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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간통 사건 탐구

애강. 비참한 최후를 맞은 패륜 노답 세 자매의 셋째 이야기

by 사탐과탐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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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결혼에 의해 노나라에 시집와서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불륜남을 왕위에 올리려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패륜 노답 세 자매의 셋째인 애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노답 패륜 세 자매 중 막내 애강의 이야기입니다.

큰언니 선강은 시아버지가 남편이 되고 의붓아들의 아내가 되는 등 골 때리는 개족보를 만들었고 문강 또한 자신의 오빠와 근친상간을 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남자와 간통을 하는 희대의 색녀였죠.

애강 또한 언니 둘에 뒤지지 않고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언니인 문강은 노나라의 환공에게 시집을 갔었는데 애강도 자신의 조카였던 노장공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주선자도 바로 언니인 문강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춘추전국시대에는 각 나라끼리 서로 견제를 하기 위해 결혼을 통해 서로 화친을 맺고 했었는데 노나라와 제나라 또한 이렇게 결혼을 통한 화친이 자주 이루어졌기에 가계도가 뒤죽박죽인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아무튼 언니 문강은 제나라와 노나라 간의 우호를 위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아들에게 동생을 소개시켜준 셈이었는데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사람치고는 두나라의 우호를 위한다니 좀 의아하긴 하네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문강이 자신의 오빠 제양공과 간통한 것을 남편 노환공에게 들켜버렸고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공자 팽생을 시켜 노환공을 때려죽인 일이 있었죠.

 

노환공은 노장공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를 죽인 원수 제양공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애강은 절세 미녀임에도 불구하고 노장공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며 서로 정을 통하지 않아서 그들에게는 자식도 없었죠.

노장공은 다른 여자들과는 자식을 낳기는 했습니다.

 

노장공의 총애를 받지 못한 애강은 남자가 그리워졌고 그러다 노장공의 이복동생이자 시동생인 공자 경보와 간통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다 훗날 노장공이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되었고 태자였던 반(般)이 군주가 되었죠.

 

애강은 자신과 간통하던 경보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되었고 경보와 함께 임금을 모시던 어인인 낙(樂)에게 시켜 반을 죽이게 되었죠.

 

반이 공자 시절 어인 낙이 여자를 희롱한 일로 그를 두들겨 팬 적이 있었는데 노장공은 낙이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장사였기에 반이 낙을 처벌만 하고 죽이지 않은 것을 걱정했었습니다.

 

그러다 반이 왕이 되었고 외가인 당씨 집에 있을 때 애강과 경보가 낙을 부추겨 의붓아들이자 왕이던 반을 시해한 것이죠.

 

그런데 반이 죽고 나서 반의 아우이자 조카인 계(啓)가 노민공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경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왕 자리를 노리고 있었죠.

 

기원전 660년 어느 날, 노민공의 스승이 복의(卜齮)의 땅을 빼앗자 애강과 경보는 이번엔 복의를 구슬려 노민공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노민공 또한 애강의 의붓아들이었죠.

 

애강은 두 명의 의붓아들을 죽이면서까지 경보를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공자였던 계우가 제나라로 가서 제환공과 맹약을 맺었었는데 경보는 제환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애강과 함께 주나라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제환공은 이 시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노민공의 아우인 신(申)을 다음 왕으로 옹립했고 그는 노희공이 되었죠.

 

노희공은 주나라에 당장 형의 원수인 애강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애강은 제환공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주나라는 제나라의 눈치를 보며 애강을 내주지 않았죠.

 

그로부터 1년 후인 기원전 659년 7월, 그러다 결국 제환공은 직접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동생인 애강을 주나라에서 제나라로 압송했죠.

 

제환공은 노나라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무리 동생이라도 남자에 빠져 여러 왕들을 죽이는데 동참하며 반란을 저지른 죄를 물어 그녀를 참수형에 처하였죠.

 

그리고 그녀의 시신을 다시 노나라로 돌려보내 저잣거리에 효수했고 10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거리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다음 해인 기원전 658년 5월이 되어서야 노희공의 간청을 받아들여 애강의 안장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 문강과 애강 자매 때문에 훗날 제나라 출신 여자들은 문란하다는 이야기가 나돌게 되기도 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게다가 잘 먹고 잘살다 간 언니들 선강과 문강과는 달리 애강은 오빠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강대국 제나라의 왕녀였던 덕분에 노장공의 부인으로써 종묘에 안치되었다고 하죠.

 

정략결혼에 의해 노나라에 시집와서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불륜남을 왕위에 올리려고 의붓아들들까지 죽였으며 결국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애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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