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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유엽. 어쩌면 위나라 뿐만 아니라 삼국지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던 엄청난 책사(발석차 원툴 절대 아님)

by 사탐과탐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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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조비, 조예가 유엽의 말을 믿어주고 따랐다면
위나라 뿐만 아니라 삼국지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던
엄청난 지략을 가졌던 책사 유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에서 처세술의 달인으로 유명한 가후 못지않게

처세술이 뛰어났다고 알려진 책사 유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엽은 소설 삼국지연의나 삼국지 게임의 영향으로

발석차를 개발해 냈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그는 발석차나 공성병기 같은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관도대전에서 발석거를 개발해 활약하는 것은 모두 연의의 허구이며

정사에서 나온 유엽은 주로 적절하고 날카로운 계책을 제안하는 전형적인 참모였다고 하죠

그리고 막나가는 성격으로도 매우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와 관련된 일화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유엽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머니는 마지막순간 어린 유엽과 그의 형에게

"내가 죽고 나면 너희 아버지를 모시는 시녀가 우리 집안 재산을 탐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죽거든 꼭 저 여자를 죽여달라"라는 엽기적인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어린 유엽은 어머니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다가

7년이 지난 14살 때 형에게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자는 말을 꺼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엽의 형은 아무리 어머니의 유언이었다고 해도

시녀가 우리 집안의 재산을 노렸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있겠냐며 반대했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형의 말이 당연히 옳았지만

유엽은 보통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형이 반대를 했음에도 유엽은 혼자서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 날 칼을 들고 가서는 대놓고 그 시녀를 죽여버렸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는 그녀의 목을 베서 어머니 묘에 바치고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바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엽을 꾸짖었지만 유엽이 어머니의 유언을 들먹이자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유엽을 용서해 주기로 하고 관청에 고발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한나라 황족 출신인 유엽은 오나라땅인 양주에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훗날 손권의 책사이자 도독이 되는 노숙과도 친구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노숙에게 가서 함께 정보(오나라의 정보와는 다른 사람)라는 인물을 섬기자고 제안했는데

처음에 노숙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도중에 마음을 바꿔 손책을 섬기게 되었다고 하죠

 

그렇게 유엽은 혼자서 정보의 부하가 되었는데

운이 없게도 이 정보라는 사람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독한 군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보의 아래에 있던 백성들이 그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자

정보는 유엽에게 그 백성들을 모조리 잡아오라는 지시를 내렸죠

 

황족 출신으로 명성이 높았던 유엽은 차마 그런 정보의 지시를 따를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는데

때마침 조조가 보낸 사람이 양주로 유엽을 스카웃하러 오는 일이 일어났죠

그러자 유엽은 그때부터 조조를 따르기로 결심하고는

정보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지만 정보는 원래 술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가 술을 마시지 않고 버티자 섣불리 기회가 찾아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유엽을 따르던 병사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유엽이 갑자기 옆에 병사가 차고 있던 검을 빼들어서

맨 정신이었던 정보를 직접 죽여버리고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고 하는데요

 

그리고는 정보의 목을 들고 조조의 이름을 들먹이며 정보의 부하들을 협박하자

겁을 먹은 부하들은 모두 유엽에게 항복을 해버렸다고 합니다

유엽이 지력뿐만 아니라 무력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기록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유엽은 정보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조조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여강태수 유훈에게 항복을 해버렸다고 하죠

유엽이 갑자기 수천의 병사를 끌고 자신에게 항복하자 유훈은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항복했는지 그 이유를 물었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유엽은 "정보는 법과 질서를 어기고 백성들을 괴롭혔으며

그 부하들도 정보를 따라 백성들을 노략질하는 무리들에 불과했는데

나로서는 이들을 제대로 다스리기가 힘들어서

힘이 센 당신에게 항복하는 겁니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고

유훈은 기뻐하며 유엽의 항복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당시 유훈은 양주 최고의 군벌로 손책조차도 아직 유훈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시기라고 하죠

그런데 유훈은 유엽이 데리고 온 병사들을 포함해

짧은 시간에 갑자기 너무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게 되면서

그들이 먹을 군량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때 손책이 유훈에게 뇌물을 주면서

상료라는 지역에 곡식이 많이 나는데 거기를 함께 공격한 후

거기서 나오는 군량을 사이좋게 나누자는 제안을 했죠

하지만 이것은 유훈을 본거지에서 끌어낸 후 빈 집을 공격하려는 손책의 계략이었습니다

 

손책의 제안이 사기라는 것을 눈치챈 유엽은

손책은 간사해서 믿을만한 인물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만약 유훈이 상료로 출전하면 손책이 비어있는 성을 공격할 거라며 알려줬지만

이미 군량에 눈이 먼 유훈은 유엽의 말을 듣지 않고

병사들을 끌고 나가 상료를 공격해 버렸죠

 

유엽의 예상대로 손책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훈의 본거지인 여강을 공격해서

유훈과 원술의 일가족을 포로로 삼고 여강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손책과 주유는 미녀로 소문난 대교 소교 자매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라 대교자매의 아버지인 교공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그녀들을 아내로 삼아버린 약탈혼이었다고 하네요

 

위기에 빠진 유훈은 유표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손책은 유표의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유훈을 박살내 버렸고

결국 유훈과 유엽은 둘 다 조조에게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유엽은 재빠르게 유훈을 손절해 버리는 처세술을 보여주면서

훗날 유훈이 조조에게 처형될 때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죠

 

조조군에 들어온 유엽은 본격적으로 참모로서의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여강에는 진란이라는 산적이 수만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조조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여러 번 군대를 보냈지만 실패만 하고 있었죠

때문에 조조가 직접 수춘까지 내려오자 여러 부하들은 진란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을 조언했는데

이때 유엽만이 조조에게 진란을 무찔러 천하에 위엄을 떨쳐 보이라는 조언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조가 유엽의 조언을 받아들여 진란을 토벌하는데 성공하면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유엽을 사공창조연에 임명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던 유엽은 조조가 장로를 토벌할 때 다시 등장했죠

 

한중 땅이 워낙 길이 험하고 가져온 군량마저 다 떨어지자

조조는 한중을 포기하고 철수하려고 했지만

이때 유엽이 장로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며 퇴각하려는 조조를 말린 끝에

결국 조조는 장로를 무찌르고 한중을 평정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조조는 한중을 점령한 이후 본거지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때 유엽이 조조에게 지금 서촉을 점령한 유비를 그대로 둔다면

제갈량이 재상이 되고 관우, 장비가 군대의 지휘관이 돼서 나라를 안정시킬 테니

그때가 되면 유비가 조조에게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라는 조언을 했는데요

하지만 조조는 유엽의 말을 듣지 않은 채 돌아가버렸고

훗날 한중을 침공해 온 유비와의 결전에서 패하며 한중을 유비에게 내주게 됩니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했을 때 위에 항복한 맹달이

조비의 총애를 받으면서 신성태수가 되는 일이 있었죠

이때 유엽은 조비에게 맹달은 위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장수이기 때문에

중요한 요충지인 신성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반대를 했지만

조비는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고 훗날 유엽의 말대로 맹달은 위를 배신하게 됩니다

 

관우가 죽고 나서 앞으로 유비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조비가 신하들에게 물었을 때

다른 신하들은 모두 유비가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오직 유엽만이 유비와 관우의 사이는 겉으로 보기엔 군주와 신하의 관계지만

 

실제로 보면 그들의 관계는 마치 형제와 같기 때문에

유비가 반드시 관우의 복수를 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하죠

실제로도 유비는 얼마 후 병사들을 끌고 오를 공격했습니다

 

결국 촉과 오의 운명이 걸린 이릉대전이 일어나자

유엽은 이때가 오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조비를 설득했지만

이번에도 조비는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위기를 넘긴 오나라는 이릉대전 후 기회만 나면 위나라를 침공하려 했죠

 

그러자 조비가 뒤늦게 오나라를 정벌하려 했고

유엽은 지금은 이미 시기를 놓쳤다며 조비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조비는 유엽의 말을 듣지 않고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결국 실패를 하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비가 죽은 후 조예가 다음 황제가 되었는데

즉위초기까지만 해도 조예는 유엽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그를 가까이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예가 유엽에게 촉나라를 정벌하는 것에 관한 의견을 물었는데

이때 유엽은 조예에게 충분히 촉을 정벌할 수 있다고 답을 했죠

 

이후 조예가 다른 신하들을 불러 촉을 정벌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다른 신하들은 모두 촉정벌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조예는 유엽이 자신에게 촉을 정벌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른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밝혔는데

문제는 위의 신하들이 유엽이 자신들과 있을 때는

촉을 정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앞뒤가 다른 유엽의 말에 이상함을 느낀 조예가 유엽을 다시 불러 이에 대해 묻자 유엽은

군사를 일으켜 촉을 치는 일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진행해야 할 나라의 중대사이기 때문에

자신은 일부러 다른 신하들에게 그렇게 말을 한 것인데

조예가 신하들에게 촉을 정벌할 의도를 드러낸 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인 거 같다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하죠

 

그 말을 들은 조예는 유엽에게 사과했지만

이 일로 인해 유엽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후 조예와 사이가 멀어진 유엽은

언제 조예에게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며 남은 생을 보내다가

23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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