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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백정. 범죄행위와 거친 행동들 때문에 조정에서도 골치아파했던 천민 중의 천민

by 사탐과탐 202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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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행위와 거친 행동들 때문에 조정에서도 골치아파했던 천민 중의 천민 백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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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천민은 아니었지만 천민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뱃사공이나 묘지기 어부, 광부, 광대 등 이른바 신량역천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요

 

이들은 비록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지만 하는 일이 천하다는 이유로 천민 취급을 받았다고 하죠

그런데 그시절 이 신량역천층보다 더 천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백정입니다

 

백정이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 있었던 특정계층을 부르는 호칭인데요

현대인들이 흔히 알기로 백정들은 옛날에 소나 돼지 등 동물을 잡고 해체해서 파는 일을 했던 도축업자로서 조선시대에는 천민인 노비보다 더 천대받았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에 백정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사실 도축업자들이 역사적으로 백정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세종 이후의 일이었으며 그전에는 백정이 일반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세종 이후에도 도축업자들을 백정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백정이 다 도축업자라는 말은 아니었죠

정리해보자면 도축업자 또한 백정에 속해있을뿐 백정이란 도축업 이외에 다른 직업군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단어였다고 하네요

 

좀더 자세히 파고들자면 백정은 어떤 직업들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혈통 혹은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백정은 중국의 수나라에서 온 말로 당시에는 그냥 일반 백성을 뜻하는 단어였다고 하죠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백정들의 시초는 바로 고려시대 화척이라고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이들은 고려시대부터 악명 높은 범죄집단으로 집단으로 떠돌이생활을 하며 강도질과 방화, 살인 등 각종 범죄를 저질렀죠

고려 말에 홍건적들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그들이 침략하기 쉽게 길안내를 해주기도 했으며 자신들이 왜구인척 꾸며서 민가를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지도 않았고 노비와는 달리 한곳에 매여 살지도 않았죠

화척들은 주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사냥이나 도축, 고기판매업등의 활동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하네요

 

고려사에서는 고려가 후백제를 정벌했을때 고려에 굴복하지 않은 대가로 압록강 밖으로 쫓겨난 자들이 화척이라 기록돼있다고 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른후 밝혀진 사실은 이들이 고려인이 아닌 북방 민족 출신으로 고려에 포로로 잡힌 거란인의 후손들과 동북지방에서 흘러들어온 여진인들 그리고 고려에 귀화했지만 끝내 정착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이생활을 하게된 유목민족 출신들의 연합체로 짐작됩니다

 

고려 영토에서 살던 이민족들인 거란인이나 여진인들이 고려 사회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지킨 것이죠

이들은 유목민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농경민들보다 잘하던 사냥과 축산, 도축 및 고기판매업을 주로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마을을 만들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백정을 기술자로 존중해 주었고 유럽에서도 일부 계층만이 그들을 안 좋게 볼 뿐 사회 전체 분위기는 백정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우에는 종교적으로 깨끗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 때문에 종교 지도자인 랍비가 백정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죠

 

한국에서 유난히 백정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것은 백정 대다수가 이민족의 후예였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지않은채 자신들 민족의 전통만을 강조했던것도 모자라 온갖 범죄행위를 일으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조선 초 세종은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 화척들까지 모두 양민으로 받아들이며 국력을 키우려 했는데요

 

때문에 화척들을 백정이라고 부르게 하면서 이들이 조선사회에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문제는 이들의 생활상이 당시 조선의 일반 농민들과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이죠

대부분이 유목민의 후예들이다보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온 부족민들이 말을 타고 떠돌이생활을 하던 집단이었는데 이들을 강제로 정착을 시키다보니 익숙하지도 않은 농사일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를줄 아는 능력을 살려서 강도질을 하거나 다른 범죄들을 서슴없이 저지르기 시작했죠

그렇게 주변사람들에게 계속 피해를 입히다보니 결국 기존의 일반 백정(일반 백성)들은 자신을 구백정이라 부르고 화척들은 신백정이라 구분하면서 그들과 자신들이 같은 취급을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구백정은 그냥 백성이라 부르게 되고 백정이란 말은 오직 화척들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됐죠

결국 백정들을 양민으로 만드는데 실패하면서 세조 대에는 백정들이 도둑이 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묻는 내용이 과거 시험 문제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중종 때는 한양 주변에 백정 도적 떼가 자주 나타나 조정에서 그들을 토벌할 회의가 열리기도 했죠

그당시 강도의 8~90퍼센트가 백정이라고 할 정도였으며 살인 강도범 380명을 조사하니 절반이상이 백정무리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주변인들과 어울려 지내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거친행동과 범죄행위를 계속한끝에 정부에서도 결국 백정들이 그들의 거주지에서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관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하는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했다고 하네요

조선 조정에서는 어떻게든 이들을 일반 백성으로 만들어보려 애썼지만 떠돌이생활과 사냥에 익숙하던 그들은 칼을 다루는데 능숙했을뿐 아니라 말도 잘 탔기 때문에 걸핏하면 산적으로 위장해 농민을 약탈하고 심지어는 관가까지 털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들을 붙잡기도 쉽지가 않았던 것이 관리들이 도적떼의 흔적을 따라가면 백정 마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잘 타고 무기를 잘다루다 보니 관리들조차 백정 마을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백정들이 강도질을 하던 행위는 세종과 문종, 세조시절내내 끊임없이 계속됐다가 중종대가 돼서야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명종대에 임꺽정의 난 이후로는 자취를 감췄다고 하죠

 

하지만 고려시대부터 6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문제를 일으킨 백정들을 바라보는 양민들의 시선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싸늘했다고 합니다

성종시절까지는 백정들외에 양인들도 도축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양에서 도축업을 금지하면서 그때까지 도축업을 하던 양인들이 모두 도축업을 그만두게 되는데요

 

하지만 당시 백정들은 법같은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그들이 도축업을 전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백정들이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기는 했지만 양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냈기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어진 양인들이 일부러 백정이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리고 당시 도축업이 이익이 많이 남는 편이었기 때문에 능력만 있으면 돈도 많이 모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소의 경우에는 허가된 소 외에는 잡을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몰래 소를 잡아서 고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았고 그외에 양반집 잔치같은 대형 행사에 불려가기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지만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다보니 입고 다니는 옷이나 집을 사는데 규제를 받았기 때문에 모아둔 돈을 딱히 쓸수도 없었다고 하죠

그래서 동네마다 부유한 백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제한에서 풀려난 백정들은 돈을 마음껏 씀과 동시에 백정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백정 일을 하면서 모은 거액을 보통학교에 기부했으며 만민공동회에서 연설까지 하고 훗날 교회 장로와 은행원이 된 박성춘 그리고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박성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중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양의사가 되어 독립운동까지 한 박서양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인데요

 

이후 백정들은 일제강점기에 형평사 운동이라 불리는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까지 벌이게 됩니다

그중 장지필이라는 사람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양인들과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어서 가정교사와 공부를 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물이었죠

이후 백정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형평사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10년에 걸쳐 형평사 운동이 계속됐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사람들의 편견을 없애지는 못했죠

때문에 이후에도 그들이 받는 대우는 비슷했고 6.25전쟁을 겪으며 한국사회의 모든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분위기가 생기고 나서야 도축업자들에 대한 차별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백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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