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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제안대군. 바보 연기 한 왕자 vs 진짜 바보인 왕자

by 사탐과탐 202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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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의 아들로서 왕위 승계 1위였지만 나이가 너무 어릴 때 아버지 예종이 돌아가시고 나서 왕의 적자에서 대군으로 신분이 수직 하강 한 왕자 제안대군입니다.
하지만 그는 역대급 바보 왕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정말 바보였을까요 아니면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연기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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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조선 초 예종의 둘째 아들이던 제안대군입니다.

예종의 나이 12세, 장순왕후 한씨의 나이 15세에 첫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예종의 적장자 인성대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성대군은 불과 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그 뒤로 중전에게도, 후궁에게도 아들이 없던 예종에게 드디어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제안대군이었죠.

그야말로 귀하디 귀한 적자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는 예종의 후사를 이을 귀한 아들이었지만 제안대군이 불과 3살밖에 안되는 나이였을 때 아버지인 예종이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 정희왕후는 제안대군이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사촌 형이던 자을산군을 다음 왕으로 지목했고 제안대군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원자 신분에서 그냥 대군의 신분으로 수직 하락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결국 사촌 형 자을산군은 성종이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잘 된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안대군은 어리석다거나 멍청했다는 기록이 꽤 많았기 때문인데요.

그는 한문도 제대로 깨우치질 못했는지 성종에게 상소문을 올릴 때 한글로 글을 써 올렸는데 그 때문에 승정원에서 그 상소를 다시 한문으로 옮겨 적어 성종에게 올렸다 하죠.

 

하지만 조선시대 종친들은 어차피 공부해 봤자 벼슬을 할 수 없었고 똑똑하다고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역모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는 일은 흔했다고는 하지만 한문 상소를 적지 못하는 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긴 하네요.

 

그리고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안대군이 14세 때 간질이 있던 아내 김씨가 너무나도 싫었죠.

그래서 엄마인 안순왕후를 찾아가 이혼시켜달라고 조르고 졸라 결국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재혼을 했죠.

그런데 어이없는 점은 재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두 번째 부인 박씨와 이혼하고 첫 번째 부인 김씨와 재결합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부인 박씨와 이혼할 명분이 없자 스스로 꾀를 내었는데 '금음물', '내음금' 이라는 여종 두 명에게 아내를 유혹하라고 시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여종들의 유혹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여종들을 혼내버렸죠.

그러자 그는 아내가 잘 때 그냥 여종 두 명을 아내의 방으로 밀어 넣어 버렸고 그날 그 여자 세명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아내가 여종들과 놀아났으니 이혼해야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씨는 자신이 모함을 받았다고 억울하다며 난리를 치자 결국 여종들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여종들은 '제안대군이 박씨를 유혹하라고 명령을 했다' 라는 자백을 했죠.

결국 여종들은 자백 후 곤장을 맞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고 그와 박씨의 이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제안대군의 주작임이 밝혀지자 그는 곧장 엄마인 안순왕후를 찾아갔습니다.

그러고는 또 징징대며 이혼시켜달라고 엄마를 졸랐죠.

결국에는 안순왕후도 그의 징징댐에 이골이 났기에 성종을 찾아가 "며느리 박씨가 버르장머리가 없다" 라는 핑계를 대며 이혼을 윤허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종은 왕위 계승 1위였던 제안대군을 밀어내고 보위에 오른 처지라 항상 제안대군과 숙모인 안순왕후에게 마음의 빚을 안고 있었죠.

그렇지만 성종은 '박씨에게 죄가 없는데 어떻게 이혼을 시키냐'라고 하다가 마지못해 이혼을 허락했고 결국 제안대군과 박씨는 그렇게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박씨는 화병이 났는지 얼마 안 가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그러고 나서 성종은 제안대군에게 세 번째 부인을 소개해 주려고 했으나 제안대군의 어이없는 요구에 또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그 요구는 바로 전처인 김씨와 재결합해 주지 않으면 평생 혼자 살겠다며 엄포를 놓았던 것이었죠.

 

그러자 성종은 어이없다는 듯이 "네가 예전에 김씨가 너무 싫다고 해서 이혼시켜 준거 아니냐 왜 행동을 미친년 널뛰듯이 하는 것이냐"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안대군은 "난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김씨랑 재결합 안 시켜주면 혼자 살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했었죠.

그러자 결국 성종도 전처 김씨와의 재결합을 허락해 주게 됩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 모든 일이 10대 중반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부인 부인 해대는 제안대군에게 단 한 명의 자식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성종은 제안대군 이후로 예종의 후사가 없을 것을 염려해 한 가지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제안대군에게 남녀관계를 알게 해주는 자에게 상을 내리겠다" 라는 명을 내렸죠.

그러자 한 궁녀가 해보겠다며 나섰습니다.

 

그 궁녀는 밤에 제안대군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가 자는 틈을 타 방에 들어갔고 자고 있던 제안대군의 옆에 누워 거시기를 더듬었죠.

그러자 아무 문제 없이 거시기가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궁녀는 몸을 돌려 제안대군의 위로 올라가 서로 맞추어 보았는데 그때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깬 제안대군은 큰소리로 당장 물을 가져오라 명했죠.

물을 가져다주니 거시기를 씻으면서 "더럽다! 더럽다!"라며 소리쳤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 일화에 대해 명종 때의 학자이자 야사집 <패관잡기>를 쓴 어숙권은 "남녀 관계가 인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남녀의 이 행위를 죽을 때까지 더럽다 여기고 하지 않았으니

실로 바보가 아닐 수 없다" 라며 제안대군의 어리석음을 욕하기도 했죠.

 

또한 <패관잡기>에는 제안대군에 대한 다른 에피소드도 적어놓았는데요.

어느 날 제안대군은 문턱에 걸 터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지나가는 거지를 보고 종에게 말하기를 "아니 쌀이 없으면 꿀떡의 찌꺼기를 먹으면 될 것이지 않냐?" 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소변을 보던 여종의 생식기를 보고는 오리 둥지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죠.

그런 그의 어리숙한 성품 덕분이었을까요?

조선시대에서 가장 심한 피바람이 불었던 때인 연산군과 중종 때에도 '멍청해서 왕위를 위협하지 않을 것 같은 왕실 어른 1위'로 뽑히며 여러 왕들에게 왕실 어른으로서 잘 대접받으며 잘 먹고 잘 살았죠.

 

그러다 병에 걸려 앓아 눕게 되었고 발에 종기까지 났으며 이에 중종은 의관을 보내 치료하게 했지만 결국 치료를 하지 못해 중종 20년인 1525년 12월. 60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고 난 뒤 받은 시호가 영효(靈孝)인데요.

'영(靈)'자는 '어지럽지만 해를 끼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어머니인 안순왕후에게는 더없는 효자였기에 시호에 '효(孝)'자도 쓰인 것이죠.

시호의 뜻을 적당히 해석하지만 '어리석지만 착한 효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훗날 제안대군의 이런 어리석음은 모두 연기였다는 설도 많습니다.

예종의 적자이던 제안대군은 왕권에 가장 위협이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을 하며 성종의 왕좌에 관심이 없고 그게 뭔지도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정통성을 내세워 역모를 꾀하던 대신들의 눈에도 들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평소에는 멍청해 보였지만 엄청나게 복잡해서 멀쩡한 사람도 실수 없이 하기 어려웠던 왕실의 예법을 따라야 할 때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제안대군은 악기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었는데 음률에 정통한 자들도 모두 굴복할 정도였다고 하죠.

심지어 그는 집안의 여종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여종들의 실력도 출중해 연산군 때 그 여종들을 차출해 가기도 했습니다.

 

세조의 후궁 '덕중이 연서 사건'에서도 언급되었던 귀성군 이준은 너무나도 완벽했던 나머지 역모로 엮이는 바람에 유배를 가서 죽게 되었죠.

당시 13살의 나이로 그 모습을 보았던 제안대군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모든 것이 연기였다면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여담으로 연산군을 홀려 자신의 치마폭에 넣고 구워삶았던 장녹수는 원래 제안대군 집의 노비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멍청해서 왕위를 위협하지 않을 것 같은 왕실 어른 1위', '어리석지만 착한 효자' 제안대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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