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조선시대 왕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입맛이 다 달랐던 왕들의 수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궁중요리는 '한식의 끝판왕'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한식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죠
궁중음식은 조리기술이 뛰어난 주방 상궁과 대령숙수들이 각 고을에서 들어오는 제철 진상품으로 정성껏 만들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최고로 꼽혔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임금의 식사인 수라상은 반찬의 종류와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왕 혼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요즘에도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할 때면 '수라상에 올랐던'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는 만큼 당시의 왕들은 온갖 진귀한 조선의 요리들을 다 먹어봤을 것으로 짐작되죠
그렇다면 과연 조선의 왕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고기 마니아로 매끼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고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영계백숙을 가장 좋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죠
그가 고기를 그토록 좋아했던 것은 집안 내력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이성계는 여진과 몽골 등 육식을 자주 하는 이민족들과 부대끼며 살던 동북면 집안의 무장이며 아버지인 이방원 또한 틈만 나면 사냥을 나갔던 것으로 유명하죠
게다가 세종의 집안은 그가 어릴 때부터 부유했기 때문에 사가에 있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육식을 자주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런 세종도 거의 입을 대지 않는 고기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양고기였는데요
당시 조선땅에서는 양고기가 나오지 않아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 했는데 세종은 자신이 먹을 양고기를 수입할 돈이면 더 많은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며 이를 거부한 것이죠
조선역사상 최고의 폭군이라 불리는 연산군은 식탐이 무척 많았던 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특히 진귀한 음식에 집착했는데 그중에서도 꼬리 요리를 아주 좋아했다고 하죠
옛날부터 꼬리 요리 중에는 짜리 몽땅해서 딱히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 사슴 꼬리를 최고로 쳤는데 연산군이 가장 좋아했던 꼬리 역시 사슴 꼬리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연산군이 직접 각도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 사슴 꼬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진상하라고 독촉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인데요
뿐만 아니라 연산군은 왕실 주방을 관할하는 사옹원에 교지를 내려 음식 재료의 맛과 색깔을 잘 살펴서 만약 나쁜 것이 생기면 담당자를 가려내 문초를 하도록 시켰는데 만약 여섯 달 안에 세 번 이상 지적을 당하는 자가 있으면 이전에 아무리 뛰어난 실적을 올려 인사고과가 좋더라도 파면을 시켜버렸습니다
왕실에 올리는 음식 재료 하나 때문에 벼슬자리가 날아가버린 것이죠
그만큼 연산군은 좋은 음식과 진귀한 식품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했습니다
하루는 연산군이 수박이 먹고 싶었는지 중국으로 가는 사신에게 수박을 구해오라고 명령했는데 당시 사헌부의 고위 관리였던 김천령이 '먼 곳에 있는 물건을 억지로 가져오면 여기까지 오는 몇 달 동안 상해버릴 것이 분명하니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며 강력히 반대했죠
이에 앙심을 품은 연산군은 김천령이 죽은 지 1년이 지난 후에 그의 시체를 끌어내 부관참시하고 그의 자식들을 노비로 삼아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산군은 귤이 제철이 아닌 8월에 제주목사에게 명해 귤을 보내라고 억지를 부린 적도 있었는데 당시 제주도 주민들이 얼마나 시달렸으면 귤나무를 원수 나무라 부르며 베어버리거나 뿌리째 뽑아버렸다고 하네요
제15대 국왕인 광해군은 수라상에 잡채가 있어야 수저를 들 정도로 잡채를 좋아했다고 하죠
명종 시절 탄핵된 간신 이양의 손자인 이충은 광해군에게 맛있는 잡채를 만들어 바친 공으로 호조판서의 벼슬을 얻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매일 청와대에 음식을 배달하며 장관에 오른 셈인데 광해군은 이충의 집에서 음식이 와야만 식사를 시작했을 정도라고 하죠
당시의 기록을 보면 주위 사람들은 실력도 없으면서 음식을 바친 공으로 벼슬을 얻은 그를 '잡채 상서'라 불렀다고 합니다
19대 국왕인 숙종은 검은 색깔 음식을 보양식으로 즐겼다고 하죠
중병을 앓던 숙종이 오골계를 먹은 뒤 회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후부터 오골계나 흑염소, 검은깨, 검은콩 등을 자주 먹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말년에 평소 먹던 음식이 입에 물려 색다른 맛을 찾던 숙종은 어의 이시필이 연경에 갔을 때 받은 계란떡이 부드럽고 맛이 뛰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수라간에 명을 내려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들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빵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카스텔라였죠
당시 만들어낸 카스텔라는 똑같은 맛을 재현해내지는 못했지만 숙종은 그마저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21대 국왕인 영조는 여름이 되면 보리밥을 물에 말아먹을 정도로 서민적인 밥상을 즐겼는데 그중에서도 청포묵과 미나리, 숙주 등이 든 탕평채를 즐겨 먹었다고 하죠
영조와 탕평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썰이 있는데 1940년 쓰여진 조선요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영조가 신하들과 당파 간의 세력균형을 위해 추진한 탕평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 채소가 골고루 섞인 탕평채를 내놓으며 탕평책에 대해 설명했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썰은 청포묵에 고기와 나물을 섞어 만드는 탕평채라는 음식을 보고 정책의 이름을 탕평책이라고 정했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후자 쪽이 맞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영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는 평소 술과 담배를 즐겨한 탓인지 소화불량과 불면증, 발열 등으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어의의 권유를 받은 후부터 석류 인삼 물김치를 즐겨먹었다고 합니다
입맛이 없을 때는 전북의 순창 고추장 또한 즐겨 먹었다고 하죠
강화도에서 농민의 삶을 살다 왕이 된 철종은 메밀칼국수와 강화도의 특산물인 순무김치를 즐겨먹었으며 그 외에 시래깃국과 막걸리를 자주 찾았기 때문에 중전이 막걸리를 사가에서 구해왔다고 합니다
민비의 시해를 지켜봐야 했던 고종은 불면증으로 기나긴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야식을 자주 먹었는데 겨울에는 설렁탕과 온면을 여름에는 냉면을 즐겨먹었다고 하죠
다만 맵거나 짠 것을 잘 먹지 못해 냉면에는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미 국물에 편육과 배, 잣을 고명으로 얹어 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외에 야식과 함께 사이다와 식혜를 즐겨 마셨다고 하네요
또한 고종은 한국인 최초 커피 애호가라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 때 커피를 처음 접한이후 덕수궁에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을 짓고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다고 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은 차돌박이를 고아서 경단처럼 뭉쳐 조린 음식인 차돌조리개를 즐겨먹었다고 하죠
지금까지 조선의 왕들이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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