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강에 이은 둘째 문강은 패륜 노답 세 자매 중에서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이복오빠와 눈 맞아 시도 때도 없이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이죠.
패륜 노답 세 자매 중 둘째인 문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강 또한 선강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었는데 예쁘기도 하고 글도 잘 쓰며 말할 때마다 문장이 아름답다 하여 문강이라 했다고 합니다.
문강이 점점 몸도 마음도 성숙해지면서 제나라의 호색가이던 세자 제아(훗날 제양공)와 눈이 맞았는데 세자 제아는 문강의 이복오빠였죠.
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라며 오빠와 눈이 맞은 문강은 그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불타는 관계를 맺었습니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그렇게 오빠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던 문강이 시집갈 나이가 되어가자 제나라에서는 그녀를 처음엔 정나라 태자인 홀과 결혼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정나라 태자였던 홀이 이 결혼을 파투 내버렸죠.
다들 이 결혼을 파투 낸 홀을 의아해했는데 그는 “나의 미래는 나에게 달렸을 뿐, 대국의 힘을 얻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라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는 훗날 왕이 되었지만 결국 쫓겨나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신세가 되어버리죠.
그래서 홀은 자신의 명예만 앞세우려다가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제나라의 결혼 제안을 거절한 결정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엄청 욕먹었다 하죠.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노나라의 공자 휘가 제나라를 방문합니다.
이유는 바로 문강을 아버지인 노환공의 부인으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문강은 기원전 709년 노나라의 환공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집가기 전날 밤, 제나라 세자이자 오빠인 제아(훗날의 제양공)와 마지막 뜨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만나자고 서로 약속했죠.
문강이 노나라로 시집가고 3년 후인 기원전 706년, 노환공과의 사이에서 아들 동을 낳았죠.
그러던 어느 날 문강이 시집간 지 15년이 되던 해에 노환공은 제양공의 초청을 받고 제나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을 가면 부모가 죽은 후에 나 친정에 갈수 있다는 당시의 예법을 깨고 노환공은 문강을 데리고 제나라로 갔죠.
그렇게 15년 만에 만난 문강과 제양공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몰래 만나 묵은 회포라도 풀듯 오랜만에 뜨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환공이 이 둘의 사이를 알아버렸고 둘이서 잠자리까지 한 것도 눈치 채버린것이었죠.
격분한 노환공은 얼른 노나라로 돌아가 군사를 출병해 이 더러운 인간들을 다 때려잡을 생각으로 마차를 타고 노나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노환공과의 전쟁이 두려웠던 제양공은 얼른 아들 팽성을 노환공에게 보내 다 오해라고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좀 하자 했죠.
그래서 노환공은 팽성과 술 한잔하며 이야기하다 술에 잔뜩 취하게 되었는데 팽성은 그를 부축하는 척하다가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여버렸습니다.
제양공의 모략에 빠져 노환공은 노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이었죠.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며 초대해서 제나라까지 기껏 갔더니 죽어서 돌아온 노환공을 본 아들 동은 격분하며 제양공에게 따졌습니다.
그러자 제양공은 "내가 노환공을 그렇게 잘 대접했는데, 갑자기 팽생이 이 어이없는 짓거리를 한 거다."라고 하며 아들 팽성을 죽여버립니다.
그렇게 노환공 살해 사건을 아들을 죽임으로써 무마해버렸죠.
그리고 이 일로 환공이 죽었기 때문에 환공의 아들인 세자 동이 뒤를 이어 노장공이 되었습니다.
남편을 죽이고 과부가 된 문강은 시가인 노나라에도 무서워서 가질 못하고 친정인 제나라에도 가지 못한 채 노나라와 제나라 중간에서 살게 되었죠.
문강과 제양공. 이 골 때리는 이복남매 둘은 이제 자신들의 근친상간 불륜 행동을 가로막는 것 따윈 없어지자 열심히 만나재끼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692년 겨울에 문강은 위나라, 노나라, 제나라 3국의 경계 지역인 '작' 땅에서 제양공을 만나 또다시 뜨거운 관계를 맺었고.
기원전 690년 2월에는 '축구' 땅에서 기원전 689년 여름에는 '군중'에서 만나 뜨밤을 보내기도 했죠.
그리고 또 2년 후 봄에는 '방'에서 제양공을 만나 또다시 사랑을 나누었고 이 해에는 서로 못 참았었는지 겨울에 '곡'에서 또 만나 뜨밤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문강은 아들인 노장공과 동생인 애강의 결혼을 주선해서 둘을 결혼 시키기도 했죠.
노장공 입장에서는 이모와 결혼한 셈이었고 문강의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동생인 것이었죠.
언니 선강의 이은 또 하나의 개족보 탄생이었습니다.
또한 문강은 제양공과 그런 사이로 지내면서도 자신이 머무르던 곳에서 다른 여러 남자들과도 온갖 욕정을 불살랐고 나이가 들어서는 노나라로 돌아와 궁중 의원이던 태의와도 관계를 맺으며 그렇게 평생을 성욕에 몸을 바치며 살다 기원전 673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문강은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평생 이복 오빠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욕정에 사로잡힌 악녀였죠.
언니 선강은 위나라를 자신은 노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늙어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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