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찾아주지 않자 외로움에 사무쳐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찝쩍대다 결국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남자까지 건드린 소용박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조정에 피바람을 불러온 세조 하지만 그런 그도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여인이 한 명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덕중이었습니다.
세조가 보위에 오르기 전 수양대군이던 시절에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덕중이었죠.
덕중은 종의 신분이었지만 미모가 굉장히 빼어났고 몸매도 좋아 수양대군의 눈에 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덕중은 수양대군의 첩이 되었죠.
그렇게 수양대군은 훗날 세조가 되었고 그녀도 같이 궁으로 들어가 후궁의 첩지를 받게 되어 정3품 소용으로 봉해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계속해서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조 5년, 1459년에는 왕자인 아지(阿只)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지는 고작 5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되었죠.
덕중을 보면 아지가 생각나서였을까요?
자식을 먼저 보낸 이후로 덕중을 찾는 세조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덕중의 외로움은 더해지게 되었죠.
여종의 신분이었다가 임금의 후궁이 되어 온갖 호사와 권세를 누렸지만 궁안에서의 생활은 너무나도 답답하고 외로웠습니다.
매일 밤을 잠도 못 들어 뒤척이기 일쑤였죠.
그러던 어느 날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던 덕중의 마음에 한 명의 남자가 들어옵니다.
그는 내시 송중 이었죠.
내내 송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라만 보던 덕중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 송중에게 연애편지를 적었고 모두의 눈을 피해 몰래 송중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를 받은 송중은 굉장히 곤란한 처지에 처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의 후궁이 자신이 좋다며 구애를 해오니 어찌할 바를 몰랐죠.
그러다 이 일이 누구의 귀에 들어가거나 하면 둘 다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이일을 어떡하나 밤잠 설치며 고민하던 송중은 결국 그 서신을 가지고 세조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아뢰었죠.
송중의 말을 들은 세조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조는 덕중을 불러 말했죠.
너의 이 행동은 나를 능멸한 것이니 마땅히 극형으로 다스려야 하지만 오랫동안 나를 모신 정이 있기에 목숨을 거두지는 않겠다.
라고 하며 극형에 처할 정도의 중대한 일이었지만 그간의 정을 봐서 덕중을 살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벌은 받아야 하니 소용 첩지를 빼앗았고 그녀의 신분을 궁중에서 잔심부름 등을 하는 방자로 강등 시켜버렸죠.
그렇게 덕중은 신세한탄하며 궁에서 살아가다가 지나가던 한 남성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바로 귀성군 이준이었죠.
자신이 수양대군의 첩이 되기 전 사저에서 살 때 수양대군의 집에는 한명회 등과 같은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는데 그중에는 수양대군의 동생 임영대군도 있었고 임영대군의 아들인 귀성군 이준도 있었습니다.
귀성군 이준은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는데요.
그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 그의 잘생긴 외모에 대해서는 야사나 여러 기록에도 많이 등장했는데 그의 외모도 훤칠하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문무까지 겸비한 엄청난 인물이었죠.
그는 등준시무과에 급제 후 1467년 남이와 함께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관군의 총사령관이 되기도 했었고 난을 진압한 공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인 1468년에는 28세의 나이로 최연소 영의정에 임명되기도 한 어마어마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튼 허구한 날 수양대군의 집에 들락날락하던 이준은 덕중의 마음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사모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덕중은 후궁의 자리에서 방자로 신분까지 강등된 상황에서 정신 차리지 못하고 두 번째 스캔들을 일으키고야 말았는데 그것은 이준에게도 연애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굳이 따지고 보자면 그는 시동생의 아들이었고 그녀에게는 시조카였던 사이였으며 조카에게 큰어머니가 널 좋아해라며 편지 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궁녀들을 시켜 몰래 그 서신을 평소 친했던 내시 최호와 김중호에게 전달했고 그들 또한 아무도 모르게 귀성군 이준에게 러브레터를 전달했죠.
지난밤 봄비가 내리더니 연못(경회루)에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군께서 이 아름다운 연꽃을 보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죄를 지은 몸으로 방자로써 고되게 살고 있습니다.
군께서는 어찌 지내고 계십니까?
오랫동안 뵙지 못하여 저는 마음이 몹시 심란합니다.
군께서 잠저(수양대군시절 집)에 오실 때면 매양 관옥 같은 얼굴을 훔쳐보면서 연모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심처(궁궐)에 있는 처지라 감히 구구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으나 죽어도 연모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라는 내용의 엄청난 연애편지를 보낸 것이었죠.
큰어머니 뻘인 세조의 후궁에게 이 기가 막힌 편지를 받은 이준은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 이 소식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엄청난 서신이었죠.
이준은 곧바로 아버지 임영대군에게 그 편지를 보여줬고 역시 깜짝 놀란 임영대군은 곧장 그 서신을 들고 형님인 세조에게 찾아갔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들은 세조는 격분했죠 먼저 이 서신을 전달했던 궁녀 둘과 내시 둘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들은 그냥 문안편지 인줄 알고 서신을 전달했다면서 잡아떼었지만 몰랐다고 하기에는 너무 사안이 심각했죠.
그러다 결국 세조는 두 명의 궁녀와 내시 최호와 김중호에게 장형을 내리게 되었고 곤장을 맞아 네 명 모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덕중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세조는 일단 그녀를 하옥 시켰고 대신들과 종친들을 불러서 의논했죠.
처음에 세조는 자신의 아이까지 낳았고 평생 자신을 보필했던 여자이니 약한 처벌을 내리려 했지만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논의를 한 다음 날인 1465년 음력 9월 5일 교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리고 대신들은 귀성군 이준도 국문을 통해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조는 귀성군에게 의심스러운 점은 하나도 없다며 받아들이지는 않았죠.
그리고 며칠 만에 5명이나 되는 사람이 극형에 처해져 사망하자 신하들과 백성들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반역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자들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죄수들에게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충격받았을 귀성군을 위해서도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였죠.
게다가 그날 저녁에는 종친들과 대신들을 경회루로 불러 성대한 연회도 베풀었습니다.
실록에는 이날 세조가 술에 잔뜩 취해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죠.
자신이 예전에 아끼던 덕중을 자신의 명으로 처형했던 것을 떨쳐내기 위한 춤사위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왕의 여인이 다른 남자를 사모해 조정에 피바람이 불었던 덕중이 연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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