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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서달 사건. 조선시대 최악의 권력형 비리 사건

by 사탐과탐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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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에 있던 최고위층 양반집안의 자제인 서달이 일으킨 갑질 사태가 터집니다.
이로 인해 조선 최악의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까지 일이 커져버립니다.

 

 

조선 초 엄청난 권력형 비리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최고위층 양반의 갑질 사건이었죠.

 

그런데 이 사건에 연루된 고관대작들이 모든 사건을 덮으려다.

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이 이상함을 느껴 전면 재조사를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황희, 맹사성 등의 정승들과 형조판서, 형조참판, 형조좌랑, 대사헌 등 총 14여 명의 높은 벼슬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처벌을 받은 대형 사건이었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난리가 났던 것일까요?

당시에 '서달'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진 최상위 계층의 금수저인 인물이었고 워낙 귀하게 자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지라 너무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싸가지 또한 겁나게 없었죠.

 

그의 목은 항상 빳빳했고 성격은 거칠고 거만했습니다.

어느 날 서달은 어머니를 모시고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즐겨 찾는 온양 온천으로

휴양을 떠나게 되었죠.

그리고 휴양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던 중 신창현(현재의 아산시)을 지날 때였습니다.

서달과 어머니의 행렬의 옆을 어떤 고을의 아전들이 지나쳐 간 것이죠.

 

서달은 한낱 아전 주제에 감히 자신과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가지 않은 것을 괘씸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은 이런 대우 받을 그런 사람이 아니라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하인들에게 방금 지나간 아전 두 명을 당장 잡아오라 명했습니다.

사실 서달은 그냥 금수저 양반집 아들일 뿐이지 왕족이나 관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전들이 굳이 누군지도 모르는 서달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없었죠.

 

아무튼 하인들은 두 아전을 뒤쫓았지만 잡지는 못했고 그들이 갔을 것이라 추측되는 마을을 이 잡듯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나가는 다른 아전을 발견한 하인들은 그를 붙잡아 두 명의 아전 어디 갔냐고 물었죠.

당연히 그 두 명이 누군지도 알 길이 없는 다른 아전은 모른다고 했는데 서달의 하인들은 그가 두 명의 아전을 숨겨준다고 생각하고 줄로 묶은 뒤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백주 대낮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니 그 장면을 목격한 '표운평' 이라는 사람이 달려가

사람을 두들겨 패고 있던 하인들을 말리며 '당신들이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사람을 패는 것이냐?'라며 그들에게 소리쳤죠.

그러자 하인들은 소리치던 표운평에게 달려들어 이제는 그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두들겨 맞은 표운평은 하인들에 의해 서달의 앞으로 질질 끌려가게 되었죠.

 

서달은 끌려온 표운평에게 아까 인사를 안 하고 간 2명의 아전이 누군지 말하라고 다그치기 시작했고 당연히 그 둘이 누군지 알 길이 없던 표운평은 모른다고만 말하자 서달은 또다시 하인들에게 더 심한 매질을 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이 맞은 표운평은 결국 다음날 죽어버리고 말았죠.

 

이 일이 벌어지자 하루아침에 억울하게 남편을 잃은 표운평의 아내는 관아에 달려가 이 일을 고발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을 보고받은 대사헌 '조계생'은 조사관 '이수강'과 '조순'에게 사건을 조사하라 명했죠.

 

얼마 뒤 사건의 보고서를 건네받은 조계생은, 형조에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이제 보고서를 본 형조에서 서달의 처벌할 것이고 무고한 백성들에게 폭행을 하고 심지어 한 명은 죽이기까지 한 서달은 최고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는 큰 사건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사건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달의 아버지 '서선'은 서희의 11대손으로 태종 이방원과 동문수학한 사이였고 여러 고위급 벼슬을 두루 역임한 대단한 인물이었죠.

서선은 사건이 발생한 신창현의 현감 '곽규'와 조사관 이수강을 찾아가 사건을 조작해서 자신의 아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위이자 옆 고을의 현감이던 '노호'에게 부탁해 형조로 가던 조계생의 보고서를 중간에서 빼돌렸으며 동시에 표운평의 가족에게 찾아가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달의 장인도 사위의 구제를 위해 나서기 시작했는데요.

장인은 바로 조선 초 24년 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이라 일컬어지는 '황희' 였죠.

당시 우의정이었던 '맹사성'의 고향이 신창현이었는데요.

황희는 맹사성을 찾아가 표운평의 가족들과 합의를 할 수 있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맹사성은 신창현 현감 곽규에게 서신을 보냈고 표운평의 형 표만복을 한양으로 불러 돈을 찔러주며 합의를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이야기했죠.

 

또한 서달의 외척 중 한 명인 '강윤'도 가세해 표운평의 집안에 찾아가 돈을 건네며 합의를 도와달라고 회유했고 이미 맹사성에게 뇌물을 받아서 돌아온 표만복 또한 표운평의 아내에게 찾아가 회유와 협박을 했고 결국 표운평의 아내는 합의서를 써주게 되었죠.

 

합의서를 받자마자 사건의 조작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최초 조사관이었던 이수강과 조순은 1차 보고서의 내용을 완전히 뒤엎고 '표운평 살해 사건'은 서달의 하인 중 한 명인 '잉질종'이 주인에 대한 과잉충성을 보여 스스로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변질되어 버리죠.

 

1차 보고서와 전혀 다른 사건 조사 보고서를 받은 대사헌 조계생은 이상하다 생각해 다시 다른 조사관인 '윤환'과 '이운'에게 사건을 재조사를 시켰는데요.

하지만 이 둘도 역시 강윤, 이수강, 조순에게 설득되어 이들의 보고서도 2차 보고서와 같은 내용으로 조계생에게 보고되었죠.

그렇게 사건이 변질된 3차 보고서가 형조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형조좌랑 '안승선'은 이 사건의 보고서를 받고서도 바로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기 시작했죠.

7개월이나 되는 시간 동안 처리되지 않았던 이 사건은 뒤늦게 형조판서에게 보고 되었는데 최근 형조판서로 오른 사람은 바로 서달의 아버지 '서선' 이었습니다.

사건 처리에 시간을 끈 이유는 서선이 형조판서가 되기까지 기다렸던 것이죠.

 

그렇게 형조판서 서선은 형조참판이던 '신개'에게 이 사건을 넘겼고 서선의 뜻을 알고 있던 신개는 즉시 하인 '잉질종'을 잡아 옥에 가두고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그리고 최종 보고서가 세종에게 올가 가게 되었죠.

보고서를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세종은 직접 의금부에 이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사를 명했죠.

그러자 결국 이 사건의 진상은 낱낱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세종은 격분하여 이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처벌했는데요.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은 파면 시켰고, 형조판서 서선은 직첩을 회수해버렸으며 형조참판 신개, 형조좌랑 안숭선, 대사헌 조계생은 유배를 보내버렸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나머지 이수강, 조순, 이운, 윤환 등 조사관과 현감들은 곤장 100대를 맞고 벌금을 맞는 등 모두 강력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서달은 아버지 서선이 단 한 명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사형만 면하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해 곤장 100대에 3천 리 밖으로 귀양을 보내졌으며 벌금을 내는 처벌을 받게 되었죠.

 

이 일로 인해 황희와 맹사성의 명성에 크나큰 흠집이 생기게 되었고 자신의 할 일만 했을 뿐인 대사헌 조계생은 좀 억울한 면이 있어서 귀양 8개월 만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일명 '서달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권력을 이용해 힘없는 백성의 죽음을 무마하려 했던 최악의 비리사건이자 높은 관직에 있던 대신들이 한꺼번에 큰 처벌을 받은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이기도 했죠.

 

조선의 기득권, 양반에 의해 갑질을 넘어선 권력형 비리사건이 되어버린 '서달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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