 이야기 할 강자는 금나라를 세우고

요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웠던 '완안 아골타'라는 인물입니다

 

완안 아골타는 여진족 완안부의 족장 핵리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죠

 

그리고 장성한 그는 키가 8척이나 될 정도로

당시로써는 엄청난 몸집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이때 여진족들은 요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요

 

송화강 서남쪽에 자리를 잡고있던 숙여진(熟女眞)은

요나라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송화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던 생여진(生女眞)

요나라의 간접적인 지배만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속한 완안부는 생여진의 부족이었기 때문에

요나라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고

그 덕에 아골타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들은 주변 여진족들을 병합해가며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었죠

 

또한 아골타는 고려와의 인연도 있는데

아골타의 형인 오아속이 족장으로써 여진족을 병합해 나갔고

고려의 천리장성에도 위협을 끼치기 시작하자

고려 예종은 윤관에게 17만의 병력을 주고

함경도 일대의 여진족을 격파한 뒤

그곳에 동북 9성을 쌓게 했던 것입니다

 

이때 윤관은 135개의 여진족 마을을 불태우고 약 5천여명을 학살했으며

거기다가 포로를 풀어준다며 여진족 추장 400여명을 불러

잔치를 여는척 한 뒤 모조리 죽여버렸으니

여진족 입장에서 고려는 부모와 형제를 죽인 원수 였던것이죠

 

이후 고려에 원한을 품은 여진족들이 완안부에 찾아와 복수를 해줄것을 요청하자

이때 아골타는 "지금 가만히 있는다면

갈라전(고려에게 빼앗긴 여진족 지역)만 잃는것이 아니라

모든 부족이 우리 곁을 떠날것입니다" 라고 주장했고

그의 말을 들은 형 오아속은, 병력을 모아 고려에 저항하기 시작해,

결국 고려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이후 1112년 어느날,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가

여진의 추장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푸는 일이 있었는데요

 

이 천조제는 즉위 초엔 국정에 관심을 두는듯 했지만

점점 놀이와 음주가무, 여색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강대국이던 요나라는 점점 무너져갔던 것입니다

 

그때 형을 따라 요나라에 간 아골타가

요나라 황제 천조제의 명을 대차게 까버린 엄청난 일이 벌어졌죠

 

천조제가 마련했던 연회자리에서

천조제가 아골타에게 춤을 춰보라고 명했는데

아골타는 싫다며 황제의 말을 딱잘라 거절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천조제는 아골타를 죽여버리려고 했지만

많은 신하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실 아골타는 이 연회자리에서

주색잡기에 빠진 천조제의 몰상식한 행동과 지도력이 부족하다는걸 보고

얼마안가 요나라는 멸망하겠구나 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이후 삼국지로 따지면 손책의 포지션을 맡고있던 아골타의 형 완안오아속이

1113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렇게 완안부 여진의 수장 자리를 아골타가 맡게 되었죠

 

그리고 형의 죽음을 요나라에 보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에 요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해 그를 문책하자

1114년 아골타는 바로 요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버렸습니다

 

여진은 원래 굉장히 용맹한 부족이었는데

'여진족 병력이 1만이면 절대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을정도 였기에

완안 아골타 역시 쓰러져가는 요나라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아골타는 요나라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뒤

요나라 여러 지역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출하점 대첩'이라는 전투가 벌어지는데

당시 아골타의 병력은 약 3700명이었던데 반해

천조제는 소사선에게 10만의 병력을 주고

완안 아골타를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죠

 

그러자 아골타 주변 부족들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골타는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신의 계시를 받은척을 해 사기를 올린뒤

요나라 진영을 공격해 들어갔죠

 

당시는 겨울이었고 특히나 만주 지역은 굉장히 추웠는데

요나라의 정예군이 정신없이 얼음을 깨고 있을때

아골타는 1200명의 기병을 추려 곧바로 기습을 하게 되었고

이에 갑자기 기습을 당한 요나라 군은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 혼란에 빠지자

10만의 병력은 고작 1200명의 금나라군에 의해 각개격파 당했고

이후 도망치던 패잔병들을 끈질기게 쫓아가

모조리 쓸어버리는 어마어마한 대승을 거뒀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전투가 바로 '출하점 대첩' 이라고 불리는 전투였죠

 

이렇게 아골타가 이끄는 여진족 군대는 워낙 막강했기에

요나라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해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이에 다급해진 요나라에서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아골타가 이끄는 여진군에 대한 협공을 요청했죠

 

그런데 당시 고려의 왕은 예종이었는데

불과 약 5~6년전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

여진족 정벌과 동북 9성에 쏟아부었다가 대패를 했던 상황이었기에

요나라의 요청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골타는 그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요나라의 땅을 하나하나 점령해 나갔죠

 

그리고 1년후인 1115년에는 요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떤 숙여진까지 통합했으며

요동지방의 발해인들을 회유했고

그곳에서 아골타는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금'이라고 지었습니다

 

당시 사금(砂金)을 채취하는것이 완안부의 주력이라 할수있는 산업이었기에

국호를 금나라로 지었다고 하죠

 

금사(金史)에서는 "금은 변하지 않고 깨지지 않는다.

금은 백색이며 완안부는 백색을 중시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만큼

금나라의 금 사랑은 지독했습니다

 

그리고 여진족은 주적이던 요나라 정벌을 다시 재개 했는데요

 

이후 요동지역에 있던 황룡부까지 빼앗으며

금나라는 요양부에서 황룡부에 이르는 넓은 요동땅을 거의 다 복속시켜버렸죠

 

이에 똥줄타기 시작한 요나라는 다시 고려에 지원군을 요청했지만

결국 출병하지 않았고

동시에 아골타도 고려에 사신을 보내

얼마후면 요나라는 금나라에 의해 정복당할것임을 고려에 알렸습니다

 

그러자 고려 조정에서는 요나라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고 판단해

더이상 요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았다고 하죠

 

그렇게 아골타는 여진족 내에서 높은 명성을 얻으면서

주변 부족들도 잇달아 아골타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부하가 되기를 자처했고

휘하 여진족 병사들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대국이던 요나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요

 

천조제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70만 대군을 일으켜

금나라를 아작내버릴 준비를 마쳤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아골타의 병력은 겨우 2만명 남짓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골타는 요나라가 70만 대군이라고는 하지만

모두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오합지졸 이라고 보았죠

 

그리고 만약 용맹스러운 금나라 병사들이 겁만 먹지않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한다면 아무리 병력이 많다고해도

충분히 깨부실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후 아골타는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병사들에게 소리쳤죠

 

"내가 너희를 데리고 거병한 이유는 요나라의 핍박을 받지않는

여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천조제는 이를 용납못하고 우리를 공격해 들어왔다

지금 우리에겐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목숨 걸고 싸워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희가 나를 잡아다 천조제에 바친뒤 항복을 하는것이다

우리 일족을 배신하고 투항한다면 화는 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하자 그말을 들은 많은 장수들과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요나라 군대와 결사항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 외침이 병사들의 뇌리에 제대로 박혔는지

금나라 병사들은 일당백이되어 요나라 군사들과 싸웠고

이후 요나라 내부에서 정치적인 일이 벌어져 천조제는 어쩔수 없이 퇴각해야 했기에

전군 퇴각 명령을 내렸죠

 

이에 아골타는 둘도 없을 이 기회를 날려버릴순 없어서

도망치는 요나라군을 집요하게 따라가

결국 호보답 강에서 요나라 군대의 후미를 공격하기 시작해

마침내 요나라군은 다시 일어날수 없을 정도의 뼈아픈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 호보답강 전투는 출하점 대전 못지 않은 대승을 거둘수 있었던 것이죠

 

이후 아골타는 기세를 몰아 요동지역 전체를 차지 하면서

엄청나게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아골타는 영토확장이나 전쟁 이외에

금나라 통치 방식도 바꿨는데요

 

통치 효율화를 위해 여러명의 발극렬(勃極烈)을 두어

합의제 방식으로 금나라를 통치했는데

자신을 ‘도발극렬(都勃極烈)’이라 했고,

밑에 네 명의 발극렬을 두고 국정을 운영했죠

(발극렬 : 여진어로 부족장ㆍ무당을 의미하는 말)

 

그리고 맹안모극제라는 새로운 정치 군사 조직을 만들었는데

300호를 하나의 행정조직으로 모극을 만들고

10개의 모극으로 맹안을 조직했습니다

이를 통해 금나라 중앙집권 강화를 시도했던 것이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거기다가 1119년에는 완안희윤을 시켜

여진족의 문자를 만들도록 명하기 까지 했을정도로

여러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북송에서도 요나라의 동태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는데요

 

요나라가 멸망해 간다는걸 보고

송나라는 요나라에 빼앗겼던 연운 16주를 다시 회수할 계획을 세웠죠

 

그렇게 북송은 금나라에 밀사를 파견해

금나라와 맹약을 맺었고 이 맹약을 '해상의 맹'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송휘종은 이때 요나라 협공을 제의 하면서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죠

 

바로 첫번째로 송나라는 요나라에 제공하고 있는 세폐를 금나라에 제공한다.

두번째로 요나라 협공에 있어 금나라는 만리장성을 넘어 하북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번째로 금나라는 요나라와 화평 협약을 맺지 않는다. 였습니다

 

이 중 두번째 조건이 바로 연운 16주의 반환을 의미하는것이었죠

 

아골타 역시 당시 요나라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

송나라와 손을 잡았고

마침내 양국의 군대는 1121년 요나라를 협공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나라를 협공할때 북송에서는 방납의 난이 발생해

반란 진압을 하기 위해 요나라 공격이 지연되기도 했고

금나라는 무난하게 요나라를 격파해 들어갔던 반면

송나라는 거의 다 망한 요나라와의 전투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요나라의 패잔병 무리 7천여명에게

10만에 달하는 송군이 패하기까지 했으니

어이가 없던 아골타는 사신을 보내

일부러 병력을 아끼려고 그러는거 아니냐고 따졌을 정도였죠

 

이후 연전연패를 당하자 송군의 지휘관이던 동관은

아골타에게 원군을 요청하게 됩니다

 

해상의 맹에 따라 만리장성 이남에는 출병하지 않기로 했지만

동관의 요청이 있었으니

금나라는 연경을 공격하기 시작해 순식간에 함락시켜버렸죠

 

그렇게 결국 연운16주 중 연경 이남의 6주는 송나라가 차지할수 있었지만

금군은 연운 이북을 약탈하고 연운 16주의 백성들도 금나라로 이주시켜 버렸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금나라는 출병의 대가로

은 20만냥 비단 30만필, 전 100만과 군량 20만석을 요구했는데

송나라는 금나라군이 강하다는걸 워낙 잘 알았기에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요구를 들어주는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북송은 순수 금나라 힘으로 차지한 연경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는데

자력으로 연경을 점령한 것이었기에 반환해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아골타는 해상의 맹을 준수해야한다고 생각해

모든 재화와 주민들은 금나라로 옮긴채 빈성만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골타는 1123년에 마지막 남은 요나라를 공격하고 회령부로 돌아가는길에

오랜기간 이어진 전투들과 여정의 피로로 인해

돌아가던 도중 병사하고 말았죠

 

그리고 그의 동생이던 완안오걸매가 아골타의 뒤를이어

금태종이 됩니다

 

이후 요나라는 1125년에 멸망했고

북송 역시 정강의 변을 겪으며 멸망하고 말았죠

 

완안아골타는 여진족의 강력함을 제대로 보여준 인물로써

여진족의 나라인 금나라를 건국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군사를 통솔하는 능력은 거의 만렙에 가까웠던 인물인것 같죠

 

그리고 약 500여년후 또다시 여진족이던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게 되는데

여진족은 당시에 정말 강한 부족이긴했던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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