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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허쯔전. 남편 마오쩌둥을 물심양면 도왔지만 비참하게 버려진 마오쩌둥의 세번째 아내

by 사탐과탐 202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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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마오쩌둥을 물심양면 도왔지만 비참하게 버려진 마오쩌둥의 세번째 아내
허쯔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중국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써 존경(?!)받는 마오쩌둥에 대한 이야기는

저희 채널에서도 많이 다루었었는데요

 

마오쩌둥은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삽질을 많이 했었고

사생활도 문란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공식적으로 네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네명의 아내들 역시 마지막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죠

 

그 중 세번째 아내인 허쯔전은 중국공산군의 여전사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었는데요

 

오늘은 열렬히 마오쩌둥을 사랑해 그에게 모든걸 바쳤지만

처참하게 버려졌던 마오쩌둥의 세번째 아내 허쯔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허쯔전은 1909년 9월에 장시성 융신현에서 평범한 농부 가정의 장녀로 태어났는데

어릴적부터 마을에서 총명하기로 유명했다고 하죠

 

그래서 오빠 허민쉐와 여동생 허이와 함께

'융신산허(永新三賀)' 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적부터 사회주의를 신봉한 그녀는

고작 17살의 나이로 공산당원이 되었고

이후 위안원차이가 이끄는 농민자위군에 입대해

융신폭동을 일으켜 성공시키기까지 했죠

 

그러자 국민혁명군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융신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허쯔전은 적위대를 이끌고 적 1개 부대를 격파하면서

100여정의 총을 빼앗기도 했지만

결국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서

폭동을 일으켰던 위안원차이 등의 사람들이 정강산으로 피신하자

그녀도 그곳으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때 후난성에서 추수폭동을 일으켰지만 국민혁명군에 패배한 마오쩌둥이

패잔병들을 이끌고 그녀가 있던 정강산으로 들어오자

그렇게 둘은 만나게 된것이죠

 

당시 그녀는 17살의 나이로 위안원차이의 밑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렇게 어린 여자가 간부를 맡고 있다는 소릴 들은 마오쩌둥은

허쯔전이 위안원차이의 딸이거나

어느 높은 직책을 맡고있는 사람의 가족인줄 알았다며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만큼 허쯔전은 당시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간부로써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쨌든 이후 그녀는 계속해서 여러 공산당 선전활동을 벌이다가

어느날 당시 토지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융신현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던 마오쩌둥을 따라다니며 그에게 여러 의견을 주기도 하고

실무를 맡아서 해주는 등 여러 도움을 주었고

그렇게 마오쩌둥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녀는 마오쩌둥에게 서서히 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마오쩌둥에게 빠져버린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바로 융신현 근처에서 주둔하고 있던 공산군이 지주 보안대의 공격을 받았고

사방에서 "마오쩌둥을 잡아 장제스에게 상을 받자" 라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입니다

 

당시 마오쩌둥과 허쯔전은 토지개혁에 필요한 자료를 분석중이었는데

인근에 있던 공산군 부대와 마오쩌둥의 경호원들은

군중들의 작업을 지휘하기 위해 다른곳에 있었던 것이죠

상황이 점점 급박해지자 허쯔전은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몰랐는데

이때 마오쩌둥은 천천히 담배를 피면서 생각에 잠기더니

적의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싸우는것은 무모하다고 판단하고

얼른 주민들에게 철수할것을 지시했던 것입니다

 

이후 지주보안대는 마을에 쳐들어 오긴했지만 사람이 없자 약탈만 한 뒤

마오쩌둥을 찾지못하고 그냥 돌아가버렸고

그렇게 목숨을 건진 허쯔전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일을 처리해나가는 마오쩌둥의 대담한 모습에

완전 반해버렸으며 이후 두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하죠

 

심지어 마오쩌둥은 그녀에게 날씬한 몸매에 청초하고 아름다운 얼굴에다가

큰 눈망울을 가졌다며 '일지화(一枝花)'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마오쩌둥은 허쯔전에게 자신은 이미 결혼했고

후난의 집에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고 말하며

이미 연락이 끊긴지 오래되어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그런 솔직한 얘기에 감동(?)한 허쯔전은 더욱 마오쩌둥에게 빠져들었다고 하죠

 

그리고 이후 마오쩌둥은 아내 양카이후이가 있었지만 신경쓰지않고

나이차이가 16살이나 나던 허쯔전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한 이후에는 마오쩌둥의 손발이 되어

그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신문들도 구해와 마오쩌둥에게 보여줬고

마오쩌둥이 필요로 하는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되죠

 

또한 그녀는 자신이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만든 서류가방을 그에게 선물했는데

이후 마오쩌둥은 이 서류가방을 행군할때나 작전을 수행할때도

항상 메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후 1931년 마오쩌둥이 깐난(竷南)회의에서

잘못된 노선을 이끌었다는 비판을 받고

소비에트중앙국 대리 서기직을 박탈당하고

이듬해 닝뚜(寧都)회의에서 홍1방면군

총 정치위원직을 해직 당하기 까지 하면서 침울한 나날이 계속되자

허쯔전은 막 출산을 한 후라 몸이 많이 약한 상태에서도 불구하고

남편 마오쩌둥이 다시 힘을내고 일어날수 있도록 물심양면 그를 도왔다고 하죠

 

하지만 이후 허쯔전에게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1934년, 정강산 공산군이 국민혁명군의 공격을 당해 대장정에 돌입하자

허쯔전 역시 남편 마오쩌둥을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나이가 어린 아들인 마오마오를 데리고 갈수 없어

어쩔수 없이 어느 마을에 맡기게 되지만

이후 영영 만나지 못하고 아이는 결국 실종되고 말았죠

 

또한 대장정 중에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도 어떤 마을 사람에게 맡겼지만

그 아이 역시 실종되어 영영 만날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로써 어린 자식을 둘씩이나 잃고 만것이죠

 

거기다가 1935년에는 국민혁명군의 폭격으로 인해

머리와 가슴, 팔 등 17곳에 폭탄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는데

이에 그녀는 동지들에게 남편에겐 알리지 말라고 말한뒤

자신을 근처 마을에 버리고 도망치라고 말했지만

공산당의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의 아내를 두고 갈순 없었던 동지들은

그녀를 대장정이 끝날때까지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허쯔전은 이때 입은 부상으로 장애인 3급 판정까지 받으며

평생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나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주는 아내를 두고 마오쩌둥은

1936년 옌안에 도착해 대장정이 끝나자마자

다른 수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으며 바람을 피워댄것입니다

 

심지어 1937년에는 마오쩌둥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던 현장으로

허쯔전이 들이닥친적도 있었는데

마오쩌둥이 바람을 핀 상대는 바로

통역 겸 비서였던 우광웨이 라는 여성이었죠

 

허쯔전은 마오쩌둥과 우광웨이에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며 구타하기 까지 했으며

이후 공산당에 마오쩌둥과 우광웨이의 불륜문제를 조사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공산당에서는 '사적인 일로 국가 주석을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적반하장으로

자신에게 대든 허쯔전의 행동에 화가나 이후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여성인 장칭과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죠

 

일설에 따르면 허쯔전은 마오쩌둥과 장칭이 불륜을 저지르는걸 보고

눈뒤집혀 식칼을 들고 달려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대장정 도중 중상을 입었던 것이 악화되어 병세가 깊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모든걸 단념한 그녀는 마오쩌둥과 이혼한뒤 옌안을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죠

 

이후 허쯔전은 모스크바에서 힘든생활을 하며 6번째 아이를 낳았지만

태어나고 고작 10개월만에 사망했는데

그렇게 마오쩌둥과의 사이에서 낳은 3남 3녀중에

두명은 실종되고 한명은 목숨을 잃었으며

나머지 장녀인 양위에화와 4남 마오안홍,

그리고 3녀 리민만 장성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머리는 비상했던 허쯔전은

모스크바에서 손중산 대학교를 다니며 정치학 석사까지 땄고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된 뒤에 중국으로 귀국해

다시 정치를 하기 시작했으며

절강성 여성 연맹 회장을 역임한 그녀는

1948년 10월에 중국 공산당 상하이 시정위원회 조직 부서의 업무를 맡기도 했죠

 

그리고 1959년 여름, 허쯔전은 루샨에서 마오쩌둥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마오쩌둥은 허쯔전과 만나자마자 경호원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지시한뒤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때 허쯔전은 마오쩌둥을 만나 아무말없이 울기만 했다고 하는데

마오쩌둥은 그런 허쯔전을 달래준 뒤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나갔고

허쯔전은 과거 마오쩌둥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점을 사과하면서

서로를 향한 노여움을 풀고 화해를 했다고 하죠

 

그 이후로 허쯔전은 평범하게 살다가

1979년 중국인민정치협의회 전국위원으로 선출되어 정계에 복귀했으며

이후 정치인으로써의 삶을 살던 그녀는

1984년 4월 19일, 7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75살에 세상을 떠났다면 꽤나 장수했던것 같기는 한데요

 

하지만 소중한 자식들을 세명이나 잃고

사랑하는 남편은 수많은 여성들과 불륜을 저질렀으며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평생 불편한 몸으로 세상을 살았던

허쯔전은 굉장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 같긴 하죠

 

참고로 마오쩌둥은 첫번째 아내이던 뤄이씨우에 대해

자신은 그녀를 아내로 여긴적이 없기에 성관계도 맺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녀를 매몰차게 대했다고 합니다

 

뤄이씨우는 18세에 시집와 외롭고 쓸쓸하게 살다가 21세에 병사하고 말았죠

 

또한 두번째 아내인 양카이후이는

마오쩌둥의 뒷바라지를 물심양면 했지만

결국 국민혁명군에 붙잡히고 말았고

남편과 의절하고 국민당으로 전향을 요구 받았지만 거절해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네번째 아내 장칭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것을 보면

마오쩌둥의 아내들의 삶이나 최후는 정말 비참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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