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 비참한 운명을 살다간 정종의 자식들 이야기 입니다
지난번에 저희 채널에서는 정종 이방과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젊을때는 아버지와 전장을 누비며 살다가 왕위에 오르고 동생에게 양위를 하고나서는 평생 놀러다니며 잘먹고 잘 살았던 인물이죠
그런데 그에게는 좀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 이죠
정종에게는 15명의 아들과, 8명의 딸이 있었는데 몇몇 자식들은 참 애매하고 비참한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오늘은 정종의 자식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정종의 정실부인은 바로 정안왕후 김씨였죠
정종은 두말 할 나위없는 애처가였기 때문에 서로 궁합도 잘 맞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둘 사이에 자식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죠
방금 말한 자식들은 모두 후궁들에게서 얻은 자식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정안왕후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겠지만 다른 후궁들에게 투기를 부리지 않고 남편 내조를 잘했다는 기록이 있을정도로 성품이 훌륭한 인물이었죠
하지만 정종도 후사를 생각했어야 했기에 후궁들을 들였는데요
정종이 아직 왕이 되기 이전에 유분이라는 사람의 셋째 딸을 첩으로 들이게 되었죠
그런데 그녀는 '반복해'라는 남자와 혼인을 했던 여자였습니다
이 반복해라는 인물은 고려 우왕이 사냥을 하던 도중 멧돼지가 달려들어 위험에 처했을때 구해주었던 일로 우왕의 수양아들이 된 인물이었는데요
그의 장인이 바로 당시 권력가이던 임견미였죠
그러다 그는 최영을 암살하려다 실패해 임견미 등과 함께 처형을 당했는데 고려시대에는 과부가 된 여인들의 재혼이 흔한일이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아내였던 유씨가 이방과의 첩이 된것입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유씨는 이방과와 떨어져 살게 되었는데 이방과가 정종으로 즉위한 이후, 충격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유씨의 친척이던 조박이라는 인물이 유씨가 아들과 함께 죽주라는곳에서 살고 있는데 그 아들이 사실 정종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것이죠
깜짝 놀란 정종은 일단 그들을 궁으로 데려오라 명했고 그렇게 유씨와 자신의 아들이라는 불노를 만나게 되었죠
별안간 왕의 첫째 아들이 갑툭튀 해버리니 조정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나는데 불노는 정종의 첫째 아들이니 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하들이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불노에게 원자라고 부르기까지 한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정종은 유씨를 가의궁주로 삼았고 아들 불노를 원자로 삼았죠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이 일들을 불편하게 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종의 동생 이방원이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위가 뜬금없이 나타나 정종의 아들이라며 주장하는 불노에게 갈것이 염려된 이방원 세력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어느날 밤 이방원의 심복이던 이숙번이 이방원을 찾아와 "우리가 목숨걸고 거사를 치른것은 공을 임금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근데 지금 원자라 일컫는 이가 궁에 들어왔으니 이 일을 빨리 처리 해야 합니다
저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머리 깎고 도망치면 되지만 공은 귀중한 몸이니 장차 어떻게 하실려고 그러십니까?" 라고 말한것이죠
그러자 이방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채 잠자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고 합니다
그러다 며칠후 정종은 수많은 신하와 종친들 앞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데요
원자로까지 삼았던 불노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며 유씨는 자신과 혼인할 당시 반복해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고 말한것입니다
임신한 여자와 혼인을 했다는건 스스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 될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모두에게 말해버렸고 이후 불노를 궁에서 내쫓아버리기까지 했죠
그리고 왕자와 왕실의 존엄을 더럽히는 일이니 그 누구도 다시는 불노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진짜 불노가 정종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지만 어쩌면 정종은 동생 이방원에게서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하죠
하지만 밖에서 함께 잘 살고 있던 가의궁주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진것인데요
궁에서 쫓겨난 아들과 생이별하게 되자 가의궁주는 바닥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주로 쫓겨난 불노는, 외할머니와 지내게 되었죠
이후 정종은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난 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1409년 갑자기 흉흉한 소문이 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상왕의 아들이라고 하는 불노가 나타나 궁을 나와 한양의 한 민가에 살고 있던 가의궁주를 찾아갔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소문은 사실이었고 불노가 한양에 온것입니다
이에 대신들은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며 떠들고 다니면서 민심을 어지럽히는 불노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는 상소가 빗발치게 되죠
그러자 태종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며 불노를 유배형에 처하면서 이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왕족을 사칭한 죄로 불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가 계속해서 올라왔지만 태종은 이를 모두 물리쳐버렸죠
그렇게 불노는 공주로 유배를 떠났다가 이후 스님이 되어 불가에 귀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종에게는 불노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자식이 한명 더 있었는데요
바로 그가 상왕시절 자신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기매라는 여인에게 홀딱 반해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던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기매가 굉장히 음란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실록에는 '기매가 항상 음란한 행동을 하므로 왕이 가끔 곤장을 때렸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죠
그런데 훗날 기매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지운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기매가 바람을 피운적이 있었기 때문에 정종은 지운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죠
기매는 끝까지 지운은 정종의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종은 기매와 지운이 먹고살수 있도록 보살펴주었죠
그러던 1417년, 기매가 또다시 큰 사고를 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내시 정사징과 또 바람을 피다 걸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정사징은 고려 공양왕때부터 내시로 살았는데 그는 왠지 내시같지 않다 라는 소문이 돌던 그런 인물이었죠
사실 정사징은 회안대군 이방간의 첩과 간통을 한적도 있었던 가짜 내시였고 그러다 상왕 정종의 첩인 기매와도 간통을 하다 걸린것이었습니다
정종은 이 사실을 알고 기매를 궁 밖으로 내쳐버렸고 정사징은 곧바로 도망쳤지만 얼마안가 붙잡혀 참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죠
또한 태종과 대신들은 이런 분란을 일으킨 기매도 처형을 하려 했지만 정종이 직접 태종을 찾아가 선처를 부탁해 목숨만은 건질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어머니 기매와 함께 내쳐진 지운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는데요
그는 승려가 된 이후로도 계속 왕자 행세를 하며 온갖 횡포를 일삼았는데 이는 결국 조정에 알려지게 되고 결국 지운은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상왕으로 물러났던 태종은 지운을 정종의 아들이라 생각했는지 그를 불쌍히 여겨 "먹고 살수 있도록 지원 해줄테니 앞으로 왕자라고 칭하지 말고 멀리 도망가 살아라" 라는 명을 내렸죠
그런데 지운은 풀려난 이후로도 계속 정종의 아들이라 말하며 여기저기서 왕자 대접 받으며 살아갔고 결국 다시 잡혀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종은 지운이 기매의 말만듣고 그런거니 한번 더 봐줄려고 했는데요
그러자 대신들은, 예전에 태종이 한번봐주고 멀리 도망가서 살아라고 했는데 얼마 안가서 또 이러니 이번에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찌 정종의 아들이 아니라는걸 믿겠습니까?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3일후 지운은 결국 처형 당하고 말았습니다
불노와 지운이 정종의 아들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지만 결국 정종에게 아들로 인정 받지 못한채 버림받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죠
그외에도 정종의 서장자이던 의평군 이원생은 정종의 첫째아들인 만큼 정통성 면에서 가장 높았는데요
그의 어머니는 숙의지씨 이고 고려말 무장이던 지윤의 딸이었습니다
만약 이성계가 이방석이 아닌 이방과를 세자로 정했다면 훗날 정종 이후로 왕이 되었을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것으로 예상되죠
하지만 야심 가득했던 숙부 정안군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아버지 정종이 왕이 되었지만 이미 모든 권력은 숙부인 정안군에게 있었고 결국 세자 자리를 빼앗기게 된 셈입니다
어찌보면 단종과 세조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죠
이후 그는 1422년 태종의 상중에 말을 타고 백관 앞을 지났다 하여 탄핵 당했고 1425년에는 태조 이성계의 도장을 베껴서 위조했다는 죄로 유배를 가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풀려나긴 했지만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죠
또 다른 정종의 자식 석보군 이복생은 태종의 상중에 기생들과 놀아나고 광대들을 모아놓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을 마신 죄로 원주로 귀양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풀려난 석보군은 온천에 간다고 해놓고 춘천으로가 또 다시 기생들과 놀아나고 사냥을 하는등의 일을 벌였는데 남들에게 자신을 형인 순평군이라고 속이는 짓까지 했죠
심지어 이때는 자신의 아버지 정종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파장을 낳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형을 사칭하기도 했고 왕을 속인 기군망상죄도 범한것이라 기본 처벌이 사형이었죠
하지만 왕실 종친이라고 하여 직첩을 회수하고 유배를 보내는것에 그쳤으며 사헌부에서는 계속해서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지만 세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왠지 정종은 마음대로 자식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한 힘없는 아버지 같은 느낌이네요.
지금까지 비참한 운명의 정종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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