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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박유붕.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최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린 관상가

by 사탐과탐 202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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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고종이 왕으로 즉위할 것을 관상을 보고 맞춘 후 흥선대원군의 최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린 관상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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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거기서는 송강호 배우님이 관상가인데 관상으로 벼슬을 얻고 김종서의 측근이 되어 수양대군과의 대결을 그린 영화인데요.

 

이 관상이라는 영화와 같이 관상만으로 벼슬을 얻고 당시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 책사가 된 실제 사건이 있습니다.

 

그 관상가의 이름은 바로 박유붕이라는 사람이었죠.

박유붕은 경북 청도 출신이었는데요.

젊었을 때부터 그는 관상과 점술을 공부했었죠.

그의 아내는 두사충이라는 사람의 후손이었습니다.

두사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조선이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했을 때 이여송, 진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온 명나라 사람이었죠.

 

전쟁이 끝나고 나서 모두가 돌아갈 때 두사충은 조선에 남아 눌러앉아 살게 되었는데 그는 당대의 풍수, 관상, 점술 등에 일가견이 있던 인물이었고 조선에 살면서 자신의 지식을 정리해 그런 것들에 대한 비전서를 남겼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두사충은 곧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멸망해버릴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조선에 남았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박유붕은 아내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젊었을 때부터 처가에 대대로 내려오던 이 비전서들을 공부해 조선에서 제일 가는 관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관상과 점을 본 결과 한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되면 출세길이 열린다는 점괘가 나왔고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기도 했습니다.

 

애꾸눈이 된 것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요.

애꾸눈이 되면 관상이나 점을 보는 데에 더욱 신묘한 능력을 얻게 된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는 설도 있죠.

 

어쨌든 그렇게 조선 최고의 관상가 박유붕은 어느 날 또 점을 쳤습니다.

점괘는 실로 놀라웠는데 안동 김씨의 세도가 끝이 나고 흥선군 이하응이 곧 권세를 잡게 될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그는 곧바로 흥선군의 집인 운현궁으로 찾아갔고 마당에서 제기차기를 하며 놀고 있던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의 관상을 보자마자 엎드려 절하며 "상감마마!"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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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도령이라 불리며 안동 김씨들에게 모욕을 받고 있었지만 속에는 야심이 가득했던 흥선군은 그 말에 흥미를 가졌죠.

 

그리고선 박유붕을 불러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으니 박유붕은

운현궁에 왕기가 서렸기에 찾아와봤더니 아드님의 관상이 제왕의 상이 타고 나셨음을 보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흥선군은 또다시 물었죠.

그럼 언제 보위에 오르시겠는가?

 

그러자 박유붕은 앞으로 4년 후에 보위에 오르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흥선군은 농담으로

관상을 봐줬으니 복채를 줘야 하는데 내가 지금 궁도령 신세라 어찌할 수가 없구나.

 

라고 하니 박유붕은

제 말대로 될 터이니 4년 후에 보위에 오르시면 그때 복채를 받으러 오겠습니다.
왕이 될 상을 봐준 것이니 최소 3만 냥은 주셔야 합니다.

 

라고 하며 박유붕은 홀연히 사라졌죠.

 

하지만 흥선군 입장에서는 지나가는 후줄근한 왠 남자가 갑자기 와서 관상이니 왕이니 하는 어이없는 말만 하고 가니 그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4년 후인 1863년. 믿을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났죠.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이 철종의 뒤를 이어 고종으로 보위에 오른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비록 흥선군이 뒤에서 이런저런 모략을 많이 꾸몄던 것도 있지만 박유붕이 4년 전에 했던 말이 사실이 되어버린 것이었죠.

그리고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이 되어 조선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고종이 보위에 오르고 난 얼마 뒤 어느 날 흥선대원군에게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로 못 받은 복채를 받으러 온 박유붕이었죠.

 

박유붕을 반갑게 맞아들인 흥선대원군은 박유붕에게 물었습니다.

복채는 그때 말했던 3만 냥이면 되겠는가?

 

라고 하니 박유붕은

죽고 나서 신위에 현고학생부군이라고 쓰여질 것이 싫으니 대원군 마마께서 벼슬 하나 내려주시어 학생 신세만 면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했죠.

벼슬을 못한 남자는 죽어서 신위에 학생(學生)이라고 쓰는데 그게 싫으니 벼슬자리 하나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흥선대원군은 애초부터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곁에 두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에게 벼슬을 하나 내려주고 운현궁 바로 옆에 45칸의 대저택을 마련해 주었으며 수선교에서 돈암동에 이르는 넓은 땅도 내려 주었죠.

그야말로 엄청난 복채를 받은 박유붕이었습니다.

 

박유붕은 이때부터 출세 가도를 달리는데 언양현감에 제수되었다가 남양부사로 옮겼고 이후 여러 벼슬을 지내다 수사함이라는 정3품 당상관의 품계까지 받기에 이르렀죠.

관상가이자 점쟁이 치고는 유례없이 파격적인 벼슬자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박유붕에게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오랜 기간 동안 외척에 의해 왕권과 종묘사직이 흔들렸던 것을 생각해 외척이 힘이 그나마 작은 집안의 규수를 고종의 아내로 삼으려 한 것이었죠.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처가이던 여흥민씨의 민치록의 딸 자영을 점찍어 두고 있었고 박유붕을 불러 자영의 관상을 보도록 했습니다.

 

박유붕은 민자영의 관상을 본 후 흥선대원군에게

이분은 장차 자식을 많이 둘 수 없는 상이며 앞으로 대원군 마마의 앞길을 막을 상이니 다른 규수를 국모로 삼으시지요.

 

라고 말했죠.

하지만 박유붕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박유붕은 세 번에 걸쳐 반대를 했지만 흥선대원군은

내 며느리를 뽑는 거지 자네 며느리를 뽑는 거라던가.

 

라며 역정만 돌아왔죠.

하지만 민자영이 아니면 또다시 안동 김씨 집안의 여식이 중전에 오를 것이었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의 입장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중전으로는 흥선대원군의 뜻대로 민자영이 간택이 되었고 훗날 명성황후가 되는 민자영은 박유붕의 말대로 흥선대원군의 앞길을 막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박유붕이 내쳐지지는 않았지만 얼마 안 가 완전히 흥선대원군의 눈밖에 나는 사건이 벌어졌죠.

 

고종의 아내로 중전 민씨가 간택되었지만 둘의 사이는 아직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고종은 9살이나 연상인 궁녀 이씨를 굉장히 총애했었고 그 때문인지 중전과는 사이가 서먹서먹 했었죠.

중전 민씨는 고종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게 좋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인 이씨가 고종의 첫 아들인 완화군을 낳은 것이었죠.

첫 손자인 완화군을 너무나 이뻐한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완화군을 원자로 삼아 장차 세자로 삼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화군의 관상을 본 박유붕은 완화군의 명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선 원자로 삼으려 하는 것에 반대를 했죠.

 

이에 분노한 고종과 흥선대원군에 의해 박유붕은 모든 관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매몰차게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흥선대원군에게 버림받은 박유붕은 자신의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다가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박유붕의 죽음에 대해 적고 있는데요.

박유붕은 정확한 원인도 없이 죽고 말았다.
방바닥을 나뒹굴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며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죠.

그리고 그가 나머지 한쪽 눈도 지졌다는 기록도 있는데 흥선대원군에게 버림받은 뒤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관상을 보지 않기 위해 나머지 한쪽 눈마저 버리고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완화군은 그 이후 원자에 책봉될듯 했지만 중전 민씨 세력의 견제로 인해 결국 원자로 책봉이 되지는 못했고 박유붕의 말대로 완화군은 1880년 13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하죠.

 

조선 말의 관상가이자 점쟁이로써 그 능력만으로 최고의 권력자의 오른팔이 되고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다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던 박유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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