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단심 인영왕후의 실제 모티브이며 비운의 왕비 단경왕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남편 진성대군은 왕이 되었지만 자신은 신하들에 의해 남편과 생이별 하게된 중종반정 최대 피해자이죠
역대 조선의 왕비들중 가장 오랫동안 왕비자리를 지켰던 사람은 영조의 비였던 정성왕후로 무려 33년간 왕비자리에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녀와는 정반대로 겨우 7일밖에 안되는 시간동안만 왕비자리에 있다가 심지어 왕비 즉위식을 하지도 못한채 폐위되며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단경왕후인데요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지금부터 함께 보시죠
단경왕후 신씨는 1487년 익창부원군 신수근과 청주 한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3살이었던 1499년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에게 시집을 가게되죠
그녀의 할아버지 신승선은 연산군의 장인이었으며 아버지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자 좌의정 벼슬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그녀의 고모는 연산군의 정비인 폐비 신씨였던데다 외가쪽으로도 왕실과 깊게 연관이 되어있는 등 한마디로 당대 조선에서 아주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었죠
때문에 별일이 없었다면 그녀는 아주 부유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수 있었지만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왕위에 올린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그녀의 삶은 크나큰 비극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1506년 9월 중종반정을 일으킨 세력이 거사를 일으키기 앞서 자신들이 받들어모실 진성대군을 호위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병사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진성대군은 갑자기 병사들이 자신의 집을 에워싸자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낸것이라 오해하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죠
하지만 이때 부인 신씨가 그를 말리며 "만약 군사들이 타고있는 말의 머리가 이 집을 향해 있으면 우리 부부가 죽는길밖에 없겠지만 반대로 말 머리가 궁을 향해 있으면 반드시 공자를 호위하려는 뜻이니 이를 알아보고 난 뒤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라며 그를 말렸습니다
잠시후 사람을 보내 살핀결과 말 머리가 궁을 향해 있는것을 보고 비로소 진성대군도 안심하며 문을 열고 무사들을 맞이했다고 하죠
중종반정을 일으킨 핵심인물중 하나인 박원종은 신씨의 아버지이자 연산군의 처남이었던 신수근에게도 반정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지만 신수근은 세자저하가 총명하시니 세자를 믿어보자라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는날 반정세력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이후 중종반정이 성공하면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아내인 신씨또한 자연스럽게 중전이 되었지만 그녀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인데다가 반정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 반정 세력들에 의해 왕비가 된지 1주일만인 9월 9일에 폐위되었죠
그렇게 그녀는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재위기간을 가진 왕비가 됐습니다
중종실록이나 연려실기술에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기록돼있는것을 봤을때 중종과 단경왕후의 사이가 꽤 좋았던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에 처음에 중종은 어떻게 조강지처를 버릴 수 있냐며 망설였지만 반정 공신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신씨를 폐출했다고 하네요
원래 조강지처를 내치는것 자체가 유교문화권인 조선에서는 금기사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원칙대로라면 반정공신들이 중종에게 그런 요구를 할수없었겠지만 아버지 신수근이 살해당하고 고모이자 연산군의 정비였던 신씨마저 폐위당하면서 친정 전체가 역적으로 몰리자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죠
많은 역사가들이 단경왕후는 단 하루도 왕비였던적이 없으며 훗날 왕비로 높여진 추존왕비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고있는데요
정식으로 왕비가 되려면 책봉식을 치러야 하는데 단경왕후는 중종반정이 일어난 당일 바로 중종과 강제로 헤어져 제대로 된 책봉식도 치르지 못한채 쫓겨났으며 7일이라는 기간도 단경왕후가 왕비로 지낸 시간이 아니라 중종이 아내를 내치지 않으려고 버틴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반정때문에 친정식구들이 모두 목숨을 잃고 자신은 중종과 강제이혼을 당한채 궁밖으로 쫓겨나면서 중종반정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죠
그녀가 궁밖으로 쫓겨난 바로 다음날 중종은 신하들로부터 새로운 왕비를 책봉하라는 청을 수락했고 중종반정의 1등공신인 박원종의 조카였던 장경왕후를 왕비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은 후 중종 10년에 세상을 떠나자 일부 대신들이 폐위되었던 단경왕후를 다시 복위시키자는 주장을 했죠
그런데 정작 중종이 그녀를 복위시키는데 태클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는 과거 단경왕후의 폐위를 주장했던 박원종과 성희안, 유자광 등이 모두 죽은후였기 때문에 중종의 의지만 있었다면 신씨를 복위시키는것이 가능했지만 장경왕후가 세자인 인종을 낳고죽은 바람에 만약 신씨를 복위시켜서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경우 중종의 첫번째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에게서 얻은 아들을 정실에게서 난 맏아들인 적장자로 봐야 되는지 아니면 후처인 장경왕후 윤씨가 낳은 인종을 적장자로 봐야 하는지의 문제로 큰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이 문제는 왕실의 후계자를 정하는데 있어서 생각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중종입장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불운이 겹치며 결국 단경왕후의 복위는 물거품이 되었고 이후 신씨는 자신의 사가에서 마음대로 외출도 하지못하는 삶을 살다가 중종이 죽은지 13년후인 1557년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죠
당시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오래 산편이기는 했지만 20대의 젊은나이로 궁에서 쫓겨난 이후 자신의 집밖을 함부로 나가지도 못하고 평생을 혼자 살았을 그녀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겠죠
게다가 그녀의 가문또한 역적으로 몰리며 가족들 대부분을 잃은 그녀의 말년은 참으로 쓸쓸했을 것이라 짐작되네요
지금까지 단경왕후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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