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최고의 명장 관우를 붙잡고 죽인 오나라 대표 명장 여몽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다른 여러나라에서는
삼국지의 관우를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워낙 삼국지 연의에서 그를 띄워줬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문무를 겸비한데다가 의리도 있고 멋있게 생기기도 했으며
죽고 나서도 조조 앞에서 머리만 있는 상태에서 눈을 떴다던지,
그의 말이던 적토마도 주인이 죽자 자기도 굶어 죽었다던지 하는
그런 신화같은 일들이 많아서 그렇죠
그런데 삼국지 연의를 보다보면 정말 열받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최강의 명장인 관우가 사로 잡혀 참수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신과 같은 관우를 누가 죽였는지 아시나요?
삼국지를 보셨던 분은 바로 아시겠지만
조조의 위나라가 아닌 오나라의 여몽 이라는 인물입니다
여몽은 원래 싸움만 잘하다가 나중에는 공부까지 잘하게 되면서
여러 사자성어를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죠
오늘은 주유와 노숙의 바톤을 이어 받아
오나라의 군권 1인자가 된 여몽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강인한 면모를 보이는데요
고작 10대때 강남으로 내려와 당시 손책의 부하였던
매형 등당의 밑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몽이 16살때 등당은 산적들을 토벌하게 되는데
이때 여몽은 몰래 따라가 도적 토벌에 병사로 참여해
전투에 투입되기도 했죠
사실 산적과 전투가 있기 전 여몽이 몰래 따라온걸 알게된 등당이
그를 꾸짖으며 돌아가라 했지만 여몽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치열한 전투끝에 목숨을 건진채 살아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등당이 여몽의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여몽을 벌주려고 했는데
그때 여몽이 "가난하고 천하면 살기 어렵고 공을 세우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그 새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그를 용서해 주었다고 하죠
그때 등당의 부하 중 한명이 여몽을 풋내기 취급하며
"호랑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다" 라고 비웃으며 말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여몽은 며칠후 자신을 비웃던 그를 죽여버리고
자수를 한 사건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손책은 여몽에 관심이 생겨 그를 불렀는데
첫눈에 여몽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바로 자신의 측근으로 삼았다고 하죠
그리고 200년, 손책이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잇자
손권은 군단을 통폐합 하기 위해 열병식을 열었는데
이때 여몽은 외상까지 써가면서 자신의 병사들을 빨간옷을 입히고
행전을 구비해 주면서 열병식에 참여했고
이에 손권은 여몽의 군대가 잘 훈련되어 있는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여몽 군단의 병사를 더 늘려 주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여몽은 단양을 토벌하고 여러 전투에서 많은 공적을 세워
순조롭게 승진을 이어 나갔다고 하죠
거기다가 208년엔 강하태수 황조 토벌때도 참전해
선봉이 되어 황조가 보낸 선봉 진취의 목을 직접 베어버리면서
이에 승기를 잡은 손권군이 강하를 손쉽게 점령할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손권은 이 전투의 승리는 여몽이 진취의 목을 벤 덕분이라며
그를 횡야 중랑장으로 삼고 막대한 돈까지 하사했죠
이때부터 손권의 눈에 제대로 들게 된 여몽이었지만
손권은 여몽에게 안타까운점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의 용맹스러운점은 정말 좋은데
학식이 워낙 부족한것이 흠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손권은 여몽에게 공부 좀 하라고 말했는데
여몽은 '공부는 문관들이나 하는거지 무관인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냐,
나는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손권은 '내가 군주가 된 이후 너보다 더 바쁘게 살지만
시간을 내어 삼사와 병서를 공부한다'
'나도 하는데 니가 왜 안하냐,
너는 머리가 좋아서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 늘것 같다 라고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여몽은 손권의 권유에 깨달음을 얻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한편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주유는
이후 감녕에게 이릉을 점거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조인은 병력을 나눠
감녕이 있는 이릉을 공격해 버렸고
이에 감녕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고 만것이죠
그리고 감녕은 급하게 주유에게 구원병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주유의 진영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나는데요
대부분의 장수들이 병력을 나누기엔 너무 부족하다며
구원군을 보내면 안된다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때 여몽만은 "감녕을 구원하여 포위를 푸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으니 당연히 가야합니다
하지만 본진의 방어는 해야하니 능통에게 이 일을 맡기시면
능히 10일은 버틸수 있을것 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감녕을 구하고
따로 300명의 병사는 나무를 잘라 적의 퇴로를 막아 놓으면
적이 도망칠때 말을 버릴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들도 노획이 가능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이에 주유는 여몽의 주장을 채택했고, 그 결과
정확하게 여몽이 말했던 대로 감녕도 살렸으며
적들이 도망칠때 버린 말들을 챙기면서
말한대로 모든것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이에 사기가 치솟은 주유군은 조인을 격퇴하고 남군을 차지 할수 있었다고 하죠
그러자 손권은 또다시 크게 기뻐하며
여몽을 편장군과 심양현령에 임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과 1년후인 210년, 오나라를 지탱해주던 기둥인 주유가 세상을 떠나면서
노숙이 그의 뒤를 이어 육구로 향하던 중에
여몽의 군영을 지나쳐 가게 되었는데요
이때 노숙의 주위사람들은 여몽이 대단한 사람이 되었으니
꼭 한번 만나보고 가라고 말해주었고
이에 노숙은 육구로 가던중에 여몽에게 들러 함께 술을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죠
한창 술을 마시다가 문득 여몽이
"노숙님께서 중임을 맡아 관우와 접하게 되었는데
관우를 방비할 계책을 세워놓으셨습니까?" 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약간 여몽을 깔보고 있었던 노숙은
"그때그때 알아서 적절히 대응할것이오" 라고 대답했죠
이에 여몽은 "지금 유비와 동오가 한집안 이라고 하더라도
관우는 실로 곰과 호랑이 같은 자이니 미리 대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몇가지 방책을 노숙에게 일러주었던 것입니다
그 얘길 듣고 깜짝 놀란 노숙은 여몽에게
"경의 지략이 이 정도까지 올랐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
예전의 그 동오의 아몽(여몽의 아명)이 아니구려" 라고 말했다고 하죠
이에 여몽은 "선비는 3일동안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날때는
눈을 비비고 마주 해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선비들은 3일동안만 떨어져 있어도 믿기 힘들정도로 발전할수도 있기에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할 정도 라는 말인것이죠
여기서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뜻하는 '괄목상대'와
진보가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오하아몽'이란 사자성어가 생긴 것입니다
(오하아몽(吳下阿蒙) : 오 땅의 어리석은 아몽이라는 뜻. 힘만 세고 머리는 못쓰는 사람을 놀릴 때 쓴다)
(괄목상대(刮目相對) :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으로 안 본 사이에 부쩍 재주가 늘었음을 의미한다.)
손권의 권유로 공부를 열심히 한 여몽은
확실히 똑똑하긴 했는지 놀랄만한 정도로 학식이 뛰어나졌고
그렇게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거듭났던 것이죠
이후 1년후인 211년, 조조가 오나라로 공격해 들어오는데요
이 소식을 들은 여몽은 유수구가 격전지가 될 것이라 예상해
그곳에 보루를 세워야 한다고 건의했죠
이에 많은 장수들이 육지에서 화살을 쏘다가
적이 가까이 오면 배위에 올라타 버리면 되는데
왜 쓸데없이 보루를 세우냐고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여몽은
"군사를 다루는 일에는 날카로움과 둔탁함이 있는 것이고
싸움에는 모두 다 이길 수 없는 것이니
만일 우연히 적과 만나서 적의 보병과 기병이 빠르게 쫓아와
물가까지 퇴각할 틈이 없게 된다면 어떻게 배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던 것이죠
이 말을 듣고 있던 손권은 훌륭하다며 여몽을 칭찬했고
그렇게 유수오 라는 방어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조조군이 이곳에 도착을 했지만
없던 보루가 생기고 철저하게 방비가 되어있는걸 본 조조는
뭘 해보지도 못한채 물러났다고 하죠
조조로써는 유수구를 점령하고 장강만 넘으면
오나라의 수도인 건업이 바로 코앞에 있었기에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였지만
여몽이 유수오를 만들고나서 조조군은 유수오를 넘지 못했다고 합니다
214년에 오군은 위나라의 환성을 공격하게 되는데요
수많은 신하들이 토산을 만들고 천천히 환성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몽은 천천히 공략하다가는 적의 원군이 오는데 시간을 주기 때문에
더 공략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 바로 환성을 함락 시켜야한다고 진언했던 것이죠
여몽의 건의를 또 받아들은 손권은
적군이 방심하는 시간인 새벽에 기습을 감행해
성을 차지할수 있었습니다
이때 조조의 원군으로 장료가 환성 근처까지 왔다가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퇴각했다고 하죠
만약 여몽 말대로 안하고 다른 장수들 말대로 천천히 공략했으면
환성 함락은 성공하지 못했을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에도 여몽의 맹활약은 계속 되는데요
215년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뒤에 약속했던 형주 반납을 거절하자
손권은 여몽에게 여러 장수들과 2만의 병력을 주어
장사와 영릉, 계양을 공격해 빼앗아버리라고 명했죠
이후 여몽은 편지를 보내 장사와 계양의 항복을 받아 냈지만
영릉태수 학보는 항복하지 않고 성을 지키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유비도 이 소식을 들었고 5만의 병력을 동원해
공안으로 진군하고 있었으며
관우도 세 군을 방어하기 위해 남하하고 있었죠
그러자 손권은 노숙에게 익양으로 가 관우를 막으라고 명하는 동시에
여몽에게도 영릉은 일단 포기하고 노숙과 합류해 관우를 막으라 명령했습니다
이때 여몽은 군을 돌려 노숙에게 가기 전
학보의 친구였던 등현지를 이용해 학보를 항복시킬 계책을 실행하죠
바로 등현지에게 학보를 찾아가
'유비는 한중에서 하후연에게 포위당한 상태이고
관우는 번성에서는 손규에게 격파되었고 남군에서 손권에게 발이 묶인 상태이며
오나라의 원군도 계속해서 영릉을 향해 다가 오고 있다.
얼마안가 영릉성은 함락될 것이니 당신의 노모를 죽게 만들기 싫다면 항복하라'
라고 전하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몽의 계책에 말려든 학보는 결국 항복했고
그렇게 여몽은 처음 임무였던 영릉, 장사, 계양의 공략을 완수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노숙과 합류했다고 하죠
하지만 익양에서 관우와의 대치는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고 익주 코앞까지 다가오자 끝이 났는데요
급박해진 유비는 형주를 분할하기로 하고
오나라와 화친을 맺을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215년에도 여몽은 합비공방전때
장료에 의해 손권이 위기에 처하자
능통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손권을 구해내기도 했고
217년에 조조가 유수구를 향해 진군해 오자
조조군의 선봉대가 진지를 구축하기도 전에 기습을 감행해
격파해 버리는 엄청난 공을 세우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주유가 죽고나서 손권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는
여몽 밖에 없다시피 했고 그만큼 여몽을 총애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217년 어느날, 주유에 이어 노숙마저 4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여몽이 육구에 주둔하게 되었죠
노숙은 조조가 살아있는 한 촉나라와는 서로 돕고 협력하며
친밀한 관계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여몽은 관우가 언젠가는 오나라를 공격할것 같기도 하고
관우가 차지한 땅이 장강의 상류까지 점유하고 있어서
이 친밀한 관계가 오래갈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몽은 오군 총대장으로써 은밀히 손권에게 계책을 올렸죠
당시 서주 공략을 위해 정신을 쏟고 있던 손권에게
"서주는 공략할수는 있지만 워낙 육로가 잘 되어 있어서
위나라의 기병들이 달려오면 금방 도달할수 있기에
서주를 차지한뒤 7~8만명의 병력을 주둔 시킨다해도
근심만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니 서주를 공격하지 말고 오나라 병사들에게도 익숙한
형주를 빼앗아야 합니다" 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여몽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 손권은
겉으로는 관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척 했지만
뒤로는 형주를 빼앗을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러던 219년, 관우가 공안과 강릉에 병력을 남겨둔채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번성을 향해 출진했습니다
이에 여몽은 손권에게
"관우가 출진하면서 병력을 남겨놓은 것은
제가 뒤를 칠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픈척하고 요양을 핑계삼아 건업으로 귀환한다면
아마 관우도 남겨놓은 병력을 모두 번성 공략에 사용할 것입니다.
병력이 빠지는걸 확인하고나서 공격하면
텅빈 형주땅을 모두 차지할수 있을것입니다" 라고 말한것이죠
이에 손권은 여몽을 건업으로 소환했고
빈 육구에 여몽을 대신해 누구를 보내야 하냐고 묻자
여몽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능력이 뛰어난 육손을 보내시면
관우가 분명히 방심할 것이다' 라고 조언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육손이 여몽을 대신에 육구로 향했고
육구에 도착한 육손이 관우를 치켜 세워주는 편지를 보내자
관우는 듣보잡 장수가 왔다고 생각해 오나라의 경계를 풀어 버린뒤
그곳을 지키던 병력들도 모두 번성 공략에 투입시켰죠
그렇게 여몽의 계책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것입니다
한편 관우는 조조가 보낸 우금과 방덕을 격퇴하고
그들의 병사 3만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로인해 군량이 부족해지자
오나라 땅이던 상관지역의 곡식을 강탈해 버린 일이 벌어졌죠
이 소식을 들은 손권은 화를 내며 이를 명분삼아
여몽에게 형주 공격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관우에게 공격소식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상선으로 위장한 배에 정예병들을 상인으로 위장시켜 태운후
순식간에 관우군의 초병들을 붙잡았고
관우가 설치 해놓은 관측소들을 모두 제압해버렸죠
그래서 관우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가지 못했기에
여몽이 쳐들어온걸 관우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이후 여몽은 공안을 지키던 부사인과 강릉을 지키던 미방도 항복시켰고
그렇게 관우는 갈곳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죠
여몽은 점령지에서 관우군의 장수와 병사들의 가족들을 다 붙잡았지만
그들을 모두 보호해 주었으며
전군에 민가를 약탈하거니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군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어떤 병사가 백성의 삿갓을 하나 빼앗은 일이 있었는데
여몽은 군령을 어겼으니 용수할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며 그 병사를 참수했고
이후 병사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았다고 하죠
또한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해주었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면서
관청의 재물은 봉쇄한채 손권이 올때까지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안가 관우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데요
이미 번성에서 서황에게 격파당한 관우는 돌아오는 길에
여몽 진영의 동태를 확인하고자 여러차례 사자를 보냈죠
이때 여몽은 그 사자를 굉장히 후하게 대해주면서
편하게 성안을 다니고 함께온 사람들에게 가족들도 만나보게 했으며
다른 가족들이 전하는 편지까지 가져갈수 있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다녀간 관우군 병사들은 가족들의 편지를 받아
다들 무사한데다가 심지어 예전보다 더 잘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몽군과 싸울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죠
결국 근거지를 잃은 관우는 맥성에서 농성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관우는 거짓항복을 하고 십여기의 병사만 거느린채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붙잡히고 말았고
손권은 처음엔 관우를 풀어주고 유비와 함께 다시 조조에게 대적하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극렬히 반대를 해
결국 관우는 아들 관평과 함께 참수당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여몽의 계책이 너무나도 잘 들어맞아
삼국지 최고의 무장이던 관우가 그렇게 생을 마감 한것이었죠
이후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잔릉후에 봉해지고
어마어마한 돈을 상으로 받았는데
채 봉작이 되기도 전에 갑자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여몽의 죽음은 삼국지 연의에서 굉장히 무시무시하게 묘사 되는데요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한 기념으로 열린 연회 자리에서
여몽이 1등공신이라면서 가장 먼저 술을 받은 뒤 마시려는데
갑자기 관우의 망령이 나타나 여몽의 멱살을 잡으며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나는 관우다!"라고 외치자,
여몽은 관우의 귀신이 들려
손권에게 술잔을 집어 던지고 욕을 하다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 무서운 최후를 맞게 되죠
하지만 이는 당연히 소설에 불과합니다
정사에서는 좀 평범하게 생을 마감하는데
지병이 도진 여몽이 갑자기 앓아 눕자
손권은 여몽을 자신이 기거하는 궁으로 여몽을 데리고와
그의 병을 치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죠
여몽의 병을 치료 해주는 자에겐 천금을 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여몽에게 의사가 침을 쓰면 자신이 아파할 정도로
그를 너무나도 아꼈다고 합니다
또한 손권은 여몽을 만나러 갔다가
그가 아픈몸을 힘들게 일으키게 하는것도 싫어서
벽에 구멍을 뚫고 여몽 몰래 그의 안색을 살폈죠
거기다가 여몽이 식사를 조금이라도 하면 기뻐서 웃었다고 하고
식사를 못하면 잠을 못이룰 정도로 걱정을 해주었으며
도사들을 불러 별 아래에서 여몽의 병세가 나아지도록 기도를 드리기도 했지만
결국 병세가 위중해진 여몽은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는 관우가 죽은 년도에 여몽도 죽어버린 것인데요
관우를 죽이자 마자 여몽도 세상을 떠나다 보니
이후 관우의 혼령이 나타났다느니 관우 귀신에 씌였다느니 하는
삼국지 연의의 그런 전설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훗날 삼국지 정사를 쓴 진수는 여몽을 두고
용맹하면서도 지략에도 능했으니
무장으로써 여몽만한 인물은 없었다 라고 평했다고 하네요
사탐과탐 다른 포스팅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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