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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김정일의 난잡한 사생활과 그의 여자들

by 사탐과탐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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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난잡한 사생활과 그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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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나라의 권력을 손에 틀어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치스럽고 난잡한 생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뒤를 이은 북한의 두 번째 권력자 김정일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세기의 독재자 김정일의 변태스러운 사생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970년 초 김정일은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 전역에서 미모를 갖춘 여성을 선발해 김일성 별장에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하죠

김정일은 1974년 무렵부터 자기의 측근들과 비밀파티를 가졌는데 당내의 주요 자리를 자기 사람들로 채우고 자신을 따르는 친위대를 만들기 위해 파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전직 기쁨조로 일했던 북한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기쁨조 안에는 행복조와 만족조, 가무조가 있는데 만족조는 성적으로 만족을 주는 조이고 행복조는 안마 등을 해서 피로를 풀어주는 조였으며 댄서나 가수 등이 가무조에 속해있었다고 하죠

기쁨조로 선발되면 6개월 정도 교육을 받는데 만족조는 술자리에서의 시중과 성적 봉사에 필요한 예절과 기교를 행복조는 피로회복을 위한 전문 기술을 가무조는 가창과 율동 등을 교육받는다고 하는데요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기쁨조에 들어간 여성들은 물질적으로는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16살의 어린 나이로 기쁨조에 뽑혀 김정일의 여자로 살아야만 했던 탈북자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 기쁨조'에 들어간 후부터 김정일의 허락 없이는 다른 사람과의 연애는 꿈도 꿀 수 없으며 일을 하면서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해 알게 된 경우에는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억압된 생활을 해야만 했죠

 

그리고 김정일의 기쁨조는 어린 여성들만을 고집하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다 나이가 차거나 병든 여성들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나올 수는 없고 늙어 죽을 때까지 김정일과 그 무리들의 노예로 살아야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5년 정도의 기쁨조 생활을 한 뒤 25세 정도가 된 여성들은 국가에서 정해주는 남자와 결혼하거나 혹은 고위 간부들의 첩 노릇을 하게 되죠

 

기쁨조 출신 여성들에게 다른 이성과 교제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오직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서만 교제와 결혼이 가능한 것입니다

기쁨조 출신으로 2000년 탈북해 서울에서 평범한 직장여성으로 지내고 있다는 한 여성도

"북한에서의 악몽을 생각하면 결혼해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북한에서는 많은 친구들이 성의 노예로 지내고 있다"라는 고백을 했다고 하네요

김일성의 경호원으로 1년 6개월을 일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기쁨조는 1975년도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죠

처음에는 인민국 협조단이라는 단체에서 18명 정도를 뽑았는데 실력보다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성들이 주로 뽑혔다고 합니다

 

다만 북한내에서 불리는 실제 명칭이 기쁨조는 아니었으며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씨의 증언에 의하면 간부들끼리는 비공식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공연실'이라 불렀다고 하죠

김일성은 특히 이들이 스트립쇼를 하는 모습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김정일 또한 자기 아버지에게만 미인들을 바치기에는 아까웠는지 예술단에서 예쁜 사람들만 뽑아 자신의 주위에도 뒀다고 하죠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모두 기쁨조를 신명나게 즐긴 셈입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여자들을 희롱했지만 그중에서도 부인 대우를 받은 사람들은 5명 정도라고 하는데요

첫 번째 여성으로 짐작되는 홍일천은 김정일의 대학 동기로 1965년 김정일과 결혼해 3년 뒤에 딸 김혜경을 낳았지만 홍일천이 김정일과 결혼한 후에도 정치활동을 이어나가려 하자 이로 인한 불화가 생겨서 3년 만에 이혼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다만 홍일천은 다음에 소개할 4명의 부인들과 달리 이들의 결혼생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손에서 나온 명확한 증언이나 물증이 없어서 정말로 김정일과 부부생활을 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두 번째 여성인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5살 연상의 배우로 처음 만났을 당시 그녀는 김정일 친구의 형인 리평과 결혼한 상태였는데요

하지만 김정일에게 성혜림이 유부녀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얼마 후 성혜림은 아이까지 있는 상태로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죠

 

이후 성혜림은 1969년에 배우 활동까지 그만두고 김정일이 세운 200평 규모의 15호 관저에서 비밀 동거를 하게 됩니다

이후 성혜림은 김정일의 첫째 아들인 김정남까지 낳게 되죠

하지만 당시 김정일은 자신의 삼촌이자 정적인 김영주와 후계자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흠 잡힐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유부녀와 바람을 피우고 사생아까지 낳은 사실은 절대로 알려지지 말아야 할 비밀이었습니다

 

때문에 동거녀 성혜림과 김정남의 존재는 김정일의 여동생과 최측근 부하들 이외에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죠

그리고 비밀 유지를 위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죄 없이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들은 성혜림의 친구였기 때문에 김정일과의 동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 가족이 요덕 수용소로 끌려간 뒤 탈북한 김영순이 쓴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라는 책에 나와 있다고 하네요

 

훗날 김영숙과 공식적으로 결혼을 한 후에도 김정일은 두 번째 동거녀인 성혜림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했지만 성혜림은 김정일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죠

 

결국은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로 떠난 뒤 계속 그곳에 머물다가 2002년에 사망했습니다

세 번째 여성은 김일성의 정식 허락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 공식 부인 김영숙인데요

 

하지만 김영숙씨는 김정일과의 사이에 딸만 두 명을 두면서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으로 전해졌죠

김영숙은 김일성이 인정해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이외에는 부인으로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 셈입니다

 

네 번째 여성은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인데 그녀는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던 1970년 중반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한 이후 사망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김정일과 함께 살았다고 하죠

고영희는 이목구비가 반듯한 얼굴로 키도 크고 스타일이 좋은 미인이었는데 춤 솜씨도 뛰어나고 무대에서의 인상도 화려해 주변에서 높은 평판을 받고 있었고 김정일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반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북한 상층부에서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으며 김정일과 함께 살았던 고영희는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하죠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는 자서전에서 "고영희를 알고 난 뒤부터 김정일의 여성 편력이 줄었다"라고 밝히며 고영희에 대한 김정일의 애정이 각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영희는 김정일과 사이에 2남 1녀를 뒀는데 이중 한 명이 현재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이라고 하죠

김정일은 2006년에 고영희가 암으로 사망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비서 출신인 김옥과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김옥은 1964년생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980년대 초부터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의 기술서기로 활동했는데요

김옥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병상을 지키며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정일이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에는 정식으로 결혼했을 것이라는 추측설도 흘러나오고 있죠

 

특히 김옥은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과 오찬 할 때 함께 자리했고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 직후 김정일·김정은이 북한 새 지도부와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등장해 북한의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다섯 명의 여성 외에도 김정일은 1977년부터 매년 시·도의 예술전문학교 졸업반 여학생 가운데 미인 30여 명을 선발해서 평양적십자병원 의대에 있는 1년 과정의 특설 반에서 기본 간호교육을 시키고 홍콩·마카오 등지에 파견해서 안마술까지 단기간 연수를 시킨 후 자신이 최종 심사한 여성들을 집무실이나 공관, 별장 등에 배치했다고 하죠

 

또 영화배우 유진희와 홍영희, 채수련 등 10여 명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자신의 전용타자수, 담당간호사 등 숱한 여자들을 희롱했습니다

김정일은 변태적인 기질이 다분해서 주말마다 각종 연회를 열고 무용수들에게는 나체로 춤을 추게 한 후에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의 참석자들에게 이들을 애무하도록 시키는 등 각종 변태적인 행위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김정일은 최소한 10명의 사생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죠

러시아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서 1997년 9월 23일에 이런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이 신문은 '수령과의 잠자리'라는 제목 아래 기쁨조를 비롯한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여성 편력을 소개한 뒤 "우리(러시아) 여성들도 김정일의 관심을 비켜가지 않았다

러시아 여성 연예인들이 엄청난 공연료를 받고 김정일의 개인손님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김정일에게는 수많은 사생아가 있으며 확인된 아이만 하더라도 10명 정도"라고 보도했죠

 

지금까지 김정일의 난잡한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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