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모두 황제, 2번 황태자를 하고, 2개의 나라에서 황제를 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황제이자 딸에의해 목숨을 잃은 비운의 황제, 당나라 중종 이야기 입니다
이 인물은 바로 당나라 중종인데요
당중종은 두 나라에서 황제를 했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황제였고
두번 제위에 오른 특이한 케이스의 황제이죠
그리고 그의 죽음도 굉장히 비참한데
지금부터 당중종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현이고 당고종과 측천무후의 아들로 태어났죠
측천무후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중국의 3대 악녀라고 불리는 여인입니다
이 이현은 사실 측천무후의 3번째 아들이었고
첫째형인 이홍이 황태자였죠
황태자 이홍은 친어머니이던 측천무후 때문에 죽은 소숙비의 딸들을
시집 보내겠다고 한것이 측천무후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렇게 어느날 독살 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태자자리에 둘째인 이현(李賢)을 올렸지만
명숭엄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사건의
배후자로 의심을 받아 태자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죠
그래서 셋째이던 이현(李顯)이 황태자 자리에 오른것입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천성이 순해서
어머니였던 측천무후의 말을 잘 따랐다고 하죠
그러던 683년 12월, 당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황제인 중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중종은 황제가 되고나서 외척세력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시도했는데요
바로 자신의 장인인 위현정(위황후의 아버지)을
시중 자리 앉히려 했던 것이죠
그러자 측천무후를 비롯한 수많은 신하들은
발 벗고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중종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황제인데 내가 내맘대로 황제 자리를 준다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해버렸죠
그러자 측천무후는 "멍청한 아들이 나라를 통째로 위씨에게 갖다 바치겠다"고 말하며
중종이 즉위한지 불과 2개월만에 그를 폐위 시켜버렸고
여릉왕으로 강등시켜버렸습니다
사실 이는 중종의 잘못이긴했는데요
자신의 장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중 같은 고위직을 주는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것이었으며
심지어 당시엔 외척세력이 정치에 개입하는것을 금기로 여기고 있었으니
중종의 그런 행동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폐위되던날 중종은 어머니 측천무후에게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라고 물으니
측천무후는 "천하를 위씨에게 주려고 한것이
어찌 죄가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통쳤다고 하죠
그리고 동생이던 이단이 예종으로 즉위했고
폐위된 중종은 방주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예종이 스스로 제위를 어머니에게 넘기면서
측천무후는 최초의 여황제가 된것이죠
그리고 국호를 '주(周)'로 고쳤으며
측천무후의 성을따 '무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중종은 방주에서 귀양생활을 하면서
황제가 된 어머니에게 죽임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죠
그러면서 자신의 곁을 지키던 아내 위황후에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두려움에 떨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던 중종이지만
그때마다 위황후는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다" 라며 그를 만류했다고 하죠
다행히 별일없이 약 15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노쇠해진 측천무후는 다시 중종을 황태자로 책봉하는데요
이때 자신을 찾아온 측천무후의 사신들이
중종은 자신을 죽이려고 보낸 사신들인줄 알고 굉장히 두려워 했다고 하죠
또한 측천무후는 귀양가있는 중종에게 가끔씩 사신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살해당할까봐 굉장히 무서워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다시 황태자가 된 중종은 위황후와 함께 낙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705년 어느날, 측천무후가 늙고 병에 걸려 쇠약해진 틈을타
재상이던 장간지와 환언범, 원서기 등 신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병석에 누워있던 측천무후를 찾아가, 이제 그만 물러나라며 압박을 가하자
측천무후는 황제자리를 황태자 이현에게 양위를 하면서
그렇게 이현은 이번엔 무주의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죠.
그리고 약 한달후 신룡정변의 공신들과 중종은
무주를 없애고 다시 국호를 당나라로 바꿔버렸습니다
한편 측천무후의 조카였던 무삼사는 신룡정변의 공신들이
무씨 일파를 모두 제거하려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위황후와 손을 잡고 환언범과 공신들을 모함한뒤 모두 제거해버렸죠
그리고 이후 무삼사는 아들 무숭훈, 위황후, 그리고 안락공주와 함께
중종의 눈과 귀를 가리고 당나라의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채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당나라는 기존에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측천무후의 무씨와
새롭게 등장한 외척 위씨가 거의 다 장악해버렸죠
심지어 위황후의 아버지 위현정은
황족인 이씨외에 아무도 봉해지지 않았던 왕으로 봉해졌고
거기다가 무삼사는 자신의 아들 무숭훈을
위황후의 딸인 안락공주와 혼인을 시키면서
더욱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황제인 중종은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좋은게 좋은거 라는 식으로
모든일을 처리해버렸는데요
어느날 토번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재상 종초객을
어사 최완이 고발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죠
이때 중종은 둘을 불러 의형제를 맺게 하여
누구도 처벌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식으로 일을 처리해버렸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친척이나 외척, 그리고 자기편인 사람들이
벼슬 자리를 달라고 할때마다 턱턱 벼슬을 주었다보니
나중에는 궁안은 쓸데없이 많은 관리들로 바글바글 했다고 하죠
그만큼 중종은 암군끼 다분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중종의 아내였던 위황후는 중종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는데요
위황후는 무삼사와 정치적으로 손을 잡은것 뿐만아니라
서로 눈이 맞아 애인사이가 되었고 간통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이죠
심지어 중종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몰래 위황후와 서로 손을 잡거나 음흉한 짓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종과 위황후의 딸인 안락공주도 굉장히 골때리는 인물이었는데
안락공주는 중종이 폐위되어 방주로 귀양가는 도중에
길에서 낳은 아이였던 만큼
중종과 위황후 둘다 그녀에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이죠
그래서 어릴때부터 워낙 오냐오냐 키우다보니
안락공주의 성격은 안하무인이 되었고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게 됩니다
안락공주는 부모의 총애를 믿고 엄청난 사치를 부렸으며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을 일삼기도 했죠
또한 백성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기도 하고
수시로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먹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황실 소유의 넓은 호수를 달라고 했지만 거절 당하자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 황제의 호수보다 더 큰 호수를 팠는데
이는 황제를 업신여기는 행위가 될수도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목이 날아갈수도 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안락공주는 심하게 탐욕스러운 성격때문에
그런일도 그냥 막 저지르고 다녔던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는 아버지 중종을 찾아가
자신을 황태녀로 삼아달라며 졸랐다고 하죠
이에 중종이 다음날 재상인 위원충을 불러 이 일을 의논하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던 위원충은
"그럼 부마는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라는 답변을 하면서
격하게 반대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중종은 다시 안락공주를 불러
"재상 위원충이 안된다더라" 라고 하며 얼버무리자
안락공주는 할머니 측천무후도 황제로 즉위했는데
자신은 왜 안되냐며 길길이 날뛰었다고 하죠
또한 이때 이후로 안락공주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증오로 바뀌어 버렸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위원충은 이때의 일로 위황후 일파에 찍혀
훗날있을 경룡정변에 참여했다가 실패해 죽임당하고 말죠
한편 당시 황태자 자리에는 중종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던
이중준 이었는데요
이중준은 황태자 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위황후와 무씨 일파에
개무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위황후와 무삼사, 그리고 무숭훈, 안락공주 등은
그를 노비놈이라고 불렀다고 하죠
또한 그들은 이중준을 모함해 태자자리에서 쫓아내려고 했으며
지속적으로 심한 견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빡친 이중준은 무씨 일족과 위황후 일족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림대장군 이다조를 포섭해
707년, 경룡정변을 일으켜 버렸죠
이중준은 간신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무삼사 무승훈 부자를 찾아가 죽여버렸고
다음 목표인 위황후와 안락공주 등을 죽이기위해
곧장 궁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이때 이중준이 정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중종은
자신이 살해당할까봐 두려워
아내인 위황후와 사랑하는 딸 안락공주 등을 데리고
현무문에 피난가 있었는데요
이때 이중준은 아버지 중종에게 반역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현무문 코앞에서 쳐들어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자 중종은 이중준이 이끌고 온 군사들을 향해
"너희들은 모두 나의 호위병들인데 어찌 반역을 일으켰느냐?
역적 이중준과 이다조의 목을 벤다면 모두 용서해 줄것이다" 라며 소리쳤고
누가봐도 황제와 황후를 포위한 이중준과 이다조가
반역자로 보이는 상황이었기에
중종의 말에 결국 쿠데타군의 칼끝은
순식간에 이중준과 이다조를 향해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위황후와 안락공주를 죽이지 못한채
이다지는 병사들에 의해 순식간에 죽임당했고
이중준은 산으로 달아났지만 결국 부하들에게 살해되어
그의 목은 위황후와 안락공주가 무삼사의 사당에 바쳤다고 하죠
애인이던 무삼사가 죽자
위황후는 계속해서 다른 남자들과 간통을 이어나갔는데
보다못한 연흠융이라는 사람이
중종에게 모든일을 고해 바치며 정신차리라는 충언을 올렸습니다
이에 중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연흠융을 직접 문초했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충언을 올리는 연흠융의 기개에
중종도 드디어 위황후를 의심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점점 종친들과 대신들의 말을 귀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위황후가 해오던 정치 간섭을 막고
이후로 위황후가 원하는대로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자신들의 심복이었던 병부상서 종초객을 시켜
연흠융을 죽여버리기 까지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된 중종은 지나친 처사였다며 굉장히 화를 냈던 것이죠
갑자기 변한 중종의 태도에 위기를 느낀 위황후는 딸인 안락공주를 불러
자신은 여황제가 되고 안락공주는 황태녀가 되기로 하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꾸미게 됩니다
그리고 710년 어느날, 즉위 4년차를 맞은 중종에게 안락공주가 찾아가
아버지께 바치기 위해 직접 만들었다며 떡을 바쳤죠
그러자 중종은 매우 기뻐하며 안락공주가 준 떡을 먹었는데
떡에는 독이 들어있었고 먹자마자 중종은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습니다
중종은 그렇게 애지중지 하며 사랑해 마지 않았던 딸 안락공주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것이죠
이후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당중종의 4남인 이중무를 꼭두각시 황제로 앉히고
황태후 노릇을 하려고 했지만
당예종의 아들 이융기가 정변을 일으켜
위황후와 안락공주를 죽여버리면서 그들의 악행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중종은 남자가 평생을 살면서 제일 가까운 세명의 여자에게
모두 배신을 당한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것인데요
어머니에게는 쫓겨나 귀양을 가게 되어 불쌍한 삶을 살다가
아내는 간통을 일삼았으며
딸에 의해 죽임당해버린 불쌍한 남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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