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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탐구

정원군 이부. 선조의 노답 폐급 아들중에서도 사이코력 원탑이었던 인간말종(feat.인조의 친부)

by 사탐과탐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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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장남인 임해군과 여섯째 순화군은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에 막장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정말 어마무시할 정도로 인간말종이었던 다섯째 정원군 이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의 14대 국왕인 선조는 임진왜란 때 저지른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고 있는 인물이죠

그는 8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무려 14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과연 그의 아들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두 번째 아들인 광해군은 워낙에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실 테고

첫 번째 아들인 임해군은 그야말로

인간말종 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하죠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시기에 함경도에서

전쟁에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며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참다못한 함경도 백성들이 임해군을 사로잡아서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버렸을 정도라고 하죠

임해군의 악행을 전해 들은 일본군도 조선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임해군을 꾸짖었다고 하네요

 

6번째 아들인 순화군은 희대의 사이코패스이자 살인마였다고 합니다

18세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순화군은

이후 해마다 10명이 넘는 사람을 죽여댔으며

 

19살에 어머니 의인왕후가 사망하자

모친상을 치르던 중에 어머니를 모시던 궁녀를

어머니의 관이 있는 옆에서 겁탈해 버렸다고 하죠

원래라면 목숨을 잃어야 할 죄를 지은 것이지만

선조가 그의 죄를 용서해 주면서 수원으로 유배를 가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귀양지에서도 아무 죄 없는 병사를 잡아와서는

망치로 그의 이빨을 무려 18개나 부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등

계속해서 횡포를 부려댔고

보다 못한 임해군이 왕실의 체면을 생각해서

적당히 좀 하라고 꾸짖을 정도였다고 하죠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그런데 선조실록 선조 40년 3월 18일의 기록을 보면

이런 순화군의 악행도 장남인 임해군이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원군의 행패보다는 덜했다고 합니다

 

선조의 다섯 번째 아들인 정원군 이부는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 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죠

정원군이 죽은 후 묘비에 써져 있는 기록을 보면

 

그가 어려서부터 용모가 출중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서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는 내용이 써져 있지만

선조실록을 보면 정원군은 워낙 성품이 포악하고 행동이 방탕해서

당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탄핵을 받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바로

그의 장남인 능양군이 인조반정을 통해 조선의 왕이 되면서

어떻게든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을 미화해 보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죠

 

사실 정원군은 임해군과 순화군을 능가하는

선조의 아들들 중 최악의 망나니였지만

아들이 왕이 되면서 과도한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조 20년인 1587년 정원군에 봉해진 그는

구사맹의 딸 연주군부인과 혼인해서 3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에서 셋째인 능창군은 광해군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역모 사건에 휘말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고

첫째인 능양군은 1623년 3월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조선의 16대 국왕이 되었죠

임진왜란이 끝난 후 몇 년이 지난 1604년에는

몽진을 떠났던 선조의 곁을 지킨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을 잘 둔덕에 지나치게 과한 대접을 받았지만

사실 그는 선조의 장남인 임해군과 함께

온갖 행패를 다 부리고 다녔던 망나니 왕자였다고 하는데요

 

임해군이 주로 재물과 여자를 노리고 범죄를 저질렀다면

정원군은 괜히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죠

그리고 임해군은 자신이 직접 행패를 부렸다면

정원군은 하인들에게 일을 맡긴 채

자신은 뒤에서 구경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그는 왕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처남인 '구굉'이라는 인물을

과거시험에 부정합격시켰다가 사헌부에 탄핵을 당했으며

군인이 되어야 하는 군역의 의무를 피하려는 사람에게서 돈을 받고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좌의정 김응남의 하인이나 지방관리등과 시비가 붙었을 때는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그들을 집단폭행하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죠

1602년 9월 13일에는 정원군의 집에서 일하던 노비들이

선조의 큰형인 하원군의 부인을 납치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하원군의 집 앞을 지나가던 정원군의 노비들이

하원군의 노비들과 시비가 붙으면서 다툼이 일어났는데

그 소식을 들은 정원군은 자신의 노비들을 하원군의 집으로 보내

마치 건물을 철거시켜 버릴 듯한 기세로 집을 때려 부수고

그곳에 있던 하원군의 부인을

납치하듯이 끌고 와서는 자신의 집에 감금시켜 버렸죠

 

다음날 하원군의 아들들이 찾아와 울면서 애원을 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큰어머니를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하원군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모시는 장손이었는데

그런 하원군의 집에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부인까지 납치해 온 것은 유교사회에서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이었죠

 

하지만 선조실록 선조 35년 9월 17일의 기록을 보면

선조는 그 일을 두고 자신의 아들인 정원군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순전히 노비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하원군의 부인을 납치해왔을 뿐이라고 사건을 날조했습니다

 

그리고는 정원군을 탄핵한 병조정랑 임학령을 가리켜

죄 없는 왕자를 모함한 간신이라고 비난하며 그를 파직시켜 버렸죠

정원군에게는 집안 노비들을 잘 관리하라는 명만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선조는 장남 임해군이 종 2품 관직에 있던 유희서라는 인물의 첩을 뺏기 위해

마치 도적떼가 습격한 것처럼 꾸며서 유희서를 살해했을 때도

임해군은 전혀 그 일과 관계가 없으며

임해군의 하인들이 독단적으로 유희서의 재물을 노리고

그를 살해했다는 식으로 사건을 날조했습니다

 

그리고 임해군에게는 하인 관리를 잘하라는 명만을 내리고

피해자의 아들 유일은 죄 없는 임해군을 모함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죄를 지은 아들들을 꾸짖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범죄를 숨긴 채 피해자들을 처벌하고 있으니

더욱 기가 살아난 망나니들이 악행을 계속한 것이죠

하지만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글의 내용을 돕기 위한 이미지
 

정원군도 자신의 어머니인 인빈 김 씨가

광해군의 어머니였던 공빈 김 씨의 적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망나니 짓을 멈춘 채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냈지만

1615년 8월 그의 셋째 아들인 능창군이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쓰고 강화도로 유배를 가는 사건이 일어났죠

 

능창군은 혹독한 유배지 생활을 견디지 못한 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광해군은 정원군이 살던 집에 왕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이유로

정원군의 집을 강제로 빼앗아버리기까지 했죠

 

그렇게 자신의 집과 아들을 모두 잃게 된 정원군은

분한 마음에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내다가

화병에 걸려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물론 능창군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정원군의 집을 강제로 뺏은 것은 광해군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원군이 그동안 다른 왕족들이나 백성들에게 저지른 악행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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