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의 딸이었던 이구지는 조선시대 최고의 음란한 여인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왕족 출신이었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성종 6년 12월 22일. 전라도 광주에서 한 사노비가 명문가의 여인과 간통한 후 말을 타고 다니고 비단옷을 입었으며 행실이 오만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헌부에서 그 일을 듣고 조사를 해보았는데 그 명문가의 여인은 남편과 사별하여 혼자 살던 이구지라는 여자였고 사노비는 천례라는 이름의 종이었죠.
하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 일은 점점 커졌고 심각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의 실마리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양녕대군에까지 이르는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죠.
굉장히 쿨하고 프리한 성격이었던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은 본처에게서 3남 4녀를 두었고 여러 첩에게서 6남 10녀를 낳았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이구지라는 여인 또한 양녕대군의 딸이었죠.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을 때 낳은 딸이라서 직위는 현주(왕세자의 서녀에게 주던 정삼품의 봉작)였지만 실록과 족보에는 그녀의 작위가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현주란 세자의 서녀를 칭하는데 세자가 왕이 되면 옹주가 되는 것이죠.
이구지의 어머니는 신분이 미천했던 양녕대군의 여종이었습니다.
이구지는 나이가 들어서 별제 권덕영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에게 심한 냉대를 받으며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낙마하는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이구지는 졸지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나서부터 이구지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천례라는 남자 종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딸을 낳고선 도망 갔다고 했죠.
천례의 딸 이름은 '준비'였습니다.
그런데 이구지가 한낱 남자 종일뿐인 천례와 그의 딸 준비를 자기 딸 챙기듯 잘 챙겼다고 합니다.
또한 천례도 어느 날부터는 비단옷을 입고 다녔고 밖에 나갈 때도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었죠.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는 '천례와 이구지는 서로 동침을 했고 그로 인해 생긴 여자아이는 천례의 딸 준비이다' 라고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의심을 사기에 정황이 너무나도 충분했죠.
이런 기가 막힌 소문은 퍼지는 것도 순식간인데 조정에까지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여인이 자신의 종과의 관계로 인해 자식까지 낳았다는 초유의 사태에 조정은 한바탕 난리가 났죠.
사헌부 장령 허계는 성종에게 "신분제도를 뒤흔들 수도 있는 금지된 관계이니 두 사람을 붙잡아 국문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죠.
이에 왕족의 종친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났죠.
그것은 왕실에 관련된 불미스러운 소문을 입에 담은 허계를 파직하고 처벌하자는 결론이었습니다.
당연히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들은 난리를 치며 들고 일어났습니다.
관리들은
이구지는 태종의 손녀지만 남자 종인 천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 소문이 한양에 파다하게 퍼져 있어서 허계는 그것을 조사한 것일 뿐인데 그런 사헌부 관리를 벌주라는 종친들의 주장은 억지다
라는 이유였죠.
하지만 왕실의 입장은 신하들과 달랐습니다.
'그 일은 그냥 집안의 일이니 우리 알아서 할께' 라는 입장이었죠.
성종은 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들춰낸 자체를 불쾌해했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무엇인가" 라며 물었지만
사헌부의 허계는
이것은 왕실 문제가 아닙니다.
사대부의 여인들도 남자 종과 연애를 하면 당사자들 모두 사형에 처하는데 더군다나 왕실에서는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라며 물러서질 않았죠
성종은 단호히 이구지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허계 또한 물러서지 않으며 계속해서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문제 삼자 성종은 대비의 언문 교서를 신하들에게 읽어 주었는데 그 내용은
'장령 허계는 왕실의 불미스러운 일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서 파다하게 퍼지게 한 죄를 물어 그의 관직을 거둔다' 였죠.
그 교서를 듣자마자 신하들의 반대의 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습니다.
'허계는 풍속을 바로 잡으려고 신하로써 옳은 말만 했는데 그를 파직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언로를 막지 마라!' 라면서 말이죠.
성종은 더 이상 듣지 않고 대전을 나와버렸습니다.
이후로도 천례와 이구지를 탄핵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성종은 소문만 가지고 그럴 수는 없다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죠.
그렇게 이구지에 대한 일은 잊혀지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천례의 딸이라고 알려진 '준비'가 시집을 갈 때 또 한 번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며 한양이 떠들썩 해졌죠.
준비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이구지는 준비의 남편이 될 사람의 집안에 '준비는 양녕대군의 외손녀이고 왕실의 자손이다' 라고 이야기해버린 것이었죠.
준비가 자신의 딸이라고 인정해 버린 셈이었습니다.
이 말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김종직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이구지의 말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자들이 속속 잡혀들어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어떤 여자는 이구지가 딸을 낳았는데 그때 애를 본인이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또한 사헌부에서는 천례를 잡아와 고문을 하며 추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천례는 왕실의 여자와 간통한 적이 없다며 심한 고문에도 끝까지 버텼죠.
그러자 의금부에서는 그에게 의심스러운 말을 들었던 동네 사람들을 불러 대질심문까지 했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니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 강도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천례는 지독한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옥에서 죽어버렸죠.
자신이 사랑한 여인, 이구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성종은 갑자기 이구지의 사사(賜死)에 대해 의논하자면서 신하들을 불렀는데 이미 여러 증언이나 명백한 증거가 나온 터라 이구지와 천례의 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천례는 이미 사망해서 벌을 줄 수 없었기에 이구지 처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죠.
그녀는 왕의 친족이어서 관례상 고문으로 자백을 받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자백도 받지 않았는데 사형을 내릴 수도 없었습니다.
종친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문종의 외손자 정미수는 "이구지는 태종의 손녀이기도 하고 국가에 관련된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용서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조용히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듣고 있던 성종은 마침내 입을 열었죠.
권덕영의 아내 이 씨가 자기 종과 간통해 딸을 낳아 기르기까지 한 증거가 확실하다. 다만 이 씨가 자백하지 않을 뿐이다. 이 씨는 종친의 딸이어서 고문하기가 미안하지만 법으로 다스리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니 사약을 내려 죽이라
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하여 이구지는 결국 1489년 3월 7일. 성종의 명으로 사약을 마시고 죽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왕실 족보에서 이름이 빠져버렸고 음란하고 방탕한 여자를 기록한 '자녀안(恣女案)'에 이름이 오르게 되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되었죠.
하지만 천례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준비는 이미 출가한 상태라서 처벌받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성종은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를 따르지 않던 여인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했는데 강상죄를 범한 어우동을 죽이고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내린 후였기에 더 이상 이구지에 대한 처벌을 미룰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남자들이 일으키는 간통 사건은 굉장히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여인들의 간통 사건에 비해서는 크게 다뤄지지는 않았죠.
하지만 여인의 간통사건이자 심지어 왕족이던 양녕대군의 서녀 이구지와 남자 종의 간통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성종은 그저 음란한 여인과 종의 금지된 간통 사건으로만 치부해 버렸고 그로 인해 이구지는 조선시대 내내 음란한 여자 최고봉으로 매도되었죠.
게다가 왕족이라는 이유였기 때문일까요?
이구지의 존재는 철저히 묻히게 되었습니다.
유감동, 어우동, 사방지 등의 음란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훗날 문학작품이나 영화 또는 연극 등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지만 이구지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까지 알지 못하다가 1970년대 민족문화 추진회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국역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려지게 되었죠.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종인 신분의 남자를 사랑한 죄밖에 없었지만 신분제라는 나쁜 제도로 인해 희생된 한 여인일 뿐이 아니었을까요.
조선시대 최고의 음란한 여인의 대명사로 알려진 양녕대군의 딸이었던 이구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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