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이 멋드러지게 차려입었던 진짜 이유와 의열단의 엄청나게 위대한 행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 무려 35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를 겪는 동안 수없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약산 김원봉을 단장으로 해서 일제를 상대로 무력항쟁을 벌이는 무장독립운동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의열단이죠
여태까지 남아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다니느라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었던 탓에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것에 반해 의열단원들의 사진은 아주 멋들어진 양복과 머리 스타일을 한것을 볼수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이렇게 멋지게 꾸미고 다닐수 있었던 것일까요?
1919년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3.1운동을 겪은 후 해외로 기지를 옮긴 독립운동가들은 강력한 일제의 무력에 대항해 독립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이 조직됐죠
이 단체를 설립한 약산 김원봉은 3.1 운동이 벌어졌을때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던 조선인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만주와 중국 본토지역에 있던 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은 다소 소극적이고 온건한 방식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원봉은 조금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윤세주와 이성우, 곽경, 이종암 등의 동지들과 의열단이라는 투쟁 결사대를 조직해서 암살과 파괴 활동을 펼치면서 국내 동포들이 독립운동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국내외의 한인들 모두의 애국심을 자극함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조국의 광복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처음 창단했을 당시의 의열단원은 김원봉, 김대지, 황상규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을 위주로 한 13명이었다고 하죠
이 13명은 광복을 맞을때까지 단 한명도 배신하지 않은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고 합니다
의열단은 창단 직후 '공약10조'를 비롯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각지의 경찰서 그리고 기타 일본의 중요기관 파괴를 목표로 하는 '5파괴' 조선총독과 친일파 우두머리, 매국노 등 7가지 종류의 암살대상을 목표로 하는 '7가살'을 지침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들에게 암살과 테러를 위한 전문 교육이나 훈련을 제대로 시켜줄 사람이 없었던 탓에 작전을 실행하는데 허술한 점이 많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초기 의열단원들은 암살 대상의 자택 앞에서 목표대상이 귀가하기를 기다리면서 술을 마시다가 졸아서 암살을 하지못하는등 임무에 실패할 때도 많았다고 하죠
의열단은 창단한지 얼마 뒤에 근거지를 지린에서 베이징으로 옮긴 후 프랑스인들이 중국에서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인 상하이에서 무력항쟁으로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한 이유는 당시 프랑스와 일본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경찰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해줬기 때문이라고 하죠
의열단은 비폭력 투쟁인 3.1운동이 일본의 폭력에 제압당하면서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폭력투쟁으로 일본의 지배와 착취에 맞섰습니다
여기서 잠시 앞에서 언급한 의열단원들이 유달리 멋진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을 한채 사진을 찍었던 것에 대해 알아볼까 하는데요
영화 속에 나오는 의열단원들의 모습을 보면 깔끔한 셔츠에 긴 코트와 중절모 등 신사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죠
미국인 기자 님 웨일스는 1937년에 의열단원 김산에 대한 일대기를 기록하면서 김산이 속해있던 의열단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는데요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했고 수영과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했다
임무수행을 위한 저격연습도 매일 잊지 않았다
그들은 명랑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심각해지곤 했다
언제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들은 기막히게 멋진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증에 가까울만큼 말쑥하게 잘 차려입었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이라는 책에 따르면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 늘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머리를 잘 손질했으며 사진을 찍을때도 언제나 이번이 죽기전 마지막 사진이라고 생각하면서 찍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추측으로는 당시 우리나라의 서민들 대부분이 일제에 착취를 많이 당하다보니 허름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관직에 있거나 친일계열인사들 또는 그 후손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열악한 상황속에서 투쟁할수밖에 없던 독립투사들이다보니 허름한 옷을 입으면 일본 순사들의 의심을 살수도 있기 때문에 잘차려입고 다니면서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려 했을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의열단은 1920년 3월부터 곽재기, 이성우, 신철휴, 윤세주 등의 핵심 단원들을 행동대원으로 국내에 잠입시키며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등을 폭파시키려고 했죠
하지만 마지막 실행단계에서 비밀이 새어나가며 최초의 대규모 파괴공작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의열단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나갔죠
1920년 9월 박재혁이 부산 경찰서에 들어가 경찰서장을 폭사시킨 것을 시작으로 12월에는 최수봉이 밀양경찰서 소속 모든 경찰이 모인 곳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다음해 9월에는 김익상이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던지면서 청사의 일부가 부서졌고 1922년 3월에는 김익상과 이종암, 오성륜이 상해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었는데요
이후 오성륜 의사는 가까스로 탈옥했지만 안타깝게도 김익상 의사는 1943년에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1923년 1월에는 김상옥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터뜨렸고 1924년 1월에는 김지섭이 도쿄의 궁성 정문 앞 이중교에서 폭탄을 던졌지만 아쉽게도 불발되었죠
1924년 6월에는 김병현과 김광추, 박희광이 악질 친일파 정갑주와 그의 가족을 암살했습니다
세 의사는 얼마후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정보를 일본 경찰에 팔아넘기던 밀정인 배정자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죠
비록 암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의 의거에 두려움을 느낀 배정자는 얼마후 은퇴하며 더이상 일본에 정보를 팔아넘기지 못했습니다
김병현과 김광추, 박희광은 친일파 조직인 일진회의 이용구 회장 또한 암살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이용구는 죽지 않고 부상만 입었다고 하네요
이들은 봉천성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에도 폭탄을 던진 후 일본 고관들이 자주 출입하는 고급 조선요리점 금정관에서 활동자금을 받다가 발각되면서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인 결과 현장에서 김광추는 총에 맞아 순국했으며 김병현과 박희광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926년 12월에는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자결을 시도했지만 총알이 빗겨나가면서 일본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죠
이후 악명높은 일제의 형사 미와의 심문을 받던 중 당당하게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순국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활동속에서 김원봉 등의 의열단원들은 소규모 투쟁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좀 더 전략적이고 군사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김원봉과 윤세주를 비롯한 의열단의 핵심 단원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면서 의열단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죠
마지막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존함뒤에 붙는 열사와 의사, 지사, 투사의 차이에 대해 알려드려볼까 하는데요
먼저 '열사'는 나라를 위해서 맨몸으로 저항하다가 죽음으로써 높은 지조를 나타낸 사람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관순 열사와 민영환 열사 등이 있죠
'의사'는 무력으로 저항하다 의롭게 죽은 사람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 등이 있는데요
'지사'는 직접적인 투쟁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지식과 사상, 의지 등을 적극적으로 퍼뜨린 사람으로 신채호 지사, 박은식 지사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투사'는 열사와 의사, 지사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주로 앞장서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가리킬때 많이 쓰이죠
지금까지 의열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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