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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박병선 박사.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밝혀냈고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은 역사학자

by 사탐과탐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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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인 의궤와 직지를 프랑스 땅에서 직접 찾아내고 전 세계에 알린 대한민국의 영웅 박병선 박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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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월. 청나라로부터 천주교를 탄압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전해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림세력들은 천주교를 탄압하라고 일제히 목소리를 냈고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좌의정 김병학과 신정왕후 조씨 등이 유림세력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운현궁에 천주교인들이 드나든다는 소문이 퍼지자 안 그래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문에 잔뜩 열이 받아 있던 양반들에게는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킬 좋은 명분이 탄생할뻔했었습니다.

그다지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없던 흥선대원군은 결국 입장을 바꾸며 천주교 탄압의 교령을 내리게 됩니다.

 

교령에 따라 1866년 2월 23일. 베르뇌 주교를 필두로 프랑스인 천주교 사제 12명 중 9명이 체포되었고 처형당하게 되었죠.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이 천주교 박해로 인해 순교한 천주교 신자는 약 8,0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조선의 천주교 박해 중에서 최대 규모였습니다.

 

나머지 3명의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는 살아남아 도망을 쳤는데 그중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는 청나라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리델신부는 곧장 청나라 천진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 피에르 구스타프 로즈에게 조선에서 있었던 천주교 박해 소식을 전했고 이에 로즈 제독은 프랑스인 천주교 사제들의 처형을 빌미로 강화도를 공격했는데 당시 조선의 화승총과 프랑스군의 소총의 사정거리는 5배나 차이가 나서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죠.

 

병인양요

순식간에 강화도의 문수산성이 불살라졌고 용진진,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철곳보 등과

왕이 행차했을 때 머물렀던 강화행궁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장군 부대의 기습에 의해 6시간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로즈 제독의 프랑스 군대는 패하여 10월 13일에 비로소 완전히 조선에서 철수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군은 철수 당시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및 은괴를 약탈했는데 이 결과로 5천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권의 책과 문서 및 은괴 수천 냥을 약탈당했죠.

 

이 사건이 1866년에 일어난 병인양요였죠.

 

병인양요

 

시간이 흘러 1923년 3월 25일. 경성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병선으로 진명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죠.

 

그녀는 프랑스 유학시절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를 시작했는데 병인양요 때 약탈된 의궤를 찾아보라는 스승 이병도의 말에 3,000만 권이나 되는 도서관의 책들을 일일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승이 찾아보라고한 의궤란 조선시대에 있었던 왕실의 행사와 중요한 의식들을 상세히 기록해놓은 책으로 혼인, 장례, 연회, 외국 사신의 접대뿐만 아니라 어보 제작, 책봉, 행차 등을 모두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던 책이었죠.

 

그녀는 수년간 책을 뒤지다 우연히 대충 방치되어 있던 한문으로 적혀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그 책은 바로 직지심체요절이라는 책이었죠.

 

직지심체요절

 

박병선은 직지를 발견 후 국립도서관 직원들에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신성 로마 제국 출신의 세공업자로 인쇄기의 발명자)의 성경 책(1455년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가 된 책이라며 이야기했지만 직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무시를 했고 결국 혼자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인 것을 입증해야 했죠.

 

다행히 직지의 내용에는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청주에서 발견된 한 절터에서 관련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그 절터가 옛 흥덕사의 절터였음이 밝혀지면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것이 입증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데 크게 공헌을 했고 우리의 금속활자가 서양의 활자보다 더 오래됐다는 걸 증명해냈습니다.

 

박병선 박사 보도자료

 

그 이후로도 계속 사서 일을 하며 의궤를 찾다가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푸른 천에 싸여있는 의궤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의궤들은 모두 신하들이 열람하던, 표지가 붉은색 베로 만들어진 분상용 의궤였는데 프랑스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의 의궤는 표지가 파란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왕만 보던 어람용 의궤였죠.

그만큼 우리 입장에서는 의미가 남다른 대한민국의 문화재였던 것이죠.

 

이 어람용 의궤 발견 사실을 한국에 알렸고 한국에서 반환을 요구하자 프랑스에서는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약탈 행위를 왠 외국인이 와서 다 파헤친 꼴이 되었으니 박병선의 행동이 매우 불쾌했던 프랑스 도서관에서는 박병선에게 사표를 강요했고 심지어 '한국의 스파이'라는 오명을 씌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쿨하게 사표를 내고 이후부터는 도서관 이용자로 10년 동안 매일같이 도서관을 오가며 도서관 관계자가 의궤를 치워버릴까 두려워 식사도 제때 하지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였죠.

박병선의 별명이 "파란 책만 보는 여자" 였을 정도로 연구만 한 결과 <조선조의 의궤> 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후로도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곳을 찾아내기도 했죠.

 

그러던 중 2009년 9월에 한국에 병인양요에 대한 사료를 찾으러 왔다가 직장암 4기 선고를 받았고 2011년 5월 27일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 만에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온 소식을 듣고 나서 2011년 11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박병선 박사

 

그녀는 문화재 발견과 반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었죠.

 

오랜 기간 동안 협상 끝에 프랑스와의 교섭에 성공해 외규장각 의궤들을 돌려받았는데 5년마다 자동갱신되는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받았다는 점에서 '소유권을 우리 쪽으로 돌리지 못했다'의 의견과 '실리를 택한 것이다'의 의견이 대립하긴 했지만 의궤들은 145년 만에 반환되어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입니다.

 

평생을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노력과 타계 직전까지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 연구하신 박병선 박사님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대한민국의 영웅'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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