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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석전. 삼국시대 부터 존재한 사람이 목숨까지 잃기도 했던 살벌한 민속놀이

by 사탐과탐 2022.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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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척희나 석척으로 불렸던 석전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는데요
이 놀이를 하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깨지기도 했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기도한 살벌한 민속놀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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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부터 한국에서 의사생활을 했던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가 조선의 생활상을 기록한 '상투의 나라'라는 책을 보면 자신이 조선에 온 첫해에 사람들이 두패로 나뉘어서 서로에게 돌던지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놀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워낙 진지하게 싸우다보니 심하면 사망자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대체 우리 조상님들은 언제부터 이런 위험한 놀이를 즐겼던 것일까요?

 

이 돌던지기 놀이의 정확한 이름은 '석전'이며 조선시대에는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에 주로 했던 놀이라고 합니다

수나라의 역사서인 '수서'의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인들이 음력 1월1일에 대동강 주변에 모여 좌우 두편으로 나뉘어서 서로 돌을 던지며 싸웠고 국왕은 가마를 타고 그모습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는걸로 봐서 석전은 최소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죠

 

또 '고려사'에는 우왕 13년 5월에 왕이 석전놀이를 연암에서 보고 그 이튿날에도 석전 구경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봤을때 고려는 고구려와 달리 5월 단오에 석전놀이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인 이성계부터 평소 석전을 구경하기를 즐겼다고 하죠

그리고 태종 이방원은 병에 걸린 와중에도 석전을 구경하겠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 놀이를 구경하기도 할정도였으며 놀이도중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으면 어의를 보내 치료해주고 잘한 선수에게는 직접 상을 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세종의 경우 처음에는 석전놀이를 하는것을 그냥 뒀지만 많은 백성들이 다치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는 이 놀이를 금지시켰는데 얼마 후 양녕대군의 아들들이 몰래 석전놀이를 하다 사람을 죽여서 그들을 귀양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석전놀이 문화자체를 아예 뿌리뽑았던것은 아니었는지 이후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석전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평민들끼리 이 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계속해서 볼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석전놀이를 묘사한 기록을 보면 "이 석전이 한창 심할 때는 함성이 천지를 울리는 것 같고 사람들은 이마가 깨지고 팔이 부러져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이 놀이를 금지하기도 했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당시 석전놀이가 어느정도 인기였는지를 보여주죠

 

이상의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석전은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시작돼서 고려와 조선조 초기에는 더욱 유행했음을 알수 있는데요

그리고 석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전쟁에 대비해서 미리 집단전투를 연습하는 의미도 담겨있는 실전적인 성격의 놀이였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주로 돌을 던지며 싸우는 석투반이나 석투군 등의 군대조직이 편성되었을 정도였고 조선 중종3년 삼포왜란이 일어났을때는 안동과 김해지역의 석전선수들을 모집해서 왜인들의 난동을 막기도 했다고 하네요

석전놀이는 들판에서 한마을 또는 한 지방이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수백걸음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돌팔매질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처음에는 먼 곳에서 던지다가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면 점점 가까운 거리로 접근해서 돌을 던졌다고 하죠

 

그렇게 주변의 지형지물뒤에 숨어가며 서로 돌을 던지다가 상대편 마을까지 밀어붙여서 점령하면 승리하는 놀이였다고 하네요

보통 머리에 짚으로 짠 모자를 쓰고 몽둥이를 든채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싸웠는데 서로 돌을 던지고 피하는 투석전과 몽둥이를 들고 싸우는 육박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마치 전쟁처럼 진법을 활용하기도 했다고 하죠

 

구한말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당시 석전에 대해 설명한 기록을 보면 수십수백 명의 남자들이 커다란 짱돌을 서로 던져대며 싸웠다고 하는데 마치 영화에서 조폭들이 집단난투극을 벌이는 장면과 비슷했을거 같네요

건장한 성인 남자들이 온 힘을 다해서 돌을 던져대니 사방에서 머리가 깨지거나 팔다리가 부러지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가끔은 분위기에 취해서 상대편 마을의 집을 부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과격한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어나가기도 했는데 정작 참가한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하죠

실제로 1930년 1월에 석전놀이를 구경하던 운산금광의 미국인 직원 클레어 헤스가 재미삼아 이 놀이에 끼어들어서 상대편을 향해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이 하필 어떤 사람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아버렸고 머리가 터진 사람은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데요

 

클레어 헤스는 죽은 조선인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언제 자신을 찾아와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당시 조선사람들에게 석전놀이는 원래 그런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놀이를 넘어 프로스포츠 형식으로 벌여지는 석전 또한 있었다고 하죠

 

아예 전용 코트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정해진 인원끼리 투석전을 벌였는데 원거리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투석꾼과 몽둥이를 들고 근접전을 위주로 하는 선수 그리고 방패를 이용해 탱커역할을 하는 선수가 리더의 지휘아래 연습된 진형을 짜서 움직이는 등 지금의 프로팀 경기처럼 전략적인 요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고대 로마 검투사들의 경기처럼 경기 도중 뼈가 부러지고 실신하거나 심하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과격함까지 있었으니 지켜보는 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에 석전으로 가장 유명했던 지역은 안동과 김해, 평양 이렇게 세곳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그중 안동의 석전꾼들은 맨손으로 짱돌을 던지는 것을 넘어서 아예 작정하고 상대를 죽이려고 만든듯한 전쟁용 줄팔매를 써서 돌을 날렸다고 하죠

숙련된 선수가 도구를 써서 날린 돌은 시속 140km정도의 속도를 냈을것으로 짐작되는데 이정도면 두꺼운 갑옷을 입은 상대조차 돌멩이 한방에 골로 보낼만큼 위력이 엄청났다고 하는데요

 

앞에서 말했던 삼포왜란때도 제포에 있던 일본인들이 방패를 앞세워 조선 관군의 화살을 막으면서 버티자 이때 안동의 석전꾼들이 나타나 왜구의 돌격을 막을 녹각목을 설치한후 돌팔매질을 시작했고 왜구들은 어떻게 손을 쓰지도 못한채 박살이 났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죽령지역의 방어를 맡은 경상좌방어사 성응길이 안동의 석전꾼들을 비상소집해서 그 지역으로 접근하던 일본군을 격퇴하며 시간을 끌자 초조해진 가토 기요마사가

그들을 피해 문경새재쪽으로 돌아서 가는일도 있었다고 하죠

 

조선 후기에 주로 활약했던 평양의 석전꾼들은 맷집이 아주 좋은것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평양과 서울간에 석전대결이 벌어졌을때 나무 몽둥이와 방패를 든 평양 석전꾼들이 상대의 돌을 맞으면서 무식하게 밀고들어오자 서울의 석전꾼들이 속절없이 밀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평양의 청년들은 머리에 돌을 맞은 흉터가 없으면 치욕으로 여길정도였으며 석전을 벌이다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도망이라도 오면 어머니가 아들을 크게 꾸짖어 석전장으로 다시 돌려보낼 정도였다고 하니 그 당시의 열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알만하죠

많은 부모들이 아들에게 사내다워져야 한다며 석전에 참여하라고 권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때문에 석전에서 승리한 선수들은 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돌아왔고 패배한 마을의 선수들은 마을 밖에서 노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이후 조총 등의 개인화기가 발달하면서 그때부터 석전은 단순한 놀이수준으로 다시 내려가게 되죠

 

물론 석전이 이렇게 여러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만큼 인기있는 놀이였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조선시대에만 해도 여러차례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놀이다보니 완전히 막지는 못하다가 20세기가 되어서야 일제가 치안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아예 금지를 시키면서 더이상 석전을 볼수 없었다고 하죠

이러한 돌팔매 놀이는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도 조선과 똑같은 석전놀이가 존재했으며 중국에서는 석전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큰 계투라는 패싸움이 있었는데 심지어 계투는 아직까지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영지민들이 돌던지는 실력이 뛰어나면 전쟁이 벌어졌을때 성을 지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다이묘들이 백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석전을 권했다고 하죠

그리고 중국에 있었던 계투의 경우에는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다보니 중앙권력이 잘 닿지않는 오지에서는 이민족의 침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른다는 명분으로 계속해서 계투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동양뿐만 아니라 유럽의 스페인에서도 이런 돌팔매 싸움이 있었는데 현대에 와서 토마토 던지기 축제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조선의 위험한 전통놀이였던 석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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