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 척결을 위해 흥선대원군은 과감한 개혁 정치를 펼치지만 며느리인 민비에 의해 권력의 정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민비와 민씨 척족들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지자 더는 못참고 백성들은 봉기하게 되는데 하필 청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뻗게 되면서 점점 망국으로 접어드는 조선이었습니다.
민비는 일본의 흉악한 칼에 희생당한 조선의 국모이자 비운의 여성으로 묘사되는데요.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조선이 망하는데 일조했다는 데에는 반대 의견이 없을 정도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그녀를 싫어했는데 동학농민운동이나 임오군란은 모두 민비를 목표로 할 정도였으며 국민들은 그녀를 '개간년'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오랫동안의 세도정치로 인해 나라 기강이 해이해지자 대원군은 외척세력의 힘을 항상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일찍 여의고 남자형제도 없지만 집안의 급도 떨어지지 않는 민자영을 최종 비로 간택하게 되죠.
민비는 비가 된 후 최익현을 시켜 흥선대원군의 탄핵 상소를 올리게 해 대원군을 실각시키기에 이릅니다.
그 이후 권력을 잡은 그녀는 민씨 일가를 요직에 앉히기 시작했습니다.
260여 명의 민씨 일가가 중앙 요직부터 지방 관직까지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며 이 민씨 일가의 매관매직, 부패와 사치 등은 또다시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병조판서이자 당시 세곡을 관리하던 선혜청의 당상관이던 민겸호는 군졸들에게 줘야 할 봉급을 빼돌려 자신의 곳간을 채우다 결국 줘야 할 봉급이 없자 13개월이나 밀린 군졸들의 봉급을 1개월치만 주는데 그 1개월치에도 썩은 쌀과 모래를 섞어서 주게 되고 격분한 군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민형식은 국가 세입 480만 냥 중 7분의 1에 해당하는 70만 냥 정도를 횡령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국가예산이 470조 원 정도였던 걸로 생각해 보면 혼자서 거의 65조 원의 돈을 해쳐먹었던 거죠.
이 민형식은 훗날 영남 도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이익만 챙긴 인물로 2002년에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될 정도의 나쁜 놈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영준은 백성 피 빨아먹는 대표급 민씨 척족 중 한 명이었는데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와 붙어먹으며 친청파로써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의 출병을 주도하기도 했었죠.
나중에는 일본에 붙어서 작위까지 받고 이름을 영휘로 바꿉니다.
그 유명한 친일파 민영휘가 바로 이 민영준입니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 수탈한 재물을 잘 불려나갔고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의 최고 부자들 중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친일파 708인 명단,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 행위 195인의 명단에 들어갈 정도로 극악무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민영휘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그의 후손들은 이 결정에 불복하여 국가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10년여에 걸쳐 쌓은 국부를 민비가 순식간에 탕진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낭비와 사치를 무분별하게 자행했던 인물인데요.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 자신의 조카인 민영익이 크게 다치는데 조선에 와있던 외교관이자 의사인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해 주자 민비는 알렌에게 사례금으로 10만 냥을 줬다고 하죠.
굳이 현재 가치로 따지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한 냥의 가치는 지금의 3만~5만 원 정도로 보이는데 10만 냥이면 현재 30억~50억 원 정도의 금액이 되겠네요.
그리고 훗날 알렌이 운산 금광의 채굴권을 따내려고 정부 요직에 있던 친미파 인사들을 꼬셔서 협상을 하는 와중에 그 일이 쉽지 않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마침
"지난 10년간 조선을 위해 봉사한 알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운산 금광을 하사하라."
라는 민비의 한마디에 운산 금광 채굴권이 송두리째 미국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노다지라는 말을 만들어낸 운산 금광 채굴권은 40년간 총 900만 톤의 금을 채굴해 5600만 달러의 수익을 미국에 건네줬습니다.
그리고 민비는 무속신앙에도 심취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유인이라는 무당과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총애했던 민비는 수시로 굿판을 벌였는데 한번 할 때마다 몇 만 냥씩 쿨하게 썼다고 합니다.
특히 이유인이라는 무당의 점괘가 잘 맞다고 하여 이유인이 굿판을 벌일 때마다 비단 100필에 1만 냥을 건네기도 했고 야사에 따르면 진령군이라는 무당은 박창렬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당이었는데 당시 천민 취급을 받던 무당에게 남자 왕족이나 나라를 위해 애썼던 고위 관료들에게 주어지던 군호를 주었을 정도로 미신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죠.
또한 민비의 주치의였던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38세의 나이로 조선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민비에게 결혼 축의금으로 100만 냥을 받았다며 자신이 쓴 책인 조선견문록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민비의 사치와 낭비가 얼마나 심했었냐면 국고가 텅텅 비어서 고종의 법적 어머니였던 조대비의 장례까지 치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또다시 세금을 거둬 백성들의 고혈로 만든 돈으로 겨우겨우 장례를 치렀다고 하죠.
매관매직으로 능력이 없음에도 돈으로 벼슬에 오른 조병갑이란 사람은 백성들 착취와 횡포가 너무나도 심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백성들이 결국 들고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민비는 또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고 톈진조약에 의해 일본도 개입하게 되면서 훗날 청일전쟁이 일어났으며 전쟁에 승리한 일본에 의해 청나라와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게 되죠.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한 야욕의 신호탄을 어찌 보면 민비가 쏘아 올린 것이기도 하죠.
정부의 무능함과 부패로 피해를 보던 국민들이 일으킨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을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외세를 끌어들여 자국민을 진압하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짓이었죠.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들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단지 민비는 자신의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아주 옹졸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과 청나라와의 급박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러시아가 드디어 개입을 하게 됩니다.
민비는 청일전쟁에 청나라가 패하며 항상 자신을 지켜주던 청나라 군사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데 이제는 러시아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친러 성향의 관료들을 중용하며 일본을 견제하려 했던 민비는 일본의 제거 대상 1호였는데요.
여우사냥이라는 작전하에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일본인 낭인들은 경복궁에 침입했고, 조선인 군관들의 비호와 길 안내로 순식간에 민비의 거처 앞으로 도착한 이들은 궁녀 복장으로 위장해 도망치던 민비를 붙잡았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던 민비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당시 일본공사 였던 미우라고로의 명령으로 시신에 석유를 뿌려 불태운 뒤 연못에 던져 버렸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민비가 죽었다는 것에 기뻐했지만 한편으론 분노를 일으켰는데요.
그 분노의 이유는 우리 백성들의 손으로 단죄를 해야 할 일을 일본 낭인 자기들이 뭔데 우리나라 왕비를 죽였냐는 것이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민비는 일본에 의해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에서도 '민비'라고 쓰고 황현의 매천야록에서도 명성황후의 호칭을 민비라고 사용했습니다.
명성황후는 훗날 고종이 대한제국이 건국된 후 시해된 민비의 장례를 다시 치르면서 추존된 호칭이죠.
민비가 일본의 흉악한 칼에 살해당한 것은 분명 분노를 자아내야 할 일이지만 그녀는 세도정치를 부활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다 결국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리는 비극이 일어나게 된 전초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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