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의 아들로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견제만 엄청 받았던 왕 인종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조선의 제 21대 왕인 영조는 약 5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조선의 왕들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긴 왕이되었죠
그렇다면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는 바로 인종으로, 그의 재위기간은 고작 8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짧은 재위기간 뿐만 아니라 세자시절내내 여러 사람들에게 엄청난 견제를 받다보니 그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요절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죠
오늘은 수많은 사람의 온갖 견제를 받았던 비운의 왕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1515년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났죠
장경왕후가 인종을 임신했을때 태몽을 꿨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억명(億命)'으로 지으라고 하는것이었습니다
억자는 말그대로 십억, 백억 할때 그 억자고 명자는 '목숨 명' 자인데 그가 오래 살기위해서는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야 하는 계시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인종이 태어나고나서 병약한 모습을 보이자 장경왕후는 중종에게 아이 이름을 '억명'으로 지어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인종의 이름은 '이억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억자가 백성들이 자주쓰는 한자였기 때문에 만약 인종이 억자를 쓰게되면 피휘 때문에 백성들이 쓰지 못하는 글자가 되어버리죠
그래서 중종은 어쩔수없이 피휘를 위해 이름을 '이호'로 개명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인종의 곁에서 그를 지켜줘야 했던 어머니 장경왕후가 인종이 태어난지 6일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리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고 그렇게 그는 할머니 정현왕후의 손에 자라게 되었죠
인종은 3살때부터 한자로 된 어려운 책들을 읽었고 굉장히 똑똑하고 총명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성군이 될수 있는 자질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순탄치 않은 세자 시절을 보내야 했는데요
바로 중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경빈 박씨가 자신의 아들인 복성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온갖 모략을 펼쳤기 때문이죠
복성군은 인종의 이복형이었는데 당시 적서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중전인 장경왕후에서 태어난 적장자 인종이 그 누구의 반대없이 세자에 책봉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했던 장경왕후가 죽자 경빈박씨는 호시탐탐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려는 기회만 노리고 있었죠
그러던 1527년 어느날, 세자의 생일 무렵에 죽은쥐의 사지를 찢어 불어 태운다음 세자의 처소 창가에 매달아 놓고 세자인 인종을 저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격분한 중종은 이 일을 누가 벌였는지 조사하라 명령했고 그렇게 사건의 배후로 경빈박씨와 복성군이 지목되어 폐서인 되고 말았죠
그런데 그로부터 6년후인 1533년, 또 다시 세자를 저주하는 무서운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바로 인종의 처소 울타리 위에 둥근 모양을 한 무언가가 꽂혀있었던 것이죠
가까이가보니 그것은 종이로 사람의 머리를 만들어 눈, 코, 입과 머리카락을 붙인 괴이한 모양의 물체였습니다
그리고 걸어놓은 목패에는 '이처럼 세자를 능지하고, 이처럼 세자의 아버지 임금을 교살하며, 이처럼 중궁(문정왕후)을 참(斬)할 것' 이라고 적어놓았던 것이죠
이 저주사건으로 인해 6년전 폐서인된 경빈박씨와 복성군은 또다시 연루되어 결국 사사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이 사건의 배후는 인종의 동복 누나였던 효혜공주의 남편 연성위 김희와 김희의 아버지인 김안로가 꾸민일임이 드러났죠
김안로는 당시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인데요
그는 세자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세자를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권세를 휘둘렀던 것이죠
그덕에 인종의 지위는 안정될수 있었지만 세자의 지위를 탄탄히 하기 위해서 김안로가 행한 잔혹한 행위들을 생각하면 이게 맞나 싶기는 합니다
어쨌든 훗날 인종은 아버지 중종에게 억울하게 누명을써 죽임당한 경빈박씨와 복성군의 신원을 회복해줄것을 요청하기도 했죠
한편 새로 중전이 된 문정왕후는 세자였던 인종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해주고 있었는데요
만약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다음 보위를 이어갈 세자를 같은편으로 만들어 놓아야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수 있을거라 생각해 처음엔 세자인 인종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주고 잘 대해줬던 것이죠
그런데 1534년 7월, 경원대군을 낳은 이후 문정왕후는 태도를 180도 싹 바꿔버리고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세우기위해 노골적으로 인종을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동생 윤원형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당파를 만드는데 윤원로와 윤원형 이들이 바로 소윤의 대표격이던 인물이죠
그러다 대윤의 영수이자 인종의 외삼촌이던 윤임이 김안로와 짜고 문정왕후를 몰아내려다가 실패하고 말았고 오히려 김안로가 사약을 받아 죽임당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윤임의 대윤과 윤원형의 소윤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었죠
이런 가운데 세자의 처소에 의문의 불이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세자였던 인종이 그대로 타죽을뻔 했지만 간신히 살아날수 있었죠
이때 실록의 기록을 보면 인종이 자고 있는데 동궁에 불이났고 자고있던 세자빈이 그를 깨워서 데리고 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점은 세자의 처소에서 불이 났는데 승지와 사관들 그리고 불을 끄는 멸화군은 아무것도 못하고 우왕좌왕 대고 있었으며 당시 영의정이던 윤은보가 "세자께서는 어디 계시냐?" 라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였다고 합니다.
이때 세자는 이미 빠져나와 중종과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세자를 구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세자빈과 중종이 그를 구출했다는 것이죠
야사에 따르면 이때 불이나자 인종은 "어머니께서 나의 죽음을 원하시니 그것에 따르는것이 효가 아니겠는가" 라며 도망가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밖에 중종이 나타나 인종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자 "이대로 죽으면 어머니께는 효가 되지만 아버지께는 불효이자 불충이 된다" 라며 그제서야 밖으로 나왔다고 하죠
그만큼 인종은 당시 조선 최고의 효자이자 역대 왕들 중에서 최고의 도덕군자라 일컬어 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일의 배후로 문정왕후가 지목받을 정도로 난리가 난 사건이지만 결국엔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죠
그리고 어떻게 세자의 처소에서 불이났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문정왕후가 세자를 죽이려고 벌인짓이라는 소문이 날정도 였으니 얼마나 문정왕후와 인종의 갈등이 심했는지 알수있는 대목입니다
태어났을때부터 친어머니가 죽고 경빈박씨에게 엄청난 견제를 받았으며 이후 자신의 편인줄 알았던 문정왕후에게 버림까지 받으면서 온갖 고난을 헤치며 살아왔던 것이죠
이후 1544년 11월, 아버지 중종이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세자는 인종으로 즉위할수 있었습니다
중종이 죽기전 병에 걸려 앓아 누웠을때 인종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다고 하죠
어쨌든 인종이 즉위하자 그동안 핍박받던 사림들이 환호했는데요
그 이유는 인종은 학문을 좋아했고 인자했던 성격이었던 덕에 왕이 되면 선하고 옳은 정치를 해나갈것이고 그러면 인종이 자신들을 찾아줄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인종은 왕이 되자 조광조를 신원하고 현량과를 부활시키는 등 성리학에 입각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 과거부터 있어왔던 문정왕후의 선넘은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굉장히 병약했던 것이죠
오죽하면 문정왕후가 경원대군과 함께 인종이 있던 편전에 들이닥쳐 "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것이냐, 죽이려면 지금 죽여라!" 라며 패악질을 부렸다는 야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인종은 새어머니였던 문정왕후를 극진히 대했고 최고의 정적이자 이복동생이던 경원대군과도 친밀하게 지냈다고 하죠
또한 그가 병약한 이유로 드는 여러 이유 중 한가지는 바로 사신을 접대하는 일이나 여러 행사들 등 신하들에게 시켜도 되는일도 무리하면서까지 굳이 자신이 직접 다 했다고 하니 골병이 들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다른 이유로는 거식증 환자와 같이 거의 음식섭취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죠
오죽하면 신하들이 걱정되어 어의의 진료를 받아라해도 괜찮다며 거절했고 원래같으면 중종의 상중이라 고기를 못먹었지만 과거 세종대왕도 상중에 고기를 먹었다며 건강을 위해 고기를 좀 먹으라 해도 인종은 "대비마마(문정왕후)께서도 고기를 드시지 않는데 어찌 내가 고기를 먹을수 있냐"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의는 지금 인종의 상태로는 고기를 먹어도 소화가 안될테니 우유라도 먹어야 된다고 했지만 그 마저도 거부했다고 하죠
거의 거식증 수준인데 보다못한 신하들이 문정왕후를 찾아가 인종에게 고기를 드시라고 권해달라며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그러겠다고는 대답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싶은 생각에 실제로 고기를 권하지는 않았다고 하죠
그러던 1545년 6월 26일, 인종은 갑자기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 혼절해버렸는데 그 이후 몸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6월 29일에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자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그가 왕위에 오른지 고작 8개월 후인 7월 1일,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독살설이 나돌기 시작했죠
바로 문정왕후가 어느날 아주 친절한 모습으로 인종에게 오색떡을 권했는데 그 오색떡을 먹은뒤 쓰러진 인종이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야사일뿐이라서 그저 문정왕후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라고 하죠
그깟 권력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나 싶긴하네요
지금까지 태어나고나서 쭉 견제만 받아오다 결국엔 왕이된지 불과 8개월만에 죽어버린 비운의 왕 인종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한국역사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대병원 사건. 언론과 교과서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북한군의 만행 (0) | 2023.07.02 |
---|---|
자매 둘다 명나라의 공녀로 끌려간 비극적인 운명의 두 여인, 청주한씨 자매 (0) | 2023.06.30 |
IMF 외환위기. 대한민국 최악의 흑역사 국가 부도사태 (0) | 2023.06.28 |
인수대비.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 아들, 손자까지 매우 골때리던 인물들이었던 여인 (0) | 2023.06.23 |
헨드릭 하멜. 조선에서 13년 동안이나 억류되어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며 살았던 인물 (0) | 2023.04.26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자식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한 정종과 그의 아들들 (0) | 2023.03.12 |
정종 이방과. 마음만 먹었으면 왕자의 난을 진압할수 있는 힘이 있었던 인물 (2) | 2023.03.10 |
지금보다 2~3배의 엄청난 양의 밥을 먹었던 조선인들 (0) | 2023.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