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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간통 사건 탐구

어우동.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조선시대 간통의 대명사

by 사탐과탐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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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며 희대의 간통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어우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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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의 아버지는 승문원지사 박윤창, 어머니는 정귀덕이라는 인물이었고 양반 가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연산군일기에 어우동을 구마라고 기록한 걸로 보면 아마 어우동의 본명은 박구마 였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죠.

 

하지만 간통 사건을 일으킨 이후 가문에서 파문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같이 어울려 통하다'라는 뜻이자 자신의 별명이던 어우동을 이름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어우동은 양반집에서 태어나 잘 자라다가 효령대군의 (세종대왕의 형) 손자였던 태강수 이동과 결혼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동은 어우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이동은 연경비라는 기생에게 푹 빠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우동을 내쫓아버리기 위해 그녀를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함은 바로 이동이 은장을 집으로 불러 은 그릇을 만들게 했는데 그 은장이랑 아내가 눈이 맞아서 간통을 했다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은장과의 간통 사건은 사실이 아닌 걸로 처리가 되었지만 어우동은 남편에게 그냥 버림받았습니다.

 

(영화 어우동:주인없는 꽃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친정으로 돌아와 상심하고 있던 어우동에게 한 여종이 소곤소곤 말했죠.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계속 상심해 계실 겁니까.
'오종련' 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직업도 좋고 외모도 훤칠하니 잘생겼습니다.
마님께서 허락만 해주시면 제가 가서 그를 불러오겠사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종의 말에 솔깃한 어우동은 그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신명나게 놀아보자 라고 생각했는지 그를 데려오라 했고 그날 밤 여종이 데려온 '오종련'을 어우동이 맞이하며 그녀의 스펙타클한 간통 스토리가 시작되었죠.

 

오종련과의 뜨밤을 보내고 나서 눈이 뜨였던 것일까요.

이름도 현비라 고치고 기생인 척 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우동은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는 전남편 이동과 5촌 사이였던 방산수 이난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난은 세종대왕의 손자로 인물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인데요.

그는 어우동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려 같이 뜨밤을 보냈죠.

어우동도 이난과의 궁합이 너무나도 좋았는지 이난의 이름을 자신의 팔에 문신으로 새겨 넣기도 했죠.

 

(영화 어우동:주인없는 꽃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단옷날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쁘게 화장을 하고 그네를 뛰고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던 수산수 이기가 어우동의 모습을 보고 또 눈이 돌아갔죠.

수산수 이기 또한 전남편 이동의 8촌 친척 사이였죠.

이기는 어우동의 여종에게 "어느 댁 여인이신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종은 "내금위 무관의 첩입니다" 라며 거짓말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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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은 이기를 만나기 전에 구전이라는 내금위 소속 무관의 옆집에 살았었는데요.

어느 날 어우동이 마당에 앉아있는걸 본 구전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그대로 담을 뛰어넘어 서로 끌어안더니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죠.

 

그래서 여종은 어우동이 내금위의 첩이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기는 왕족이니 내금위 무관의 첩 정도는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우동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죠.

그러고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남양의 지방 관청의 한 사무실을 비우라 이른 뒤 그곳에 둘이서 들어가 정을 통했죠.

 

아무튼 태강수 이동, 방산수 이난, 수산수 이기 모두 서로 친족이었는데 한 여자와 잠자리를 한 것이죠.

 

그리고 전의감 생도였던 '박강창'은 노비를 파는 일로 어우동의 집에 오게 되었는데 어우동이 박강창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온갖 추파를 날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 추파에 넘어간 박강창 역시 어우동과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게다가 어우동은 박강창을 너무 사랑했는지 한쪽 팔에 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어우동이 남자를 엄청 밝힌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영화 어우동:주인없는 꽃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말이 사실인지 궁금했던 이근지라는 남자는 어우동에게 찾아가 방산수 이난의 심부름을 왔다고 뻥을 쳤고 눈이 맞은 둘은 냉큼 그녀의 방에 들어가 서로 어우러져 정을 통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어우동에 매우 관심이 있었던 남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홍찬이라는 남자였는데요.

과거시험에 합격해 어사화를 쓰고 유가행렬을 하던 중 방산수 이난의 집에서 그 행렬을 구경하던 어우동과 눈이 마주쳤고 그 뒤부터 마음속에 어우동을 품고 있었던 것이죠.

 

마음에 상대를 품고 있었던 건 홍찬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우동도 젊고 똑똑한 홍찬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 그를 보게 된 어우동은 일부러 그의 얼굴에 소매 끝자락을 스쳤고 홍찬은 그대로 어우동 집으로 흘러들어가 둘은 불타는 사랑을 나누기도 했죠.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성현의 용재총화에 따르면 어우동의 최측근이던 여종 역시 매우 이뻤다고 합니다.

 

그 여종은 밤마다 예쁘게 꾸미고 거리에 나가서는 잘생긴 남자 두 명을 꼬셔서 한 명은 주인인 어우동의 방에 넣어주고 또 한 명은 자신과 다른 방에 들어가 놀아났죠.

 

게다가 어쩔 때는 길거리에 둘이 앉아서 지나가는 남자들을 보며 여종이 "쟤는 키가 크다, 쟤는 코가 크네" 하며 평가하기도 하고 "어느 집 사내는 젊기도 하고 거시기도 크다고 하던데 주인님께 바칠만 합니다" 라고 하면

어우동은 "그럼 걔는 내가 맡을 테니 다른 놈은 너에게 주겠다" 라고 하는 등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웃어재끼기도 했죠.

 

또 그녀와 관계를 가졌던 남자 중에는 이승언이라는 생원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던 어우동을 보게 되었고 첫눈에 반해버렸죠.

그녀의 차림새를 보고 기생이라고 착각했던 이승언은 어우동의 여종을 붙잡더니 지방에서 올라온 기생이냐고 물었습니다.

여종은 곧바로 기생이 맞다고 대답했죠.

그 이야기를 들은 어우동은 씨익 웃으며 곧바로 자신의 집까지 걸어갔는데 이승언 또한 그녀를 졸졸 따라와 방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그 둘도 뜨밤을 보내게 되었죠.

 

어우동은 관계하는 남자들의 신분도 전혀 따지지 않았습니다.

어우동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감의향이라는 사람은 아전이었죠.

 

(영화 어우동:주인없는 꽃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감의향은 어우동에게 온갖 희롱을 하며 그녀를 따라다녔는데 어우동도 싫지 않았는지 그를 집안까지 끌어들였습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 둘은 얼른 방에 들어가 사랑을 나눴는데 어우동은 감의향 또한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등에다가 감의향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고 하죠.

 

방산수 이난과 박강창에 이어 세 번째로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 남자네요.

 

그 이후로도 어우동의 남성 집착은 계속 되었습니다.

 

허구한 날 새벽에 어딘가에 나갔다가 날이 다 밝아서야 돌아오던 어우동을 옆집의 노비였던 '지거비'는 계속해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죠.

 

하루는 또 예쁘게 차려입고 밖으로 나가던 어우동을 가로막으며 "부인께선 어찌하여 새벽마다 밖을 나가시오? 내가 소문을 내면 큰 벌을 받게 될 것이오"라며 협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짜로 소문이 크게 나면 큰 처벌을 받을까 두려웠던 어우동은 지거비의 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안으로 불러들여 지거비와도 동침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게도 긴 꼬리는 결국 밟히고 말았습니다.

허구한 날 어우동 집에 들락날락 거리던 방산수 이난이 문제가 되기 시작해 이난은 의금부에 잡혀들어가기에 이르렀죠.

 

옥에 갇혀있던 이난은 어우동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냈는데

예전에 유감동은 많은 남자들과 간통을 했던 여자였지만 간통했던 바를 숨기지 않고 모두 이야기하니 중죄를 면했었다 너도 다 이야기하면 될 것이다.

 

라고 적혀있던 편지였죠.

 

얼마 안 가 바로 잡혀들어온 어우동은 이난의 말을 듣고 스스로 자신과 관계를 맺어온 남자들을 줄줄이 불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수많은 남자들 이외에도 이조판서 어유소, 대사헌 노공필, 부호군 김세적등의 고위급 관리들 이름에서부터 김칭, 김휘, 정숙지 등의 하급 관리까지 수많은 남자들의 이름이 나왔죠.

 

하지만 성종은 어우동이 죄를 면하려고 대신들의 이름을 마구 떠들어댄 것이라며 여러 관리들은 단 한차례 심문만 한 후 모두 풀어 주었습니다.

 

조정에서도 이 희대의 간통 사건에 난리가 났습니다.

유배를 보내야 한다, 장 100대를 때려야 한다, 사형을 시켜야 한다 등 수많은 의견으로 나뉘었지만 성종의 최종 판결은 사형으로 내려졌죠.

그리고 판결이 내려지고 약 한 달 후 교수형에 처해져 그녀의 불같던 생애는 결국 그렇게 마무리 되게 됩니다.

 

(영화 어우동:주인없는 꽃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선시대에서 손에 꼽히는 희대의 간통 사건으로 알려진 어우동 사건은 성종실록에 그녀와 간통을 했다고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17명이나 되었고 그 외에 기록이 안된 사람은 더 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 한 점은 어우동과 간통한 17명의 남자들 중에서 사형에 처해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죠.

 

조선 성종 시대에 있었던 희대의 간통 사건 어우동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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