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각시놀이는 백정 여인을 양민들이 괴롭히는 인권 유린을 하는 그런 풍습이었는데요.
이 악습이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과연 그 사실이 맞을까요?
혹시 백정각시놀이라고 아시나요?
박경리 작가님이 지은 소설인 <토지>에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단옷날이나 동네잔치 또는 마을 행사 같은 날에 남자 여러 명이 백정여자를 끌고 와 남들이 다보는 앞에서 옷을 찢어버리고 엎드리게 한 다음 소처럼 등에 올라타서 끌고 다니다 그 백정여자의 남편이 고기를 내어주면 그때서야 풀어주곤 했다는 것인데 이걸 백정각시놀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백정의 부인이나 딸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학대해 성적 수치심을 주는 인권유린 풍습인 것이죠.
이런 잔혹하고 끔찍한 풍습이 과연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백정각시놀이라는 풍습은 조선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죠.
다만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경상북도 예천에서는 매년 7월 농부들이 풍악놀이를 하며 백정여자 한 사람을 잡아놓고 풀어주는 대가로 고기나 소머리를 요구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 백정여자를 집단으로 폭행했었다는 기록이 있긴 있는데요.
그러나 이런 악습 역시 형평사 운동을 전개하며 철폐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백정 여자의 옷을 찢고 엎드리게 한 다음 등에 타고 다니던 그런 행위는 없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예천에서 있었던 일 또한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일반 백성들과 천민이라 불리던 백정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갈등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조선시대 양민들은 고기를 살 때 말고는 백정과 말 한마디 섞기조차 싫어했고 거기다 백정이 마을 잔치나 행사에는 감히 참여할수 조차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백정이 비록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행사에 참여했다가 백정각시놀이를 당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고 또한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던 그런 풍습이란 것은 더더욱 아닌 것입니다.
일단 저 이야기가 나온 박경리 작가님의 소설 토지도 역사적 사료가 되는 책이 아니라 창작 소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과거 조선시대에 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어느 곳에서도 이 풍습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있지 않죠.
거기다가 일제강점기 초기의 신문이나 공문서 등과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풍습이나 관습 등을 조사한 기록에도 이러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백정각시놀이는 조선시대부터 계속해서 행해진 전통적인 풍습이었다' 라는 사료나 구체적인 증거 및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또한 이런 잔인한 풍습은 조선이 열등했다는 것과 미개했다는걸 잘 보여주는 사례로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실 여부를 충분히 의심할만하죠.
당시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조선의 법 제도는 봉건적 제도라며 맹비난하면서 근대적 법 제도를 도입해 일반 양민들의 사법 불만을 풀어주는척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정각시놀이 만큼 조선을 깎아내리면서 자신들을 치켜세울 수 있는 좋은 사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만에 하나 실제 존재했다 하더라도 이 백정각시놀이를 한 피의자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내렸겠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이 사건으로 인해 판결이 난 경우는 찾을 수 없죠.
신분제가 사라지고 나서 사회 전체가 대 전환기를 겪으며 백정들과 부대껴 살기를 싫어하던 양인들과 백정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했고 그때 양인들이 백정 여자들을 폭행한 사건은 있었지만 이 또한 얼마 안 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백정 각시놀이라는 풍습은 없었습니다.
설사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전통이라거나 매년 해오던 풍습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즉 백정 각시놀이는 고려장과 비슷하게 원래는 없었던 일이지만 인터넷이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면서 부풀려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오랜 역사 중 인권유린이 발생한 경우는 많은데요.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존재하지도 않았던 백정각시놀이나 고려장 같은 일들은 제대로 알고 욕이든 비판이든 해야 하고 잘못된 사실이라면 제대로 알고 그것을 알리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일제강점기 시절 존재했다고 여겨지던 인권유린 풍습, 백정각시놀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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