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둘다 명나라의 공녀로 끌려간 비극적인 운명의 두 여인 청주 한씨 자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 현인비 권씨의 죽음 이후 명나라 조정에서 피바람이 불어 2800여명이 참형에 처해졌던 어여의 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영락제에게는 현인비 권씨 외에도 총애하는 조선 공녀 출신 후궁이 있었죠
그녀는 바로 강혜장숙여비 한씨 입니다
그런데 한씨는 비록 영락제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그로인해 훗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또한 한씨의 여동생인 한계란 역시 명나라로 끌려오게 되는데 오늘은 이 비극의 주인공인 한씨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명나라에서 후궁으로 들일 공녀를 바치라고 조선에 또 다시 요구해오자 다른 양반집안에서는 자기 자식은 안된다며 숨기고 있을때 한확이라는 인물은 미녀로 이름났었던 자신의 누나를 공녀로 보내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한확은 훗날 인수대비가 되는 여인의 아버지 였는데요
그렇게 1417년 한씨는 공녀가 되어 명나라로 떠나게 되었고 그녀가 명나라로 떠나던 날, 그녀의 뒷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눈물 흘렸다고 하죠
명나라에 도착해 영락제를 만나게 된 한씨는 굉장한 미녀이기도 했고 훌륭한 인품도 가진 여성이었기 때문에 영락제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고 한씨는 얼마안가 비(妃)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씨 덕분에 남동생이던 한확의 입지도 강력해지기 시작했는데 영락제는 한확을 명나라의 정5품 봉의대부 광록시 소경에 봉하기도 했고 한확의 잘생긴 외모도 마음에 들었는지 부마로 삼으려고도 했었죠
또한 한씨는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 분쟁이 일어날수도 있었던 사건을 무마 시키기도 했었는데요
원래 공녀는 처녀만 뽑혀서 갈수 있었는데 공녀로 뽑혀 명나라로 가던 황씨라는 여인이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황씨는 베이징에 도착하기 전부터 복통을 앓았는데 온갖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황씨가 소변을 보는도중 성인의 손만한 큰 살덩이가 나왔고 이에 황씨의 몸종은 얼른 그것을 버렸지만 다른 여종들이 이것에 대해 수군거리다 소문이 나버린것이었죠
이 살덩이는 다름아닌 유산한 아이였는데 이후 영락제는 황씨에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황씨는 공녀가 되기 전 어떤 남자와 사통을 했다고 실토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격분한 영락제는 태종을 문책하라는 칙서를 내리라고 명령했지만 옆에 있던 한씨가 이 사실을 알고 영락제에게 "태어나서 집에만 있던 황씨가 간택받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임금께서 어찌 알수 있었겠느냐"며 칙서를 보내지 말라고 애원했고 영락제는 한씨의 말에 설득되어 칙서를 보내지 않았다고 하죠
그리고 영락제는 한씨에게 황씨에 대한 처벌을 맡기자 한씨는 황씨의 뺨을 때리는 처벌을 내리고 이 일은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선 조정에서도 큰 곤혹을 치를수도 있었던 일을 공녀로 뽑혀갔던 한씨가 막아냈던 것이죠
이후로도 영락제의 총애를 받으며 공녀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고 영락제는 조선으로 칙사를 보낼때마다 한씨의 친정집으로 수많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한씨의 남동생이던 한확도 조선에서 승승장구 할수 있었고 한확은 이후 세종이 즉위하자 조선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영락제의 책봉 고명서를 받아오기도 했는데 한확이 죄를 지어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당했지만 세종은 "이 사람은 내가 죄줄 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며 그의 죄를 눈감아 줬다고 합니다
또한 훗날 한확은 수양대군을 돕고나서 정난공신이 되기도 했고 조선 최고의 권력가가 되죠
그러던 어느날, 명나라 황실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나는데요
영락제가 가장 총애하던 후궁인 현인비 권씨가 독살을 당하고나서 벌어진 '어여의 난'에 한씨 역시 휩쓸려 들어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것이죠
그녀를 지키던 내시가 그녀를 가엾게 여겨 음식을 몰래 갖다 주어서 겨우 연명할수 있었고 결국엔 풀려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더욱 비극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었죠
1424년 여름, 영락제가 몽골 원정에서 돌아오다가 과로로 병에 걸려 버렸고 결국 진중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것입니다
당시 명나라에서는 황제가 죽으면 황제를 가까이 모시던 궁녀들을 죽은 황제와 함께 순장을 시켰는데 이때 한씨 역시 영락제와 함께 묻힐 순장 대상자로 뽑히고 말았죠
그렇게 영락제와 함께 순장될 궁녀는 약 30여명이 뽑혔는데 죽기 직전 모두 모아놓고 최후의 만찬을 먹인 다음 산채로 매장을 하는게 아니라 모두 함께 교수형에 처한 뒤에 순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순장될 궁녀들이 모여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장소에는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영락제 다음으로 황제가 된 홍희제는 순장될 궁녀들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고 했는데 이에 한씨는 자신의 유모였던 김흑을 조선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홍희제는 그녀의 청을 수락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유모에게 통곡하며 "유모, 나는 갑니다. 나는 가요"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교수형을 집행하던 환관이 발을 딛고있던 평상을 빼버리는 바람에 마지막 한마디도 다 끝마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고 하죠
그런데 결국 유모였던 김흑은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했는데요
홍희제는 처음엔 그녀의 청을 들어주려 했으나 어여의 난 등 불미스러운 일들과 황실의 기밀을 너무 많이 알고 이를 김흑이 조선에 알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서 결국 조선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았죠
아무튼 그렇게 한씨는 24살의 꽃다운나이에 비극적인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씨가 죽고나서 한확의 권세도 끝이나는가 싶었지만 또 다시 기회가 찾아오는데요
홍희제는 황제가 된지 불과 8개월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렇게 그의 아들인 주첨기가 5대 황제인 선덕제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선덕제는 상당히 여색을 밝히던 황제였다보니 곧바로 조선에 사신을 보내 미녀를 뽑아서 보내라고 요구했던 것이죠
심지어 이때 한사람을 딱 지목했는데 바로 순장된 여비 한씨와 한확의 여동생이던 '한계란' 이었습니다
사실 그 이유가 있었는데 조선 출신 환관들이 선덕제에게 여비 한씨의 동생인 한계란이 엄청난 미인이라고 이야기 해줬던 것이죠
그러자 한확은 또 다시 명나라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릴수 있다는 생각에 명나라의 요구에 바로 응했는데요
그런데 사실 한확도 이것을 노리고 있었는지 공녀로 바치기 위해 혼기가 지난 여동생 한계란을 시집 보내지 않고 있었다고 하죠
언니가 영락제와 함께 어린나이에 순장당했다는 비극을 알고 있었던 한계란은 명나라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공녀로 뽑혀 명나라로 가는것이 확정되자 결국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이에 한확은 빨리 나으라며 약을 지어 갖다 주었는데요
그러자 한계란은 오빠인 한확에게 "언니를 팔아 이미 극진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데 또 뭘 더 바래서 나까지 팔아 넘길려고 합니까?" 라는식으로 말하며 한확을 쏘아붙였다고 하죠
이 일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려있는걸 보면 한확이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누나에 이어 여동생까지 명나라에 갖다 바쳤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후 한계란은 혼수품이던 비단이불을 칼로 모조리 찢어버리고 재물을 모두 친척들에게 나눠준 뒤 결국 끌려가다시피 명나라로 떠날수 밖에 없었죠
그녀가 명나라로 떠나던 날 이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언니가 순장당한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동생이 산송장이 되어 떠나게 되었구나" 라며 떠나는 한계란의 모습을 보고 울면서 비통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락제와 함께 순장 당한 한씨와는 달리 한계란은 선덕제가 죽고나서 까지 살아남았는데 이후 정통제가 오이라트족에게 포로로 붙잡히는 토목의 변 사건으로 인해 그의 동생이던 경태제가 황제가 되면서 황태자였던 정통제의 아들 주견심이 폐위 되는일이 있었던 것이죠
이때 한계란이 3살밖에 되지 않았던 주견심을 맡아서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8년만에 다시 정통제가 황제로 복위 하는데 성공하고 주견심도 다시 황태자가 되어 이후 성화제로 즉위하면서 어렸을때 키워준 공로에 보답한다고 그녀를 극진히 대접했고 궁내의 모두가 그녀의 출신을 개의치않고 황실의 큰어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사실 폐위된 황태자를 보살피는것 자체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역모 혐의를 뒤집어 쓸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한계란 역시 언니인 여비 한씨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수도 있었죠
공녀로 뽑혀 명나라로 끌려가다보니 그런 위험천만한 일까지 할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결과가 매우 좋았던덕에 한계란 뿐만아니라 오빠인 한확 그리고 한확의 자식들까지 명나라를 왕래하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하죠
거기다가 그녀는 조선의 외교와 국방에도 많은 도움을 줬는데요
명나라에서는 조선의 국방력이 강해지는걸 싫어했기에 조선활의 주재료인 물소뿔의 무역을 통제했는데 이때 한계란이 나서서 단신으로 황제에게 탄원하여 물소뿔 무역 통제가 풀리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계란은 편하게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하죠
여담으로 선덕제가 죽은 이후 정통제가 황제가 되었을때 섭정을 하게 된 태황태후가 자비를 베풀어 공녀들의 몸종으로 따라갔던 하녀들과 유모 등의 사람들을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내주었는데 이때 여비 한씨의 유모 김흑도 조선으로 돌아올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김흑은 어여의 난 등 조선 공녀들이 당했던 일들과 여러 사연들을 세종에게 아뢰었고, 덕분에 이 기록이 세종실록에 남을수 있었다고 하죠
조선의 공녀는 세종 이후 중단되었다가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제패하면서 인조, 효종때 다시 재개 되었다고 합니다
공녀로 선택되어 머나먼 이국 땅인 명나라로 억지로 끌려가서 한명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한명은 막판에는 잘먹고 잘살았지만 그 과정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던 한씨 자매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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