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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간통 사건 탐구

카사노바. 멋있고 매력적인 바람둥이가 아닌 매춘과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힌 사기꾼

by 사탐과탐 2021.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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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는 멋있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었고 그런 바람둥이들을 카사노바 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매력적이고 멋있기는 커녕 사기꾼에 쓰레기 짓을 하며 살았던 인물인데요.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여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

라는 명언을 남긴 남자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은 여자를 위해 태어난 남자라고 말하고 다녔죠.

오늘 이야기할 이 사람은 희대의 바람둥이, 최고의 정력가, 최악의 난봉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카사노바' 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돈으로 여자의 성을 착취한 호색한에 불과했고 그는 평생 유럽 전역을 도망쳐 다니며 온갖 사기를 친 사기꾼에 불과했죠.

 

현재 카사노바 하면 매력적인 바람둥이라는 닉네임이 바로 떠오르지만 알고 보면 그에게 적용하기엔 굉장히 아까울 정도 입니다.

도대체 카사노바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요?

 

(카사노바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의 풀네임은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입니다.

1725년 4월 2일,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죠.

그의 아버지는 배우였고 어머니는 꽤 유명한 성악가였습니다.

그렇다보니 부족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 주세페 카사노바가 36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해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죠.

 

그러던 그가 15세가 되던 해에 성직자 알비세 말리피에로를 만났고 그렇게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공부머리가 좀 있었는지 파도바 대학에 다니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스페인어, 영어를 배웠고 고전문학, 신학, 법학, 자연과학, 의학, 화학, 수학, 통계학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지식을 동시에 쌓았죠.

그는 17세의 나이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을 정도의 영재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교 춤과 펜싱, 승마 등과 카드놀이 등을 익혔고 이것들은 나중에 귀족들과 어울릴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죠.

하지만 그가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여신도들이나 수녀들에게 작업을 치는 등 성직자의 신분으로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가 한 못된 짓 중에서는 좀 안타까운 사건도 있는데요.

 

어느 날 그가 부임한 지방 교구의 한 귀족은 총명한 카사노바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한 적이 있었죠.

성직자이기도 하고 똑똑한 카사노바를 전적으로 믿었는지 17세 딸이 카사노바와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도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던 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딸을 임신시키고 도망쳐 버렸고 귀족 가문의 아가씨였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그녀는 매춘부로 전락해 버렸죠.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병에 걸려 거지꼴이던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카사노바는 그녀에게 돈을 얼마 쥐여 주고 그렇게 또 헤어지게 되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자신의 자서전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슬픈 결말 정도로 기록해 두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그가 여러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니자 교회에서는 그를 쫓아내 버렸죠.

 

그러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박하던 성직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속 편하게 미쳐 날뛰기 시작했는데요.

그리고 동시에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도망자 인생 또한 시작되었습니다.

카사노바의 자서전에 의하면 122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인데요.

여자들과 만나기 전에는 굴을 엄청 까먹고 데이트를 하러 갔다고 하죠.

 

그는 어릴 적 공부한 여러 가지 박학다식한 면과 사교술을 내세워 화려한 언변으로 여자들을 꼬시며 다녔는데요.

어느 날 베네치아의 귀족이던 마테오 조반니 브라가딘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죠.

돈도 많고 가문도 빵빵하며 심지어 말빨도 수려하다 보니 그에게 홀린 수많은 여자들을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였습니다.

 

자신의 화려한 말빨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많은 여자들을 홀리기도 했지만 그의 여성편력 중에는 금전이 오간 경우가 더 많았죠.

한마디로 매춘을 했다는 것인데요.

 

친구네 집에서 식사를 하던 카사노바가 집으로 찾아와 구걸을 하는 가난한 모녀를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그 모녀에게 접근해 돈을 주고 딸과 관계를 가졌다는 기록도 있고 가난한 가정교사에게는 자신 집의 방을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주는 대신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누가 봐도 매춘을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카사노바 스스로는 "나는 매춘은 하지 않았고 애인관계에서 성관계를 가진 후 금화를 선물로 줬다." 라고 기록해 놓았지만 애인과의 관계 후 돈을 줬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그는 자신이 한 쓰레기 짓을 뻔뻔하게 자서전에 죄다 기록해 놓았는데요.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가족 유랑 공연단을 만난 적이 있죠.

단장을 하던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여동생 둘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받기로 했던 공연비를 받지 못해 다른 도시로 갈 경비가 없어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큰딸에 관심이 있던 카사노바는 선뜻 자신이 빌린 마차에 이들을 태워주기로 했고 그 대가로 큰딸과의 하룻밤을 제시했죠.

다른 방도가 없었던 어머니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결국 큰딸과 카사노바는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카사노바는 큰딸에게 금화 한닢을 선물했는데요.

 

언니의 금화가 부러웠던 작은딸이 자신도 금화를 갖고 싶다고 하자 그렇게 작은 딸과도 하룻밤을 보내고 금화를 선물했다고 하죠.

충격적인 건 그 자매의 나이는 12살, 11살이었다고 합니다.

가족 유랑 공연단은 마차 한번 잘못 빌려탔다가 카사노바에 의해 온갖 성적 착취를 당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러시아에서는 17살짜리 소녀의 가족들에게 100루블을 주며 그 소녀를 노예로 부렸는데 구타, 학대, 성폭행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고 떳떳이 자신의 자서전에 기록해 놓았죠.

이런 부분만 봐도 도덕이나 윤리라는 나사가 빠진 그리고 돈 몇 푼으로 불쌍한 사람들의 성을 착취하는 인간쓰레기 같은 느낌이 다분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 외에 더 심한 일도 있었는데요.

베네치아에서는 귀족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의 주도하에 방탕한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그 방탕한 놀이 때문에 그는 결국 감방에도 들어가게 되는데요.

혐의는 '명문 귀족의 젊은이들을 방탕한 놀이에 끌어들여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라는 것이었죠.

 

그 놀이라는게 들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데요.

그들은 예쁘고 매력적인 유부녀를 타겟으로 삼고 비밀스러운 활동을 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 조직 중 하나인 10인회의 치안요원으로 변장해 자신들의 얼굴을 가린 뒤 그 유부녀의 집으로 쳐들어 가죠.

 

그렇게 10인회의 이름으로 체포를 선언하고 부인과 남편의 눈을 가린 채 서로 다른 마차에 태워 납치를 합니다.

도중에 남편은 풀어주는데 이 사실을 발설하면 다시 체포한다며 협박하고 부인은 자신들의 은신처로 끌고 가 집단으로 성폭행을 했죠.

 

그렇게 며칠간 여자를 감금한 채로 자신들의 욕정을 채운 뒤 또다시 협박을 하고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부부는 눈이 가려진 채로 끌려갔으니 그들의 은신처 위치를 알지 못했고 진짜 10인회의 요원이라 생각해 고발조차 하지 못했다고 하죠.

이런 납치 강간 사건을 한낱 놀이로 치부한게 어이가 없을 정도네요.

 

근데 웃긴 건 카사노바만 잡혀가고 공범이던 귀족 가문의 젊은 남자들은 잡혀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어이없고 뻔뻔한 건 이러한 끔찍한 짓을 했다고 자서전에 다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5년형을 선고받아 감방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는 타인에게 잘못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그는 탈옥을 결심했고 간수들을 매수해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지붕과 성벽을 통해 1756년에 탈옥에 성공했죠.

탈옥한 그는 프랑스 파리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란한 행위는 멈추질 않았죠.

 

프랑스에 도착한 후 그는 친구의 애인 집을 방문했는데요.

친구와 친구 애인이 함께 방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는 친구 애인의 여동생에게 3프랑을 줄 테니 알몸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 여동생은 고작 13살이었는데요.

나중에는 그 여동생의 알몸을 누드화로 그려 돈을 받고 팔기도 했고 부유한 귀족을 찾아가 그 소녀를 애인으로 삼으라며 소개시켜주고 소개비를 받기도 했죠.

 

또한 통계학에도 능통했던 그는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국영 복권을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버는 족족 여자들을 꼬시는데 엄청난 돈을 쏟아붓다가 결국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업에도 실패를 해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고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또다시 유럽의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버리죠.

 

이후로 영국, 독일, 러시아, 폴란드, 스페인을 전전하며 살다가 그가 스페인에서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베네치아의 고위 관리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출판업을 하며 먹고 살다가 또다시 사고를 쳐 베네치아에서 또 도망을 치고 마는데 사실 그는 여성들과의 음란한 관계나 매춘 같은 것도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가 유럽 전역을 떠돌고 살았던 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사기' 였습니다.

 

그는 나쁜 짓을 하더라도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그렇다 보니 평생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돈은 사기를 쳐서 획득했죠.

그런데 대담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지만 돈이 없어서 사기 쳤다고 스스로 자서전에 기록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금술을 할 수 있다고 하며 수은의 양을 늘려주겠다는 사기를 자주 쳐 돈을 벌었고 프랑스에서는 한 공작부인의 가족들에게 사기치는걸 들켜 맞아 죽을뻔한 적도 있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는 프랑스의 한 공작부인에게 죽으면 다시 환생시켜주겠다는 사기를 쳤는데요.

임신한 자신의 애인을 데려와 공작부인이 죽으면 그 영혼이 이 뱃속의 태아에게 들어갈 것이고 그러면 공작부인은 다시 이 아이로 환생할 것이라고 했죠.

 

그래서 공작부인의 모든 재산을 이 뱃속의 아이에게 상속하면 환생하고 난 후에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하며 공작부인의 전 재산을 사기쳐 먹으려고 했지만 그의 사기행각을 알게 된 그녀의 친척들이 그를 때려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프랑스에서 도망치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베네치아에서 잘 살다가 또 사고를 쳐 고향을 떠나온 카사노바는 보헤미아의 발트슈타인 백작 소유의 성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는데요.

그는 "나는 철학자로 살았고 기독교도로써 죽는다" 라는 유언을 남긴 채 1798년 6월 4일,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지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지만 여성들과의 문제와 사기, 빚 때문에 여러 번 감옥을 들락날락 거렸고 또한 문란한 생활 때문에 매독이나 성병에도 걸려 자주 치료를 받으며 40대 중반부터는 성기능에 장애가 오기도 했죠.

게다가 여러 나라에서는 추방 당하기도 했으며 평생을 도망자 신세로 허무하기도 하고 피로한 삶을 살았죠.

그리고 그는 충분히 총명하고 똑똑한 당시 지식인이자 교양인이었지만 여러 분야의 얕은 지식만 가득했지 한 분야에서 업적이라 불릴만한 성취를 이뤄내지는 못했습니다.

 

희대의 바람둥이, 최고의 정력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알고 보면 어디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말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네요.

쾌락에만 몸을 맡겨 평생을 허비하는 삶을 살았던 카사노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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