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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명나라가 서서히 망해가는 과정

by 사탐과탐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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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명나라가 서서히 망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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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왕조 중 하나인

명나라가 멸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368년 주원장이 몽골의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웠습니다

명나라는 한때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었고

한나라, 당나라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기 중 하나로 꼽히죠.

같은 시기의 유럽 국가들은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에 푹 빠져있었고

일본과 남아메리카의 은이 대거 유입되면서 상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답니다

 

이후 276년간 지속된 명나라는 결국 1644년에 멸망하고 말았죠.

왜 이렇게 강대했던 제국이 무너지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명나라 멸망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환관들의 권력 남용이었습니다.

환관은 황제를 보좌하는 내시를 말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권력이 점점 커져갔죠.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은 환관의 정치 개입을 우려해 엄격한 규제를 두었습니다.

그는 환관의 수를 100명 이하로 제한하고 환관들에게 문자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으며

절대 정부 요직에 관여할 수 없다는 내용의 철비까지 세웠죠.

 

하지만 주원장의 뜻과는 정반대로 훗날 명나라는

결국 환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왕조가 되고 말았습니다

3대 황제 영락제 때부터 환관들의 권력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5대 황제 선덕제 때는 환관 학교라 볼 수 있는 내서당까지 설치되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환관들의 영향력은 커져만 갔습니다.

황제를 보필하는 본연의 업무 외에 관리 임명과 승진에 관여하며 점점 부패해 갔으며

심지어 군사 쪽에도 영향력을 뻗기 시작했죠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환관의 수가 무려 7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명나라의 대표적인 간신이자 타락한 환관을 꼽자면 영종 때의 왕진,

성화제 때의 왕직, 정덕제 때의 유근, 천계제 때의 위충현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진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어마어마하게 부정부패를 저질렀죠.

 

유군은 아예 대놓고 공개적으로 매관매직을 했었는데

그의 재산은 당시 명나라 조정 국고 수입의 10배가 넘었다고 합니다.

위충현은 황제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으며,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길바닥에 엎드려 '구천세' 또는 '구천구백세'를 외쳤다고 하니,

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이러한 부정부패를 일삼는 간신배들이 활개를 치게 된 이유는

바로 무능한 황제들 때문이었는데요

명나라 중기부터 어리고 무능한 황제들이 연이어 즉위하게 되면서

국가 운영에 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특히 '명나라 4대 암군'이라 불리는 황제들의 치세 동안

명나라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명나라는 총 16명의 황제가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10대 무종 정덕제는 주색을 넘어서 남색에 빠졌고

국고탕진은 기본에다가 방탕하게 놀기만 했던 암군이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11대 세종 가정제는 도교와 도술에 빠진 후 신선이 되려고

불로장생 단약을 만드는데만 집중했던 암군이었습니다

13대 신종 만력제가 진짜 암군 중에 암군이었는데

무려 30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안 했던 최악의 암군이었죠

 

그런데 자기 나라는 제대로 말아먹었으면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고마운 황제이기도 했습니다

15대 희종 천계제는 간신에게 나라를 통째로 맡겨버리고 목공예만 했었던 암군이었죠

 

이들의 재위 기간은 명나라 존속 기간인 276년 중 무려 117년이나 됩니다.

특히 만력제는 4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위했지만

30년 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명나라는 실제로 만력제 때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그렇게 명나라 안에서 무능한 황제와 간신배들이 앞다퉈서 부정부패를 일삼는 와중에

밖에서는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는데요

 

북쪽에서는 몽골이, 남쪽에서는 왜구가 끊임없이 침략해 왔죠.

이를 '북로남왜(北虜南倭)'라고 불렀습니다.

몽골의 침략은 특히 심각했는데 가정제 시기의 1550년에는

알탄 칸이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을 포위한 사건인 '경술의 변'이 일어나게 되었죠

이후 알탄 칸이 가정제에게 무역의 재개와 세폐를 지급하면 철군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자

몽골군을 이겨낼 방도가 없었던 가정제가 그 조건을 수락했습니다

그렇게 명나라는 국고의 상당 부분을 알탄 칸에게 갖다 바쳐야 했고

이는 곧 재정난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남쪽의 왜구 문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나무판자 하나라도 바다로 들이지 못하게 하라"는

엄격한 해금령을 내렸죠

그렇게 1371년부터 백성들이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해금령을 시행했었는데

그 이유는 백성들의 통제를 강화해서

해적이 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한 취지였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또한 명나라에서 개인무역을 통제해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16세기 중반에는 왜구의 약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밀무역까지 성행하자

결국 1567년에 해금령을 폐지하게 됩니다

쇄국정책이나 다름없는 해금령이 거의 200년 가까이 시행되면서

왜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불러일으켰는데요

 

한때는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었지만 해금령이 발목을 잡아

국제 무역에서 크게 뒤처지게 되었고

반면에 같은 시기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 서양의 많은 나라들은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해상 무역과 세력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명나라가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일체 허용하지 않자 무력 충돌이 많아졌고

그만큼 군사비 지출 또한 늘어나게 되었죠

 

그리고 천재지변까지 한몫하게 되는데요

16세기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가 시작되었는데

땅덩어리가 큰 명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극심한 한파는 기나긴 가뭄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기근이 계속되었죠.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량 감소는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이는 결국 농민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라가 멸망할 때는 내부 반란 아니면 외세의 침입 둘 중 하나로 보면 될 텐데요

 

명나라가 북쪽의 몽골과 남쪽의 왜구의 침략에 맞서는 틈을 타

북방의 여진족이 서서히 힘을 키우기 시작하더니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와 조선이 혼란한 틈을 타 더욱 급격히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결국 1616년 누르하치가 북방의 모든 여진족을 통합시킨 후 후금을 건국하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러더니 2년 후인 1618년

명나라에 7가지 한이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선전포고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강대국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기 직전이었던 조선의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둘 다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중립외교를 펼치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명나라는 조선을 압박해 결국 1만의 지원군을 얻어

명나라 군대 9만과 합쳐 약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후금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군이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게 되면서

후금으로 기세가 기울게 되었죠

 

그러나 1626년 명나라 최후의 명장이었던 원숭환이 영원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는데

그전까지 승승장구 하던 누르하치는 예상치 못한 참패를 당하면서 그 충격이 너무나 컸던지

패배의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이후 홍타이지는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오르며 황제국을 선포했습니다

 

한편 조선은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왕위에 올랐었는데

광해군 때의 중립외교와는 다르게 명나라를 택하고

후금과 청나라를 오랑캐라 업신여기며 배척하는 정책을 펼쳤죠

그러자 홍타이지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조선에게 참교육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후방 조선을 먼저 손봐준 후에 본격적으로 명나라와 전면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편 명나라는 청나라와 국운을 건 전쟁을 치르게 되면서

점점 국력은 약해지고 덩달아 재정도 바닥나기 시작했죠

안 그래도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죽도록 힘든 상황인데

명나라 조정에서는 백성들을 더욱 착취해서 세금을 쥐어짜내는 상황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결국 개빡친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죠

1621년에 사천 지방에서 사숭명이 난을 일으켰고 1627년에는 이자성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후금과 청나라도 함락시키지 못한 북경을 1644년 4월 25일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이 함락시켜 버리게 됩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서

276년 동안 이어져온 명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죠

 

이후 명나라의 장군이었던 오삼계는 북경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자

반란군에 항복하는 대신에 청나라에 투항하게 되는데요

청나라군과 오삼계의 연합군은 이자성의 반란군을 물리치고 북경을 다시 되찾게 되었죠

 

이로써 청나라는 중국 본토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고

명나라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명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의 나라이던지 간에 멸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결과적으로 명나라의 멸망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 때문이 아니라

오만가지 요인들이 누적되면서 스스로 자멸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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