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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빙애. 사도세자의 광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여인

by 사탐과탐 202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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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빙애를 보고 첫눈에 반해 후궁으로 삼았는데요.
그렇게 서로 많이 사랑하였으나 그녀는 사도세자의 광증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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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아실만한 조선의 역사 중에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바로 사도세자 이선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사랑했던 빙애라는 여인이죠.

 

사도세자의 아내이던 혜경궁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가까이한 여자들은 많지만 잠시만 그렇게 대하시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자식을 낳은 나인에게도 털끝만큼도 더 봐주는 일이 없었는데 빙애에게는 그렇게 대수롭게 대하시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사도세자 이선이 총애한 후궁이었죠.

 

하지만 빙애는 훗날 너무나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녀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빙애의 성은 박씨이고, 할아버지였던 숙종의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의 침방나인이었죠.

어느 날 사도세자 이선은 대비전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빙애를 처음 보게 되었고 첫눈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왕실에선 웃어른의 나인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에 빙애를 후궁으로 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죠.

 

(드라마 이산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이선은 그녀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면서 그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들이려 했지만 영조 또한 이를 허락하지 않았죠.

 

그러던 중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의 처소로 달려가 빙애를 강제로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잠자리를 가지며 후궁으로 삼게 되었지만 이일은 아버지인 영조에게는 비밀로 했죠.

또한 아랫사람들 또한 입단속을 시켰으며 동생이던 화완옹주를 협박해 그녀의 집에 빙애를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비밀로 할 수는 없었고 어느새 그 사실이 새어나가 영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죠.

 

인원왕후가 죽어 국상 중이던 기간에 심지어 할머니 처소의 나인을 강제로 범했다는 사실은 영조를 굉장히 분노하게 했습니다.

이에 영조는 당장에 빙애를 궁 밖으로 내치려고 했는데 이선은 영조를 막아섰죠.

그러고는 빙애를 후궁으로 삼아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아버지 영조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영조 또한 한 성깔 하던 인물이라 절대 안 된다 반대하였고 그러자 이선은 궁내의 우물에 몸을 던져버렸죠.

 

그러자 즉각 내시들이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 죽을뻔한 이선을 구해냈습니다.

목숨을 걸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얻으려 했던 것이죠.

그렇게까지 하니 영조도 결국에는 허락을 해줬고 빙애를 특별 상궁으로 임명해 종6품 수칙(守則)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사랑을 나누며 1남 1녀의 자식을 얻게 되었죠.

 

(드라마 이산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빙애가 후궁이 된 이후로 혜경궁 홍씨가 도맡아 해오던 이선의 옷을 입히는 일은

빙애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선은 의대증이라는 정신병이 있었죠.

의대란 왕이나 세자, 왕비 등이 입는 옷을 말하는데요.

옷을 입을 때마다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굉장한 불안 증세를 보이는 그런 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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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선은 옷을 입힐 때마다 발작 증세를 보이며 미쳐 날뛰었는데 옷을 찢어버리기도 하고 주변의 있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기도 했죠.

혜경궁 홍씨도 그의 옷을 입힐 때마다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기에 그를 매우 두려워했었습니다.

 

그 험난한 일을 이제 빙애가 하게 되었는데 이선이 주위 사람을 두들겨 팰 때 그녀는 이런 광기 어린 폭력을 온몸으로 막으며 아랫사람을 지켜주던 정 많은 여인이기도 했고 이러한 과정 중에 그 무서운 이선에게 싫은 소리를 할 정도로 강직한 품성을 가진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용포 입는 것을 거부하던 이선은 또다시 광기에 사로잡혀 주위에 있던 내시와 궁녀들을 막 두들겨 패기 시작했는데 이날도 역시 빙애는 그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하지만 이미 눈 돌아간 이선의 눈에는 자신이 사랑하던 빙애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영화 사도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대로 그는 자신을 막아선 빙애에게 잔인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 맛이 간 이선은 빙애와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연못에 던져 버렸죠.

다행히도 궁녀들이 연못에 뛰어들어 빠진 아이를 건져내 살았지만 그의 무자비한 폭행을 무방비로 당하던 빙애는 결국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사랑한다며 목숨까지 버리려 했던 남자에게 무참히 맞아 죽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일은 모두에게 비밀로 붙여져 영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나경언에 의해 이일이 영조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자신의 자식을 낳은 사랑하는 여인까지 때려죽인 일을 벌인 사실에 영조는 큰 충격을 받았고 영조 또한 강직하고 선한 그녀의 성품을 좋게 보고 있었기에 즉시 이선을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처음에는 우물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후궁으로 삼아달라던 여인을 어떻게 네 손으로 때려죽일 수가 있느냐?
그 사람의 성품이 강직했었던걸 생각하면 분명히 너의 이상한 행실을 간언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 분명하다!

 

라며 그의 광기 어린 행동을 꾸짖었죠.

 

(영화 사도 -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선은 처음엔 억울하다고 울고 불며 대꾸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에게 광증이 있어 그렇게 됐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다 훗날 이선 자신도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었죠.

 

훗날 대한 제국이 건국된 1899년 9월 1일.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어 장종(莊宗)의 묘호를 받으면서 궁녀 신분이었던 빙애도 종1품 귀인(貴人)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또한 2년 뒤인 1901년에는 정1품 빈으로 또 추증되어 경빈(景嬪)의 작호를 받아 경빈 박씨가 되었죠.

 

사도세자 이선이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했던 후궁 빙애는 결국 사랑하던 남자의 손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여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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