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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김개시. 선조와 광해군의 여자였던 조선 3대 요부

by 사탐과탐 202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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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시는 장녹수, 장희빈과 함께 조선 3대 요부인데요.
외모가 예쁘지는 않았지만 명석한 두뇌와 빠른 일처리 덕분에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광해군의 총애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김개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선조와 광해군 두 임금을 모셨던 궁녀인 김개시는 시(屎)자가 '똥 시'자 이기때문에 원래 이름은 김개똥 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에 이름이 더럽고 추할수록 오래 산다는 미신 때문에 아버지가 김개똥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훗날 한자로 기록을 할 때 똥이라는 글자를 적기가 애매하니 '똥 시'자를 쓴 것 아닐까 싶네요.

 

기록에는 개희(介姬)나 가히(可屎)로 적혀있는데 두 이름이 합쳐진 것인지 흔히 알려진 그녀의 이름은 김개시(介屎)라고 합니다.

 

그녀는 천민의 딸이었지만 궁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광해군이 세자였을 때 동궁전의 나인이었는데 그때 광해군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김개시 (드라마 서궁)

 

광해군의 어머니였던 공빈김씨가 죽자 김개시는 궁녀로써 어린 광해군을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고 광해군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김개시를 믿고 어머니나 누이처럼 가까이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광해군일기>에 의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외모가 피지 않았고 교활하며 계략이 많았다' 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 3대 요부로 알려진 장녹수나 장희빈과는 달리 외모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지만 업무처리 능력이 뛰어났고 눈치가 빨랐으며 머리 회전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가 몽진을 떠나게 됐을 때 선조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때 승은을 입어 특별상궁이 되었죠.

 

김개시 (드라마 서궁)

그녀는 명석한 머리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선조와 광해군 사이에서 중재를 잘 했다고 합니다.

선조가 영창대군을 세자로 바꾸려고 할 때도 광해군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죠.

 

이후 선조가 죽고 난 뒤 광해군이 왕으로 즉위하자 김개시는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광해군이 왕이 된 이후로 전폭적인 총애를 받으며 점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데 상궁의 신분이었지만 국정에 깊숙이 관여를 했고 관직을 돈을 받고 파는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다 '계축옥사'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613년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등이 조령에서 은(銀)상인을 죽이고 그의 은 수백 냥을 훔쳐 간 사건이 발생했죠.

그 범인들은 강변칠우라고 불리던 서얼들로 적자, 서자 차별을 폐지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지만 거부당하자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도적질을 하며 악행을 일삼는 악당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모두 체포가 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그들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는 역모를 일으키려고 했다'라는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류경영, 김제남 등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이 관직에서 내려와 교체되었으며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었고 영창대군도 폐서인 되어 강화도에 유배를 갔습니다.

 

영창대군 (드라마 화정)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예조판서 이이첨과 함께 김개시는 이일에 깊이 개입했었던 것이죠.

 

영창대군의 죽음은 너무 비참한 죽음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요.

영창대군이 유배를 간 뒤 밥을 잘 주지 않았다고 하며 가끔 주는 밥에는 모래와 흙을 섞어주어서 삼키지를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쫄쫄 굶다가 기력이 다한 영창대군을 방에 넣고 밖에서 문을 잠근 후 온돌에 계속해서 불을 땠는데 방이 너무 뜨거워지자 영창대군은 문을 열어달라며 하루 종일 문을 붙잡고 서 있다가 힘이 다해서 쓰러졌고 그대로 뜨거운 방에서 증살 당해 죽게 되었습니다.

방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영창대군 시신 옆구리의 뼈가 다 탈 정도였다고 합니다.

 

김개시는 마음만 먹으면 광해군의 후궁이 될 수도 있었지만 후궁이 되면 마음대로 궁을 나갔다 들어갔다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상궁으로 남아 권력만 탐하며 상궁의 지위에서 후궁들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죠.

 

김개시 (드라마 서궁)

 

광해군은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을 중건하거나 재건하는 공사를 시작했는데요.

이때 대규모 토목공사의 영향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며 상국인 명나라에 대한 배신(재조지은)과 어머니와 동생을 해한 것(폐모살제)을 명분으로 조정 대신들의 이상한 움직임이 생깁니다.

 

바로 반정의 조짐이 보인 것이었죠.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던 김개시는 반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자점과 결탁했고 광해군에게 고자질하지 않겠으니 반정이 성공하더라도 나의 위치는 보장해달라며 반정세력과 손을 잡게 됩니다.

 

이후 김개시는 반정에 대한 여러 상소들도 광해군에게 별거 아닌 상소이니 신경쓰지마라 라고 이야기했고 완전 김개시를 믿고 있었던 광해군은 그 상소들을 다 무시했죠.

 

1623년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광해군은 결국 강제로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를 가게 되었고

김자점과의 약속을 했던 김개시는 자신의 위치 보장은 커녕 요사스러운 여자로 몰려

반군 세력에 의해 참수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김개시는 끝없는 권력욕에 자신을 믿고 총애했던 광해군마저 배신했고 그런 자신 또한 배신당하며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광해군이 죽음에 이르는 데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조선시대 3대 요부 중 한 명인 특별상궁 김개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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