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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IMF 외환위기. 대한민국 최악의 흑역사 국가 부도사태

by 사탐과탐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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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악의 흑역사 국가 부도사태 IMF 외환위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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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를 뜻하는 3저 호황의 시기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래없는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불리던 시절 이었죠

나라에는 일자리도 넘쳐났습니다

대기업이던 현대나 삼성의 입사 경쟁률도 6대1에 불과했을 정도였죠

 

당시엔 상고나 공고만 졸업해도 취업에는 큰 무리가 없었고 대학만 졸업하면 기업에서 굽신거리며 모셔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국민들 81%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차이도 그리 크지 않았던 시기였죠

 

또한 금리도 굉장히 높았는데요

기본적으로 금리가 두자리대이다 보니 통장에 돈을 넣어놓기만해도 돈이 복사가 되는 마법과 같은일이 벌어졌습니다

거기다가 경제호황이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는 것과 맞물리면서 자유롭게 해외여행도 다니고 해외 유학도 떠났으며 해외로가 쇼핑도 즐기는 등 굉장히 살기 좋은 시절이었던 것이죠

 

또한 젊은이들은 '집보다 차!' 라고 외치며 마이카 붐이 일어났고 그렇게 한국의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대한민국은 86년도에 열린 서울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88년도에는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93년도에는 대전 엑스포를 열면서 경제 뿐만아니라 국제적 위상도 크게 오르고 있었죠

거기다가 얼마후 국민소득 만달러까지 달성했으며 1996년 12월 12일에는 29번째 OECD 회원국이 되면서 더이상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 아닌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잘 나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한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뉴스가 보도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총 빚이 1530억 달러라는 보도였죠

이에 사람들은 '수출이 잘되지 않았었나?' 하면서 의아해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9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었지 90년대 중반부터는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경상수지가 흑자가 되려면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았어야 하고 수출이 높으려면 원화의 가치가 낮았어야 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80년대 말 이후 계속된 호황으로인해 원화의 가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수출이 줄수밖에 없었고 수출이 주는 만큼 경상수지가 점점 안좋아지기 시작했죠

 

이럴땐 정부가 원화의 가치를 떨어뜨려서 다시 수출을 증진시켜 줘야 하는데 당시 정부는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OECD가입과 국민 소득 만달러 돌파로 국제적 위상이 크게 상승하자 이를 김영삼 정부에서는 정부가 이룬 대단한 업적으로 여겼기에 원화 가치를 낮춰 수출을 증진시키는것보다 원화 가치의 고평가를 유지해 국민소득 만달러 유지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94년부터 시작된 경상수지 적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96년에는 GDP대비 무려 마이너스 5%에 달하는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팔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점점 외환 보유고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더 심각한 상황이 도래하고 있었죠

당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투자를 하면서 몸집 불리기에 급급해 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그 자금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사용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종합금융사(종금사)와 금융기관들은 해외 금융기관들에 돈을 빌려와서 기업들에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금리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해외 금융기관에서 빌리는것이 이득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당시 종금사와 금융회사들은 해외 금융기관에서 단기차관을 빌려와 장기 차관의 형태로 기업에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단기로 빌려오는것이 이자가 쌌고 장기로 빌려주는것이 이자가 비쌌기 때문에 그랬던 건데 이는 훗날 만기가 도래하게 될 경우 문제가 생기게 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어쨌든 그러던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1997년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연쇄적으로 외환위기가 터져버린 것이죠

바트화를 비롯해 여러 동남아시아의 화폐를 샀던 해외 기관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맛보게 되면서 달러가 부족해졌고 그때부터 전세계에 투자해놓은 달러들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종금사와 금융기관에도 빌려준 돈을 내놓으라고 했죠

그러자 한국의 종금사와 금융기관에서는 시간을 좀 더 달라며 만기 연장 신청을 했지만 당장 해외 기관투자자들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돈을 상환하라고 독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단기로 돈을 빌렸던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은 국내 기업들에게는 장기로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대출 만기가 도래하지도 않았었기에 돌려받은 돈도 없는데 당장 해외에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을 맞딱드리게 된것이죠

 

그렇게 너도나도 빚을 갚기위해 원화를 주고 달러를 사기 시작하자 달러의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원화로 달러를 사니까 나중에는 품귀 현상까지 발생하면서 미친듯이 달러가격이 폭등해버렸죠

이에 정부에서는 환율 방어를 위해 가지고 있던 달러를 팔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외화보유고가 계속 떨어지면서 마침내 39억달러밖에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갚아야할 빚은 1530억 달러였던 것이죠

한편 문어발식 투자를 하면서 몸집을 불렸던 기업들은 더이상 자금을 빌릴데가 없어지자 자금난에 허덕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계 서열 18위의 대기업이던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줄줄이 기업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재계 순위 26위이던 삼미 그룹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고 삼립식품, 기아, 동아, 해태, 그리고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 마저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던 30대 대기업 중 무려 11개의 기업이 공중분해되고 말았죠

이런 대기업 뿐만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연쇄적으로 망해갔는데요

그러다보니 엄청난 수의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잘려 나오게 되었고 그렇게 순식간에 약 수백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실업자가 되어버렸는데 자신이 회사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가장들은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하고 공원이나 길거리를 방황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호황기를 누리던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처참한 상황에까지 처해지고 만것이죠

결국 1997년 11월 21일, 대한민국은 국가부도를 피하기 위해서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계속 이어져오던 대한민국의 고도 경제 성장이 사실상 종료되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경제자체의 신뢰도는 끝장이 났고 경제 주권을 포기해야할 정도로 IMF의 경제식민지가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후 2001년 8월 23일까지 약 4년간 한국 경제는 IMF의 경제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비극적인 일들이 더 많이 벌어졌죠

양극화가 극심해졌으며, 고용불안,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났고 사회적으로도 자살률이 급증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고 실직한 가정은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정 붕괴로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나라 전체가 암울해지고 있었던 것이죠

심지어 1998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 사망자의 수가 더 많아졌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2월에 정권이 바뀌면서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는데 이때 정부는 국가의 빚을 얼른 갚아버리기 위해 IMF의 개입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요

그로 인해 굉장히 강력한 구조조정이 있었고 기업에서는 명예퇴직과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죠

 

이때 명퇴, 황퇴, 노가리퇴 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명퇴 : 명예퇴직 , 황퇴 : 황당한 퇴직, 노가리퇴 : 젊은나이에 짤려버린 사람. 명태보다는 작다는 뜻에서 노가리를 붙인것 )

어쨌든 이후 기업들은 직영과 정규직을 줄이고 다단하청과 파견직, 비정규직을 대폭 늘리게 되었죠

거기다가 '고금리로 자본 유입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시중은행의 금리를 연 29.5%까지 올리면서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국민들까지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금을 모아 뜻을 보태면서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3년 8개월만인 2001년 8월 23일 마침내 나라의 빚을 다 갚을수 있었고 그렇게 IMF 관리체제가 종료될수 있었죠

IMF로 인해 대한민국의 모습은 많이 변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기업들은 조금만 경제상황이 불안정하다고 판단되면 긴축경영이니 위기상황이니 하며 지나칠 정도로 고용을 줄여 버렸고 그러면서 실업이 늘고 고용 상황도 굉장히 나빠졌죠

 

또한 과거에는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평생동안 일할수 있던 직장이었지만 지금은 비정규직, 파견직, 프리랜서와 같은 방식이 일반적인 근로형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이후 출산율이 급락하기 시작해 굳어져버렸고 이로인해 대한민국의 저출산의 주요원인으로 IMF 외환위기를 꼽는 사람도 있죠

한편 IMF 외환위기때 굉장히 힘들었던걸 생각해 한국은 제 2의 IMF 사태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경제체제를 개선하고 강화시켜 나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22년에는 4477억 달러를 비축해 세계 9위권의 외환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지금 2023년 현재 IMF 외환위기 급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미리부터 준비해서 다시 IMF 사태를 맞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할것 같네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흑역사 IMF 외환위기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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