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의 아들로 모든 능력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포악한 성격탓에 황제가 되지 못하고
처참하게 최후를 맞은 인물 주고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장남인 주고치는 문무에 모두 뛰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데다 지나치게 뚱뚱해서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두 발로 걷기도 힘들어했다고 하죠
때문에 영락제는 장남을 폐위하고 둘째 아들인 주고후를
새로운 황태자로 삼을 생각까지 했지만
주고후의 성격이 워낙 포악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를 후계자로 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고후는 매우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던 데다
문무를 겸비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지만
평소에 인성이 막장으로 유명했던 데다
워낙에 학문을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했다고 하죠
명나라의 초대황제인 홍무제는
자신의 자손들을 모두 불러 경사에서 학문을 배우라는 명을 내렸는데
순순히 그의 명을 따랐던 다른 황족들과 달리
주고후는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놀기 바빴기 때문에
홍무제도 그런 손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홍무제가 죽자 주고후는 아버지인 영락제를 따라 수도인 남경으로 오게 되었는데
황족으로서 예의를 지키지 않고 무례하게 구는 모습을 계속 보이다
결국 그의 외삼촌인 서휘조에게 크게 혼이 나게 되죠
하지만 주고후는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서휘조의 말을 훔쳐 타고는
새롭게 황제가 된 건문제에게 인사도 없이
남경을 떠나버리는 무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경을 떠날 때 죄 없는 백성들과 관리들을 죽이기까지 했죠
1399년 8월 16일, 명나라의 2대 황제였던 건문제와
영락제 연왕 주체가 내전을 일으켰던 정난의 변이 일어났는데
이때 주고후도 아버지 주체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게 됩니다
평소 힘이 세고 승마와 궁술에 뛰어났던 주고후는
선봉장으로서 직접 기병을 이끌고 적들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웠는데
이때의 일로 연왕 주체는 장남인 주고치보다 주고후를 더욱 총애하게 되었다고 하죠
덕분에 주고후는 더욱 기가 살아서는
날이 갈수록 자신의 능력만 믿고 다른 사람에게 포악하게 굴며
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날뛰었는데
이런 모습 때문에 수많은 명나라의 신하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됩니다
연왕 주체가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로 즉위하자
황태자를 누구로 세울지에 대한 회의가 열렸는데
일부 대신들과 무신들은 주고후가 그동안 많은 공을 세웠다는 이유를 들며
장남인 주고치 대신 주고후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주장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신하들은 비록 주고후가 공이 많고 재주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의 성격이 너무 난폭하고 평소 행실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황제가 될만한 인재는 아니라며 반대했습니다
당시 영락제도 주고치의 몸이 워낙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망나니 황자인 주고후를 후계자로 삼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고민했죠
그러던 중 해진이라는 신하가 영락제에게
주고치의 아들이자 영락제의 장손인 주첨기가
뛰어난 황제가 될 자질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주고치를 황태자로 삼은 후 자연스럽게
주첨기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자는 조언을 했고
영락제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주고치가 황태자가 되었죠
이후 영락제는 주고후를 한왕으로 봉한 뒤 운남으로 보냈는데
주고후는 변방에 있는 운남으로 자신을 보내는 것은 귀양이나 다름없다고 항의하며
운남으로 가지 않은 채 남경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당나라를 세운 당태종에 비유하며
계속해서 무례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죠
그런 주고후를 보다 못한 영락제는 1415년에
그의 부임지를 운남에서 청주로 바꿔 그를 내보내려 했지만
주고후는 끝내 청주로도 가지 않고 계속 도성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 후 영락제가 북방을 순시하기 위해 도성을 떠나자
주고후는 군사들을 몰래 모아 자신의 사병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그 병사들을 동원해 도성의 백성들을 약탈하는 행패를 부렸죠
병마지휘사 '서야려'가 백성들을 약탈하던 주고후의 사병들을 처벌하자
크게 화를 내며 서야려를 직접 찾아가서는
그를 철퇴로 때려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영락제가 쓰던 용포와 말, 수레등을 멋대로 쓰면서
사실상 반역죄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죠
북방순시를 마치고 돌아온 영락제는
그동안 주고후가 저질렀던 악행과 황제의 물건을 마음대로 썼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는
크게 분노하며 주고후를 서민으로 폐하려 했죠
하지만 주고후의 형인 주고치가 한 번만 용서를 해달라며 부탁을 하자
결국 주고후의 사병을 몰수한 후
영락제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그를
도성으로 들이지 말라는 명을 내리는 것으로 처벌을 끝냈습니다
이후 영락제가 죽고 홍희제 주고치가 그 뒤를 잇게 됐지만
홍희제는 워낙 몸이 약했던 탓에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인 주첨기가 5대 황제인 선덕제로 즉위했죠
선덕제는 그의 아버지처럼 주고후에게 계속해서 호의를 베풀었지만
주고후는 그런 호의를 배신한 채
1426년 8월에 안주에서 산동도지휘인 근영과 함께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습니다
주고후는 목청이라는 인물을 북경에 보내
그곳에 있는 영국공 장보와 내통하려고 했지만
장보가 목청을 붙잡아 명나라 조정에 고발을 해버리면서
마침내 주고후가 반란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죠
자신의 음모가 들통나자 주고후는
즉시 군대를 소집하며 대놓고 명나라 조정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선덕제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그를 잡으러 오자
주고후의 밑에 있던 장수들과 병사들은
어차피 싸워봤자 이길 가능성도 거의 없는 데다
정말로 싸움을 걸게 되면 자신들은 꼼짝없이 반란군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주고후가 내리는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주고후는 선덕제에게 항복할 테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지하에 있던 비밀통로를 이용해 몰래 도망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감시하던 관군에게 붙잡히면서 수도로 압송되었죠
명나라 조정의 신하들은 그동안 주고후가 저지른 악행이 너무 크고
만약 이대로 그를 살려두면 또 무슨 죄를 지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선덕제는 신하들의 청을 거부한 채 주고후를 서민으로 폐한 후
북경에 있는 황성의 서쪽 문인 서안문에 있는
소요성에 감금시키는 것으로 처벌을 끝내는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주고후는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어느 날 선덕제가 소요성을 찾아오자
갑자기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버리는 사고를 저질렀죠
자신의 계속되는 호의를 무시하는 주고후의 모습에
결국 선덕제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버렸는지
병사들을 시켜 그를 커다란 구리독에 가둬버린 다음
그 위에 불을 붙여서 산채로 그를 태워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주고후의 형인 홍희제와 조카인 선덕제는
늘 그에게 호의를 베풀며 황족으로서 대우를 해주려고 했지만
주고후는 오히려 그런 두 사람을 죽여버리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 했죠
그럼에도 선덕제는 반역죄를 저지른 자신의 숙부를 용서했는데
주고후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감금시켰다는 이유로 선덕제를 폭행했으니
그가 황제가 되지 못한 것은 명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정말로 다행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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