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에게 몇번이나 들이받고 개겼지만 무사했던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조선 영조시대에 왕을 몇 번이나 들이받고도 무사했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인물의 정체는 바로 박문수인데요
박문수라고 하면 백성들을 돕는 정의로운 암행어사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박문수를 광패나 광인 등의 표현을 써서 미친놈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대체 왜 박문수가 미친놈으로 표현되었는지 한번 알아보죠
박문수는 영조 때의 인물로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됐을 때 세자를 교육하는 기관인 시강원의 관리로 임명되면서 영조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박문수는 당시 보통 관료들과는 달리 아주 특별한 개성과 성격을 갖고 있어 왕명조차 틀렸다고 거부한 일이 여러 번 있었죠
영조조차 박문수의 고집을 꺾는데 실패하고 "경의 고집은 정말 큰 병이다"라고 탄식할 정도였으며 어쩌다 박문수가 고집을 꺾으면 "경도 고집을 꺾을 때가 있는가"라고 영조가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말하는 태도에도 거침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루는 수찬 벼슬을 지내고 있는 한현모라는 인물이 영조에게 "박문수 저자가 전하께서 총애하는 신하인 저희를 노예라고 불렀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라고 고하자 그 말을 들은 영조도 그건 좀 심한 말 같다며 박문수에게 이유를 물었죠
이에 박문수는 "제가 말을 거칠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들은 단지 신하라는 이유로 전하께서 무슨 일을 하든 말 한마디 못한 채 그저 입만 다물고 있으니 노예와 다를게 무엇입니까"라며 돌직구를 날렸다고 합니다
박문수는 평소 왕과 독대를 자주 했으며 군신 관계를 떠나서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고 하죠
거기다가 왕의 면전에서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있었는데 우의정 김흥경을 포함한 다른 대신들이 그런 박문수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하자 박문수는 오히려 옛 사례를 봐도 요즘처럼 신하들이 겁을 먹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지나치게 비굴한 모습을 보인적은 없었다며 아첨하는 무리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임금과 신하는 아버지와 자식 같은 사이인데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 좀 쳐다본다고 해서 뭐 그리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냐고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영조는 다른 신하들도 박문수처럼 얼굴을 들고 왕과 마주 볼 수 있도록 명했다고 합니다
박문수는 영조에게 말할 때도 왕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표현을 쓰는 등 영조가 듣기 싫을만한 소리도 마구 했고 심지어 영조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이거나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고 하죠
천재지변이 심할 때에는 왕에게 직설적으로 "지금 교화도 없고, 법도도 없고, 새로운 인재도 안 생기고 사대부가 염치도 없고 민생은 망한 데다가 재난까지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책임자인 왕이 나라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이렇게 충언을 올려봐야 전하께서는 또 유념하겠다고 한마디 말하고 내일이면 또 그대로겠지요"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박문수를 보며 주변 신하들은 매번 공포에 떨었다고 하죠
왜냐하면 영조는 결코 호락호락한 왕이 아니었고 평소 예의범절을 굉장히 따져 사소한 말에도 트집을 잡아 신하들을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문수는 왕세제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인연으로 특별대우를 한 것인지 평소 영조는 적이 많은 박문수를 늘 감싸는 편이었는데 오죽하면 경연 자리에서 예의에 과하게 어긋나는 까칠한 농담을 날려대도 "박문수가 아니면 누가 저렇게 바른말을 하겠나" "원래 박문수의 성격이 저런 걸 새삼스럽게 어찌 고치겠나" 따위의 말로 덮어버렸다고 하네요
이쯤 되면 적당히 몸을 사릴만도 하지만 박문수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예조참판을 지내던 시절 박문수는 영조에게 나는 미친놈이라서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라도 하지만 영조 네가 신하들 말 한마디마다 까칠하게 트집을 잡으니까 다른 신하들은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영조 네가 똑똑한 건 알겠는데 아침에는 분명히 반성한다고 말해놓고 저녁이 되면 또 헛소리하고 맨날 화를 내는 게 일상이다
지금은 별일 없어도 나중에 가면 또 발작증세를 일으킬게 뻔하다
말로만 요순시대를 만든다고 하지 말고 성질 좀 죽이고 살아라는 내용이 담긴 상소를 올려버리기도 했죠
폭주기관차 박문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박문수가 영조에게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전하의 대에서 300년 종사가 망하려나 봅니다
전하께서 공부도 안 하는 헛똑똑이라서 자꾸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려고 하는데 제발 잘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은 전하와 나라 꼴만 보면 미칠 것 같사옵니다"라는 직언을 날렸죠
하지만 영조는 화를 내지 않고 "사람들은 경이 거칠다고 말하지만 과인은 경이 강직한 거라고 믿을 뿐이오"라고 답해줬습니다
어지간한 신하는 감동하고 거기서 그만할 법도 한데 박문수는 "저를 강직하다고 칭찬해주시니 한마디 더하는데 전하 딸한테 너무 많이 퍼주지 마십시오 말로만 사치를 줄인다고 하면서 딸한테는 막 퍼줍디다?"라고 돌직구를 날려버렸죠
영조의 후궁 영빈 이 씨가 사도세자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 박문수가 포함된 청나라 파견단이 영조를 만났을 때 사신단장인 서명균이 영조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시길 빌자 영조가 아들은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고 답을 했는데요
그런데 이때 박문수가 또 "사람의 일을 다해야 하늘이 아들을 내려주는 것인데 과연 전하께서 사람의 일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백성들을 보호하고 아끼며 선정을 베풀어야 하는데 전하께서는 헛짓거리나 하면서 왜 아들은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고 하시옵니까
이런 전하를 두고 제가 국경 밖으로 나가려니 너무 걱정이 돼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전하에게 충언을 드려봤자 전하의 집안 꼬라지부터가 위에 대비부터 밑에 옹주까지 모두 개판인데 어찌 아들이 나올 수 있겠사옵니까"라고 말했죠
그러자 영조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이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그래도 경이 미친놈까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본 다른 신하들이나 사대부들은 박문수가 성질이 급하고 체통이 없어서 스스로 화를 부른다고 했으며 심하게 비난할 때는 미쳤다고 표현할 정도였다고 하죠
보통의 경우 신하가 영조 앞에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최소 유배를 갈 정도는 각오해야 했지만 영조는 박문수만은 늘 옹호하고 아꼈는데 이것이 박문수가 더 심한 팩트 폭격을 날리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네요
박문수는 영조의 면전에서 "제가 전하를 오랫동안 잘 모셨음에도 권력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이 조금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실로 기특한 일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도 영조가 그의 말을 모두 받아줬을 정도라고 합니다
박문수가 이런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영조를 왕세제 시절부터 모셔왔던 인연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능력이 매우 뛰어난 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박문수는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뒤에 민심을 잘 수습해서 민초들의 일기에 등장할 정도였고 영남지역의 어사를 할 때는 각지의 탐관오리들을 모두 때려잡았으며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쓰이는 소금인 구황염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소금을 구워다 바쳤다고 하죠
그리고 함경도 지방에 홍수가 났을 때는 왕의 명령이 내려오기도 전에 신속하게 쌀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했으며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탁지정례라는 책을 편찬해서 왕실의 지출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일을 잘하니 영조 입장에서도 박문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1756년 박문수가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그가 생전에 정승이 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세상을 떠난 그날 바로 박문수에게 영의정을 추증했고 "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오직 박문수뿐이며 박문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그가 언제나 나라를 위한 충성이 깊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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