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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사약에 대한 기막힌 에피소드. 배터지게 먹어도 죽지 않았던 사약.

by 사탐과탐 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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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에 대한 기막힌 에피소드 배 터지게 먹어도 죽지 않았던 사약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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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약이라고 하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병을 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약이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조선시대 죄인들에게 내려졌던 사약이죠

오늘은 이 사약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들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사약이란 조선시대에 왕족 또는 사대부가 죄를 지었을때 왕이 그에 대한 벌로써 내리는 극약 (독약보다는 약하지만 적은 분량으로도 위험한 약)을 말하는데요

목을 베거나 목을 매달아 죽이면 간단하고 빠르게 끝낼수있음에도 굳이 번거롭게 약까지 달여가며 죄인을 처벌한 이유는 참수형이나 교수형은 공개된 장소에서 구경꾼들이 보는 앞에서 죽는 것인데다 과거의 공개처형은 죄인의 웃통을 까거나 아예 다 벗긴 후에 형장에 며칠씩 묶어서 세워둔 뒤에 집행하는 등 그 모욕과 고통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해서 머리카락도 부모가 준 것이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던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목을 베거나 사지가 뜯기는 식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인간답게 죽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이러한 형벌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가문에게도 매우 치욕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명예를 지켜주는 선에서 죽음을 내리는 경우에는 죄인에게 사약을 마시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기 때문에 사약을 통해 죽는 경우는 국왕의 허가까지 내려지면서 사형이 확정되기는 했지만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것까지는 아니거나 다소 억울한 면이 있는 죄인들이었죠

심지어는 사약이 내려왔다고 해서 꼭 그것을 먹고 죽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방법을 본인이 선택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베나 비단등으로 목을 매거나 자신이 갖고있던 칼이나 독으로 자결하는 것도 가능했죠

그래서 이 사약을 내리는 형벌의 정식 명칭은 죽음을 명령한다는 뜻의 사사(賜死)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사약의 경우는 받는 사람도 저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오히려 사약을 내려준 왕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죠

 

비록 판결에 조금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점까지 고려를 한끝에 그나마 곱게 죽으라고 왕이 사약을 내려 사형집행을 하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연산군 시대에 처형된 전 영의정 윤필상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이라는 명을 내릴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말하고는 한양을 향해 두번 절한 후 준비해 둔 비상(독성이 강한 물질)을 꺼내 술에 타서 마셨다고 하죠

 

하지만 그러고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서 명주이불을 가져와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합니다

사약은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는 기관인 내의원에서 만들었는데 당시에도 제조법이 철저히 비밀로 숨겨졌을뿐만 아니라 그 성분에 대해 정확히 기록돼있는 문서조차 없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사약의 정확한 제조법은 알수가 없다고 하네요

 

다만 여태까지 남아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사약을 먹었을 경우 온몸에 열이 나서 죽는다는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에 열을 내는 성질을 가진 부자 계열의 약재 초오와 초두등이 들어갔을 거라 짐작된다고 하죠

일부 의견중에는 사약에 독성분은 없었고 일반적인 한약을 데워서 준 것인데 약재가 가지고 있는 화학적 성분이 빠르게 흡수되는 부작용으로 사망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주장은 사실과는 전혀 다른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합니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데워서 먹는 보약은 거의 다 사약이 될수 있다는 소리인데 정말로 그렇다면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한의원보다 경찰서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겠죠

그리고 그당시의 사약 또한 지금의 한약처럼 쓴맛이 많이 났다고 하는데요

야사에 따르면 중종시절의 권신 김안로는 사약을 마신 후에도 죽지 않고 한참동안이나 살아있었는데 사약을 계속 마시다 입이 너무 써서 생밤이라도 좀 갖다달라는 요구를 했고 가뜩이나 기다림에 지친 집행관들은 화를 내며 그의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처럼 사약을 몇 사발이나 마셔도 죽지 않는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넉넉하게 여러잔을 챙겨갔다고 하죠

그리고 아무리 사약을 먹어도 죽지 않는 경우에는 활에 쓰이는 줄로 목을 매서 죽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조선의 6대 국왕인 단종또한 사약을 마시고 죽은게 아니라 형을 집행하는 영월 관아의 관원이 활줄을 풀어 목을 졸라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중종때의 문신 임형수는 당시 조정의 실세였던 윤원형에게 미움을 사면서 을사사화때 유배를 가게 되었고 훗날 사사명령을 받게 되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가 사약을 가져온 의금부 서리에게 그대도 한 잔 마시겠는가?라며 사약을 권했다는 일화가 있죠

또 을사사화때 화를 당한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놓은 '유분록'에 의하면 임형수는 큰 사발에 술을 가득 탄 사약을 무려 16사발이나 마셨지만 그래도 죽지 않아 2사발을 더 마셨음에도 끝내 숨이 끊어지지 않자 어쩔수 없이 관원들이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야사에 따르면 평소 호탕한 성격이었던 임형수는 형을 집행하러 온 관원들과 태연하게 농담 따먹기를 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사약을 먹고도 죽지않는 임형수의 모습을 본 관원들이 그의 목을 조르려 하자 남들에게 추하게 혀를 길게 빼고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의 벽에 구멍을 뚫고 밧줄을 집어넣으면 자신이 들어가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 테니 그 줄을 당겨 목졸라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죠

 

얼마 후 집안에서 들린 '당기시오'라는 임형수의 말을 신호로 병사 2~3명이 죽어라 밧줄을 당겼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낀 병사들이 한참 후에 들어가 보니 밧줄에 걸린 건 임형수의 목이 아니라 목침(나무베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벙찐 표정의 금부도사 일행을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으며 그 이후에는 장난치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하네요

숙종대의 송시열 또한 사약을 먹었는데도 죽지를 않아서 그의 입에 상처를 내고 거기로 사약을 부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송시열이 사약 두 사발을 먹고도 끄떡없는 모습을 보이자 보통의 경우라면 관원들이 활줄로 그의 목을 졸라야 했지만 원래 사회적 명망이 있던 인물들은 함부로 목졸라 죽이기가 힘들었는데요

게다가 송시열을 추종하는 문인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관원들 입장에서도 차마 그의 목을 매서 죽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이에 금부도사가 송시열에게 제발 죽어달라고 애원한 끝에 결국 그의 입에 상처를 내고 사약 3사발을 연속으로 더 들이붓는 방법을 택한 후에야 그를 죽일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약에 관한 일화중 가장 흥미로운 내용중 하나가 바로 경종 때 신임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은 조태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야사에 따르면 조태채는 사약을 마시고 죽었지만 그의 충직한 집사 홍동석 덕분에 며칠이나마 더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조태채의 집사 홍동석은 선혜청의 서리로 있었는데 어느날 죄인 하나를 유배 보낸다는 조서를 쓰라는 명령을 받고 확인해보니 그 대상이 다름아닌 자신의 상전 조태채였죠

그는 상전을 배신할 수 없다며 그자리에서 붓을 집어던진 후 절대 조서를 쓸수없다고 버틴끝에 잔뜩 두들겨 맞은후 파직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홍동석은 그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배지인 진도로 떠나는 조태채를 스스로 따라나섰으며 도착한 후에도 계속해서 조태채를 돌봤다고 하죠

그후 조태채에게 결국 사사 명령이 내려지자 소식을 들은 아들 조관빈은 부친과 만나고자 급히 진도로 출발했지만 사약을 전해주러 간 금부도사가 그보다 먼저 도착을 하게 됩니다

 

이에 홍동석은 조태채가 있던 집의 대문앞을 막아서고는 지금 저희 어르신의 아드님이 급히 오고 있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했죠

하지만 금부도사는 그의 간곡한 청을 거절했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던 홍동석은 냅다 사약단지를 뒤엎어버렸습니다

 

사약 또한 왕이 내린 하사품으로 그것을 뒤엎은것은 어찌보면 대역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부도사 일행은 크게 화를 내며 홍동석을 실컷 두들겨팼죠

하지만 과정이 어찌됐든 금부도사와 수행원들도 관리부실로 어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으니 처벌을 받을것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고민끝에 그들은 진도로 가는 바닷길이 워낙 험해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사약을 물에 빠뜨렸다는 거짓보고를 올렸고 그렇게 새 사약이 오는 며칠 동안 조태채는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홍동석의 충심에 크게 감격한 조태채는 아들에게 그를 형제처럼 대하라는 유언을 남긴 다음

사약을 마신뒤 세상을 떠났고 조관빈은 유언대로 홍동석을 형제처럼 살갑게 대했으며 조태채의 제사를 지낼 때도 꼭 참석시켰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사약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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