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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경순왕. 뛰어난 처세술로 신라를 왕건에게 갖다바쳤지만 죽을때까지 평가도 좋고 잘 먹고 잘 살았던 왕

by 사탐과탐 202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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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처세술로 신라를 왕건에게 갖다바쳤지만 죽을때까지 평가도 좋고 잘 먹고 잘 살았던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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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공양왕 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왕조의 마지막 군주같은 경우 좋지못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비록 자신의 대에서 신라가 멸망하긴 했지만 올바른 판단을 내리면서 불필요한 백성들의 희생을 막고 자신 또한 다른 항복군주들에 비해 나쁘지 않은 말년을 보냈다고 하죠

 

신라 최후의 군주였던 그는 과연 어떤 왕이었을까요?

 

경순왕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가 860년대생인 신라 49대왕 헌강왕의 외손자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 항복한 이후로도 40년이상 살아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략 900년정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무려 80세 가까운 나이까지 장수를 한 셈인데요

당시 신라는 54대 왕인 경명왕 때부터 고려에 의지해 후백제를 견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의 동생인 경애왕 또한 형의 친고려 정책을 이어갔기 때문에 927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때 군사를 보내 고려를 돕기도 했죠

그런데 927년 11월 후백제의 견훤이 갑작스럽게 신라의 수도 금성을 기습해서 경애왕을 붙잡은후 그에게 일방적으로 자살을 강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견훤은 경애왕의 이종사촌 동생인 김부를 왕위에 세웠으니 그가 바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었죠

자신의 의지로 왕이 된것이 아니라는 점은 어찌보면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과 비슷하다고 볼수있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당시 신라의 주적이나 다름없었던 견훤이 내세운 왕이었다는 점에서 신라인들이 경순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이미 52대왕인 효공왕의 죽음이후 남아있는 김씨중에서는 경순왕이 그나마 가장 왕위에 가까운 혈통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크게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네요

 

경순왕은 즉위 후 억울하게 자살당한 경애왕의 시신을 수습하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통곡한후 그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당시 신라인들에게 가장 큰 적이라고 할수있었던 견훤에 의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은 전대의 왕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견훤은 자신이 왕으로 내세운 경순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에도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해 왔습니다

워낙 고려와 치열하게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라를 아예 점령해버릴 여력까지는 없는 견훤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계속 병력을 보내왔고 후백제가 여러차례 침공해오는것만으로도 신라사람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죠

 

경순왕은 신라가 이미 많은 영토를 잃으면서 국력이 약해진 상황속에서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기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난폭한 견훤보다는 왕건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930년 사실상 후삼국 시대 최후의 승자를 결정짓는 전투라 볼수있었던 고창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며 힘의 균형이 깨지자 경순왕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의 강릉시에서부터 울산광역시까지 해당하는 동해안 지역의 고을을 모조리 고려에게 바치며 고려의 편에 서겠다는 뜻을 보였는데요

 

이제 남은 신라의 영토라고는 수도인 서라벌과 그 주변지역 정도뿐이었죠

이후 왕건이 직접 경주지역까지 행차해 성까지 쌓으면서 무력시위를 하자 그때까지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있던 나머지 지방호족들도 더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모두 왕건에게 항복을 하게 됩니다

다음해에 신라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우리는 고려를 따르겠다고 선언했는데요

 

그전까지만 해도 고려왕 왕건이 신라왕의 신하임을 자처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돼버린 것이죠

그 해 2월, 경순왕이 왕건을 서라벌로 초청했고 왕건도 기꺼이 그의 청을 받아들여 신라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후 벌어진 연회자리에서 927년에 견훤이 침략해온 얘기가 나오자 왕을 포함한 신라의 관료들은 참담한 심정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죠

 

이를 본 왕건은 경순왕과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말과 비단, 보석등을 선물로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왕건이 진작에 무력을 사용했다면 얼마든지 신라를 점령할수 있었지만 그는 신라가 수백년간 한반도를 지배했던 통일국가라는 상징성이 있기때문에 군사들을 동원해 강제로 합병을 했다가는 백성들의 원성을 들을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때문에 경순왕과 신라가 스스로 자신의 아래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치밀하게 판을 짰고 그의 기다림은 서서히 결실을 보게 됩니다

사실상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후백제와 고려의 힘겨루기를 몇년동안 지켜보기만 하던 경순왕은 935년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폐위당한 후 금산사에 갇히는 신세가 되자 고려에 완전히 항복할 결심을 하게되죠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935년 10월 경순왕이 고려로 귀순하는 것에 대해 신하들과 논의하자 신라 신료들중 일부는 귀순에 찬성했고 일부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신라에는 이미 희망이 없으며 고려의 왕건이 새로운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았는데요

 

그래도 신라가 천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이어져내려왔던 나라인데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가 힘이 다해 항복하는것은 몰라도 스스로 나라를 가져다 바치는것은 있을수없는 일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은 지배층이었던 왕족과 귀족들에게는 아름답게 비춰질수도 있지만 막상 주변 나라들과 전쟁이 벌어지면 그 고통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것은 바로 백성들이었죠

 

이후 고려에 항복하는것을 주제로 한 화백회의가 열렸는데요

원래 화백회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해야만 결정을 내렸지만 이때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가 아닌 절반이상의 표가 간쪽으로 결정하는 다수결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결국 고려에 나라를 넘기는 것으로 결정이 났죠

경순왕이 어떠한 마음에서 그런 결정을 한것인지는 알수없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결정덕분에 신라의 백성들은 전쟁의 참혹한 불길을 피해갈수 있었습니다

 

경순왕은 시랑 김봉휴를 고려 태조에게 보내며 항복을 청했고 고려 태조 왕건은 기꺼이 그의 항복을 받아들였죠

그렇게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라가 멸망했습니다

항복에 반대하던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통곡을 하면서 경순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개골산(현재의 금강산)에 들어갔죠

이후 마의태자는 삼베옷을 입고 풀뿌리를 캐어 먹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비록 경순왕이 그전부터 꾸준하게 항복의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신라의 항복을 두고 드디어 올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200년넘게 한반도를 지배했던 신라의 항복은 고려가 한반도의 정통성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는데요

때문에 경순왕의 귀순과정은 고려사에도 자세히 기록돼있다고 합니다

 

935년 11월 경순왕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서 고려의 송악(지금의 개성)으로 향하자 화려하게 장식된 수레가 30리 넘게 이어져 도로가 가득찼으며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마치 담장을 두른듯 길게 이어졌다고 하죠

경순왕이 고려 신하들의 안내를 받아 송악에 도착하자 고려 태조 왕건이 직접 나와 그를 맞이하며 위로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왕건은 경순왕에게 "신라왕께서 과인에게 나라를 주셨으니 그것은 매우 큰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장인과 사위의 연을 맺고 앞으로도 좋은관계를 이어가려 합니다"라는 말을 꺼낸 후 자신의 큰딸과 아홉째 딸을 경순왕에게 시집보내며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되었죠

 

이후 왕건은 경순왕을 정승공으로 봉하고 해마다 1천섬의 녹봉을 줬으며 그를 따라온 관원과 장수들에게도 모두 관직을 내렸습니다

이후 경순왕은 자신의 첫째 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이자 고려 제5대 왕이 되는 경종에게 시집보내면서 태조 왕건이 죽은 후 경종까지 5명의 왕을 거치는 동안 좋은 대우를 받으며 행복한 말년을 보냈으며 그의 자손들 또한 대대로 번창했다고 하네요

 

경순왕은 이미 가망이 없던 나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 백성들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한 인물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가 또 나약한 인물은 아니었던것이 그가 불필요한 저항을 하지 않았던 대상은 고려뿐이었고 신라의 주적이었던 후백제를 상대로는 할수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가며 끝까지 버텨냈죠

 

왕으로 즉위할 당시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어떻게든 병력을 모아서 고려와 연합해 후백제를 막아낸걸 봤을때 나라를 운영하는 능력 또한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려에게 항복한 시점도 자신들의 가치가 가장 높을만한 타이밍을 잘 골랐기 때문에 외교적인 안목 또한 훌륭했다고 하죠

 

이후로도 뛰어난 처세술을 펼치면서 멸망한 나라의 왕들 중에서는 손에 꼽힐만큼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경순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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