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희대의 간통 사건 탐구

임복비 사건. 세종대왕의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교형을 당한 여인

by 사탐과탐 2021. 9. 9.
반응형
임복비는 양반집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억울한 일을 당하며 불쌍하게 살아오다가 결국엔 억울한 죽음까지 맞이했는데요.
그녀의 억울한 사정을 다 알고 있던 세종대왕 마저도 그녀를 교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하게 되는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여인. '임복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현감의 벼슬을 지낸 '임수산'의 딸이었죠.

임복비가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버지의 첩이었던 '소근'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아버지와 소근이 함께 낳은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오빠이던 '어연'과도 함께 살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이복오빠 어연이 어머니인 소근과 짜고 임복비에게 술을 먹였는데 엄청 만취한 임복비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이복오빠이던 어연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연의 강간으로 인해 임복비가 임신을 해버린 것이었죠.

임복비는 억울해 소근에게 하소연했지만 소근은 어연과 함께 같이 살면서 허물없이 지내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임복비는 숙부이던 임덕산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지만 숙부 임덕산 역시 "너네 아버지가 어연을 잘못 가르친 탓이지. 내가 어떻게 하겠냐." 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누구도 강간당한 피해자인 임복비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임덕산은 조카였던 임복비가 시집갈 때가 되자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인 걸 알면서도 서산에 살던 박아생 이라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었죠.

 

그러자 임복비는 아이를 낳고 난 후에 시집가겠다고 숙부에게 말했지만 숙부는 그 말을 무시한 채 결혼을 시켜버렸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끝내고 임복비는 남편인 박아생을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죠.

하지만 임복비는 출산이 임박해 있었기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남편 박아생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데요.

 

자신이 몸이 안 좋으니 숙부의 집으로 돌아가서 병이 나은 뒤 시집으로 가겠다고 청했고 이에 남편도 승낙하자 그렇게 그녀는 다시 숙부 임덕산의 집으로 갔습니다.

다시 돌아온 조카를 본 임덕산은 그녀를 매몰차게 대했는데요.

왜 다시 돌아왔냐며 아이를 낳든지 말든지 이제 시집을 갔으니 시댁에서 해라 라고 하는 것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결혼 전에 임신을 했다는 걸 시댁에서 알면 난리가 날걸 알고 있었던 임복비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자신을 임신시켰던 어연과 함께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안 가 붙잡히게 되었는데요.

임복비는 남편을 버리고 내연남과 함께 도망을 쳤다는 이유로 교형에 처하라는 판결이 나왔죠.

그러자 임복비의 종은 어연에게 복비가 강간당했다는 사실과 여러 자초지종들을 고해 바쳤고 주인인 임복비가 사형을 당하지 않도록 부탁했습니다.

 

세종은 이 이야기를 듣고 대신들과 의논을 하게 되었는데요.

의견이 둘로 갈리게 되었죠.

임복비가 비록 강간을 당했지만 나중에는 서로 화해 했으니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둘이 화해는 했지만 강간을 당한건 맞으니 사형을 시킬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죠.

 

(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자 세종은 "그러면 임복비를 사형을 면해주고 먼 곳의 관비로 보내라" 라고 명했지만 형조판서 정연이 다시 "절개를 지키지 않은 임복비가 사형을 면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다시 아뢰었고 결국 세종은 그의 뜻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임복비는 강간당하고 가해자의 아이를 임신해버렸으며 억지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가 어쩔 수 없이 도망갔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임복비 아버지의 첩이던 소근도 교형에 처해졌고 복비를 강간했던 어연은 참형에 처해졌습니다.

임복비의 숙부이던 임덕산은 도망을 가버렸는데요.

훗날 결국 잡혀 4군 6진중 한 곳인 여연으로 가서 평생을 그곳에서 군인으로 살게 되었죠.

 

결국 가해자와 방관자였던 소근, 어연, 임덕산은 처벌받아 마땅했던 것 같지만 피해자인 임복비가 교형에 처해서 죽게 된 건 참 아쉬운 판결인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이던 세종대왕이 임복비의 사정을 알고도 교형에 처할 것을 허락한 것도 믿기지 않네요.

 

조선시대 때 억울한 죽음을 맞은 여인. 임복비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