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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탐구

저태후. 무려 3번의 수렴청정을 하면서 동진의 안정과 발전을 가져온 여인

by 사탐과탐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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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번의 수렴청정을 하면서 동진의 안정과 발전을 가져온 여인 저태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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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청정은 '발을 내리고 정치를 듣는다'라는 뜻으로

 

어린 황제를 대신해서 황태후나 태황태후가 정사를 대신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수렴청정이라 하면 악녀 서태후처럼 권력욕 때문에

일부러 꼭두각시 황제를 앞세운 후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게 먼저 떠오르는데요

그런데 한평생 동안 5명의 황제를 거치면서 3번의 수렴청정을 했던

중국 역사상 유일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서태후처럼 권력을 독차지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던 대단한 여인이죠

그녀는 바로 동진 왕조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저태후입니다

과연 저태후는 세 번의 수렴청정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일을 했었던 걸까요?

 

저태후의 본명은 저산자이며 그녀는 324년에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저부는 동진에서 태부를 지낸 도향정후였으며

외가 쪽 역시 동진의 명문가인 진군 사 씨 집안이었죠

저산자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하며 기품이 있었고,

이러한 그녀의 자질은 일찍이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10살 때 저산자는 낭야왕 사마악과 결혼하여 낭야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42년에 황제 사마연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사실 사마연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의 동생이었던 사마악이 황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저산자는 황후가 되었죠

당시 그녀는 불과 20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저산자는 곧바로 그녀의 총명함과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343년 9월에 아들 사마담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344년 11월 18일,

사마악이 23살의 나이로 사망해 버리고

어린 태자 사마담이 다음 황제로 즉위하면서 저태후의 첫 번째 섭정이 시작되었죠

당시 사마담은 2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태후는 황태후로서 정사를 돌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수렴청정을 시작하게 된 그녀는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하얀 비단 장막을 걸고 어린 황제를 안고 정사에 임했습니다

저태후는 중서감 하충과 사도 채모를 비롯한

여럿 조정 신하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특히 대장 환온은 서남의 성한 세력을 멸망시키고 촉의 땅을 되찾는 등

큰 공을 세우며 동진의 위상을 크게 높였는데요

그 결과 그녀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동진은 군사력과 정치적 안정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죠

또한 그녀는 자신의 친족들에게도 엄격히 대하면서 그들에게 사사로이 상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엄격함 덕분에 외척들은 함부로 설칠 수 없었고 심지어 저태후의 가족들은 집에서도 그녀를 황태후에 맞는 예를 갖추며 모셔야만 했었죠

 

357년에 사마담이 15살이 되자, 저태후는 손수 조서를 내린 후

모든 권력을 황제에게 돌려주고 섭정을 끝마쳤습니다

신하들은 아쉬워했으나 저태후는 더 이상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음을 재차 밝혔죠

그렇게 그녀는 숭덕궁으로 물러나서 아들이 직접 국정을 돌보도록 했는데

동진의 실권자로 떠오른 환온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환온은 자신의 군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 정치에도 관여하며 선을 점점 넘으면서

황제뿐만 아니라 저태후와 조정의 신하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죠

저태후는 그러한 상황을 예의주시했을 테고

다시 국정에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361년에 사마담이 19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마담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대 황제였던 사마연의 장남 사마비를 황제로 추대하게 되었죠

하지만 사마비는 정사에 전혀 관심이 없고,

불로장생의 환상에 빠진 채 단약에 중독된 채 병상에서 골골댔습니다

결국 대신들은 저태후에게 다시 수렴청정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태후는 두 번째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약기운으로 폐인처럼 지내던 사마비가 골로 가버리자

어쩔 수 없이 그의 동생인 사마혁이 다음 황제에 오르게 됐습니다

저태후의 섭정 또한 계속되었죠

그러나 이때 환온이 숨겨둔 이빨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동진의 실세가 된 이후 신하가 생각해서는 안될 황위 욕심까지 내게 되었던 거였죠

그래서 사마혁이 성불구자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그를 폐위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소문은 조정 내외에 빠르게 퍼졌고

많은 신하들이 사마혁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으며

저태후 또한 그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결국 사마혁을 폐위시키기로 결정하게 되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결국 사마혁을 폐위시킨 후 사마욱을 다음 황제로 세웠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마욱은 환온의 꼭두각시 황제였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 살다가 고작 8개월 만에 급사해 버렸고

그의 어린 아들 사마요가 황제가 되었죠

 

그렇게 저태후는 세 번째 수렴청정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환온이 사마요에게 계속해서 황위를 자신에게 물려달라는 선양을 요구하는 상황이었죠

사안과 왕탄지는 환온이 평소 지병이 있어 위독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은밀히 선양을 계속 늦췄는데요

 

결국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환온은 화병까지 도져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환온이 마음만 먹었다면 군사를 일으켜 언제든지 황위를 찬탈 가능했던 상황이었지만

소극적인 행동으로 끝내 황제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태후는 가장 골칫덩어리인 환온이 죽자 곧바로 환온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죠

 

환온의 측근들을 제거하며 환온 세력을 약화시킨 후 조정을 장악했는데요

그렇게 황실을 안정적으로 정리한 후 백성들에게 구휼책을 펼치며 사회를 안정시키려 했죠

그러한 그녀의 노력 덕분에 어지러웠던 동진 왕조가 안정화될 수 있었고

동시에 사회경제 또한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376년, 효무제 사마요가 15세로 성년이 되자

저태후는 스스로 수렴청정을 끝내고 다시 숭덕궁으로 물러났죠

그러나 여전히 조정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 신하들은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은퇴의 삶이 스트레스 없고 평안했던 덕분인지

그녀는 384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죠

 

저태후의 사망 소식은 조정과 백성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하네요

그녀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효무제는

저태후를 남편인 진강제 사마악이 묻혀있는 숭평릉에 안장하며 그녀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 황제가 무려 5번이나 바뀌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수렴청정을 3번이나 하게 됐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고 황제를 대신해서 나랏일을 아주 잘 한 덕분에

동진 초기 왕조를 안정시킬 수 있었죠

지금까지 서태후와는 완전 정반대의 수렴청정을 했었던 저태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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