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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탐구

더럽지만 재미있는 중세시대 유럽의 위생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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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위생관념이 거의 없었는데 길 가다 똥벼락을 맞는 일도 허다하기도 했으며 평생 씻지도 않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합니다.
다소 더럽지만 재미있는 중세 유럽 위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한 이미지가 있는 중세 유럽 하지만 당시 실제 생활 모습은 정말 어마 무시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생활을 살짝 엿보면 썩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 많죠.

 

유명한 이야기지만 중세 유럽에는 하수도가 없어서 용변은 양동이 같은 변기에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그러다가 변기가 가득 차면 배설물은 강이나 정원이나 길거리에 그냥 버려버렸고 그 덕에 거리는 심한 악취로 진동했다고 하죠.

 

12~13세기의 파리에서는 도로의 중간에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에다 모아놓은 배설물을 흘려보냈습니다.

이 수로는 세느강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 흐름과 함께 강으로 흘러내려 갔는데 오물은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고 있었으며 3주마다 시의 직원이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룰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일반 시민은 "머리 조심하세요!" 라고 외치며 창밖인 길거리에 직접 투척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창밖으로 배설물 버리는 모습

그래서 길 가던 사람들이 날벼락을 맞는 일이 잦았습니다.

똥벼락을 피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 바로 양산입니다.

 

그 당시 양산은 지금처럼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고 창밖으로 던져진 오물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죠.

 

심지어 펑퍼짐한 여자들의 드레스 역시 아무 곳에서나 용변을 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밤늦도록 진행되던 무도회나 파티 같은 곳에서 여자들은 급하면 커튼 뒤에서 볼일을 본 후 향수를 뿌리고 다시 춤을 추었다고 하죠.

 

또한 길을 가다 길가에 용변을 보다 보니 얇은 천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천으로 길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들을 가려주고 돈을 받은 것이었죠.

화장실의 유래가 얇은 천에서 왔다는 말이 있는데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긴 한 것 같습니다.

 

화장실의 유래?

베르사유 궁전에도 원래 화장실이라고 하는 방이 따로 없었고 루이 14세 시대에는 274개의 의자식 변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궁전에는 상시 4000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으므로 274개는 너무 적었고 그래서 신하들은 근처에 변기가 없을 때 복도와 방구석 정원에서 볼일을 봤습니다.

이 때문에 베르사유궁전의 정원 또는 복도 등은 분뇨로 가득해서 악취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부유한 귀족들의 집에는 실내 화장실이 있기도 했는데 그 실내 화장실이란 것은 집의 외벽에 돌출된 작은 공간으로 그 공간 바닥에 구멍을 뚫어 거기서 배설을 하면 그대로 집 밖으로 떨어지게 설계된 것일 뿐 그냥 밖에 싼 거죠.

 

중세시대 화장실 개념

그럼 갑옷 입은 기사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갑옷을 입은 채로 그냥 싸버렸습니다.

 

치열한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기사에게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끔찍한 냄새를 풍겼는데 갑옷을 벗기면 속이 온통 땀과 대소변으로 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환상적인 냄새를 풍겼습니다.

 

기사들은 그들 뒤를 따라다니는 시종에게 갑옷의 배설물을 닦게 하고 그들은 사람의 소변에 모래와 식초를 섞어 만든 원시적인 비누로 기사들의 갑옷을 정성껏 닦았습니다.

 

좀 비위생적이라도 잘 씻으면 되었을 텐데 중세인들은 물을 유독 무서워하고 싫어했었다고 합니다.

 

14세기 유럽 전체를 공포로 몰고 간 흑사병과 자주 발생하던 전염병의 원인이 물로 지목되면서, '죽고 싶으면 목욕하라' 라는 말이 생겼고 그로 인해 중세인들의 물 공포증이 생긴 것입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인간의 피부 표면은 쉽게 물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물은 모공을 열고 유해한 물질의 공격에 노출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목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은 평생 출산일과 자신의 결혼식 때만 목욕을 했다고 하고 루이 14세는 지독한 입 냄새로 악명이 높았고 평생 두 번만 씻었다고 합니다.

 

귀족들은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으로 청결을 대신했습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땀이나 배설물 등 오물을 닦기 위해서 천을 사용했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는 꽃잎을 탄 분홍색의 물을 적셔 닦았으며 그렇게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발명된 것이 향수였으며 필수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세시대 향수 판매상

가난한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고 수년 동안 옷을 빨지도 않았습니다.

씻지 않은 신체의 냄새는 건강에 대한 깊은 존중의 신호로 간주되었다고도 합니다.

 

15세기 의학 논문에는

"수욕은 몸을 따뜻하게 하지만 몸을 약화시키고 모공을 확장시킨다.
그러므로 질병을 얻기 쉽고 심지어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법령에 의해 공중목욕탕이 폐지되었으며 15~16세기 부유한 사람들은 반년에 한 번 씻다가 17~18세기에 와서는 아예 목욕을 중단하기에 이르죠.

 

중세시대에서도 패션의 변동은 있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시절의 베르사유에서는 특히 헤어스타일로 모두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귀족 여인들의 머리에는 그때 관심 있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었죠.

 

머리 장식에는 큰 배나 화단이 있었고 양과 양치기 소년 소녀가 있거나 아무튼 엄청난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중세시대 귀족 여인의 헤어스타일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보면 머리카락이 전부 백발 비슷하게 보이는데 이것은 밀가루를 뿌려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피부에도 밀가루를 뿌렸다고 하는데요.

프랑스에 빵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로 귀족들이 머리에 밀가루를 뿌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꼽히기도 합니다.

 

밀가루를 머리에 뿌린 이유는 볼륨을 내서 높고 풍성하게 그리고 무너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키는 용도와 피부와 머리카락을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밀가루를 뿌리고 머리도 잘 감지 않아서 이와 벌레가 득실득실 들끓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몸에는 벼룩도 많았는데 실크는 부드러워서 벼룩이 잘 붙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최고의 옷감이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에 수많은 전염병과 흑사병이 창궐한 이유가 어쩌면 이런 더럽고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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